[흥해도 청춘 망해도 청춘] 템플스테이 체험기
[흥해도 청춘 망해도 청춘] 템플스테이 체험기
  • 최한나 기사
  • 승인 2015.09.14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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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대학생들의 하루는 전쟁과도 같다. 해야 할 일들로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은 지경일 때, 한 번쯤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을 추스르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을 것이다. 선뜻 용기를 내기 쉽지 않을 학우들을 위해 기자들이 직접 나를 위한 치유 여행, 템플스테이를 떠나보기로 했다.



  도심 속의 사찰을 찾다
  템플스테이를 위해 우리가 찾아간 곳은 우리대학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화계사였다. 수유역에서 버스로 불과 15분 거리에 위치한 화계사는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진 않지만 뒤로 북한산이 자리하고 있어 친근하면서도 정적인 미를 물씬 풍기는 곳이었다. 경내에는 예불을 드리러온 신자뿐만 아니라 북한산을 오르기 위해 찾아온 등산객들도 제법 많이 보였다. 우리는 먼저 신청서를 작성하고 앞으로 이틀간 머무를 숙소를 안내받았다. 5평 남짓한 작은 방에는 다도를 즐길 수 있는 찻잎과 다기들이 마련돼 있었다. 방 안에 은은하게 퍼진 차 향기가 기자들의 마음을 편하게 풀어줬다.
 

  비 내음이 가득한 산길을 걷다
  간단한 공양 후에는 ‘걷기 명상’이라는 이름의 산행이 있을 예정이었다. 아침부터 줄곧 내리던 비 때문에 걱정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점심때쯤엔 그쳐 예정대로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었다. 산으로 연결된 다리를 따라 조금 걷자 스님 한 분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스님은 우리에게 수행으로서의 산행, 행선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주셨다.“중요한 것은 빠르게 걷는 것이 아닙니다. 한 걸음을 천천히 신중하게 내딛어야 해요.” 그렇게 발을 딛는 것에만 집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비워질 것이라고 했다.

  북한산의 낮은 봉우리를 오르는 데에 대략 두 시간 정도의 산행이 이어졌다. 길지 않은 코스였지만 걷는 속도를 느리게 해 그만큼 길을 가는데 갑절의 시간이 투자됐다. 처음 얼마간은 번뇌의 시간이었다. 고된 산행에 대한 불평부터 기사에 대한 걱정 등으로 삼십여 분을 채우고 나니 점차생각이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잡생각을 하면 저절로 바빠지는 발걸음을 늦추려 애쓴 결과였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우리는 이미 정상에 도달해 있었다. 그 순간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산등성이 너머로 펼쳐진 경이로운 풍경이었다. 비가 갠 맑은 하늘과 그 위를 떠다니는 구름 사이로 북한산의 봉우리가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 놀라운 절경과 대면하니 가슴에 응어리져 있던 걱정들이 시원하게 풀리는 느낌이었다. 쏟아낸 땀방울만큼 더 큰 무언가를 얻은 것만 같았다. 그렇게 정상의 공기를 가득 들이마신 뒤 하산하는 길은 발걸음이 놀랄 만큼 가벼웠다. 올라가는 데 들인 시간이 무색하게 우리는 불과 십 여분 만에 출발지로 돌아올 수 있었다. 

 

  사찰의 법도를 배우다
  오후 4시 30분, 평소보다 훨씬 이른 때에 저녁 공양을 했다. 6시에는 저녁 예불이 예정돼 있었기 때문에 방에서 잠깐 휴식을 취한 후 3층 법당으로 향했다. 법당에 들어갈 때는 먼저 문 앞에서 합장을 하는 것이 의례다. 스님들이 법당에 들어오기 전 보살님께 예불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예불이란 매일 아침저녁마다 불상 앞에서 부처를 공경하는 마음을 드리기 위한 의식이다. 스님이 불경을 외자 깊고 울림 있는 목소리가 법당에 퍼졌다. 우리는 앞에 계신 스님들을 따라 하며 조금 어설프지만 경건한 마음으로 예불을 드렸다. 

  예불을 드린 후 곧장 4층 참선방으로 향했다. 참선은 명상과 비슷한 행위로 마음의 수양을 위한 것이다. 우선 허리를 곧게 피고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시선을 1미터쯤 앞에 떨어뜨린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호흡이다. 들이쉬는 숨보다 내쉬는 숨을 두 배 정도 더 길게 하면서 열까지 숫자를 세고 거꾸로 하나까지 다시 돌아와야 한다. 도중에 세던 숫자를 까먹으면 도로 하나부터 다시 세야 하기 때문에 잡념을 버리고 오롯이 호흡에 집중해야 했다. 하지만 가만히 집중하고 있다가도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오는 잡념 때문에 몇 번이나 숫자를 다시 세야 했다. 

