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술 풀리는 학술] <올리버 트위스트> 어른을 위한 동화
[술술 풀리는 학술] <올리버 트위스트> 어른을 위한 동화
  • 이인규 국민대 영문과 교수
  • 승인 2015.12.07 23: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의 소설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
<올리버 트위스트>는 찰스 디킨스가 1837년 2월부터 1839년 4월까지 한 월간 잡지에 연재한 소설이다. 당시 디킨스는 19세기 영국의 사회상을 사실적으로 그리면서 큰 인기를 누렸다. 그는 산업사회의 여러 부작용이 공리주의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다양한 작품에서 당대 지배계급의 이념이던 공리주의에 대해 비판했다. 그의 비판적 시각을 확인해볼 수 있는 소설 중 하나인 <올리버 트위스트>를 만나보자.


  <올리버 트위스트>의 주인공 올리버는 불쌍한 고아 소년으로, 탁아소와 구빈원