  차분한 마음으로 나를 돌아보다
  사찰에서는 바깥세상보다 빠르게 아침을 맞이한다. 새벽 4시에 기상해야 한다는 일정표를 보고 과연 일어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첫날 진행된 여러 활동들로 몸이 피곤했던지 저녁 9시가 되기도 전에 잠이 들었고 무사히 4시 전에 일어날 수 있었다.  아침 예불은 전날보다 수월하게 따라 할 수 있었다. 저녁 예불 때는 낯설고 조금 어수선했던 법당이 새벽의 맑고 고요한 기운으로 채워져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다음으로 내 안의 나를 마주 보기 위한 참선을 했다. 새벽 공기가 들어선 선방에서 바라본 바깥풍경은 아직 동도 채 트지 않은 상태였다. 참선을 하는 동안 자꾸만 흐트러지려는 자세를 다잡느라 힘들었다. 하지만 가장 어려웠던 것은 마음을 비우는 일이었다. 마음을 비우려고 노력할수록 오히려 잡념들이 머릿속을 마구 헤집었다. 스님은 참선을 시작하기에 앞서 “생각이 많아지면 좋았던 것보다 안 좋았던 기억이 훨씬 많이 떠오를 것”이라고 하셨다. 스님 말씀대로 잡념이 많아지니 의미 없는 생각들과 안 좋은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기억들에 뒤따라 온 후회와 미움, 욕심이 마음에 들이쳤다. 내 속에 나쁜 마음이 이렇게나 많았다는 게 부끄러웠다.

 

  백팔 번의 절을 하다
  오전 7시 30분, 108배를 하기 위해 3층 법당에 들어갔다. 108배는 중생의 번뇌가 108가지라는 데에서 유래한 것으로 절을 통해 마음을 비우는 수행법이다. 보살님은 “절은 바닥에 엎드린 채 머리가 땅에 닿아야 하는 것으로 자신을 낮추고 나를 돌아보는 수련활동이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108번이나 절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조금 긴장이 됐다. 예불을 드릴 때 절하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절을 시작하자 108번의 각기 다른 참회문이 CD플레이어를 통해 들려왔다. 이에 기자는 참회문을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들으려고 애썼다. 참회문 중 가장 좋았던 것은 “저는 매사에 긍정적이기를 발원하며 절합니다”였다. 이것은 부처님께 드리는 발원이기도 했지만 나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했다. 참회문은 평소 “제 소원이 이뤄지게 해주세요”라고 빌었던 기도와는 전혀 다른, 나를 위한 진정한 염원이었다.

 

  108배를 끝마치고 나니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이 차분해졌다. 참회문을 곱씹으며 그동안 내가 얼마나 감사함을 모르고 살아왔는지 느낄 수 있었다. 108배는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드는 좋은 운동이자 수련방법인 듯했다. 하루 24시간 중 나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108배를 통해 잠시나마 그런 소중한 시간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산하는 가벼운 발걸음
  108배를 마치고 ‘보왕삼매론’이라는 글을 한지에 베끼는 활동을 했다. ‘보왕삼매론’이란 중국 명나라 때 묘협이라는 스님이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가르침을 설파한 10가지 금언이다. 우리는 10가지 금언 중 ‘공부하는데 마음에 장애가 없기를 바라지 말라’라는 부분을 썼는데 한 번 절을 하고 한 줄을 쓰고 다시 절을 하고 한 줄을 쓰는 식으로 글을 완성해 나갔다.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종이에 새기며 그 뜻을 마음에도 새겨나갔다.
 

  마지막으로 다함께 차를 마시며 템플스테이를 마무리했다. 차의 따뜻함이 온몸으로 전달되는 것 같았다. 커피나 음료와는 다른, 향기로운 연잎차향이 하산할 때까지 코끝에 맴돌았다. 템플스테이를 마치고 하산하는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벼웠다. 마음은 편안했고 무엇이든 잘될 것만 같은 용기와 긍정이 생겼다.

  템플스테이를 하며 나를 들여다볼 여유가 생겼고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바쁜 일상에 잠시 숨을 돌리고 싶다면 템플스테이를 체험해보는 것은 어떨까. 종교를 떠나 우리에게 지금 꼭 필요한 시간이 돼 줄 수도 있다. 지금 몸과 마음이 지쳤다면 잠시 모든 걸 내려놓고 가까운 절로 가보자. 그곳에서 진정한 나를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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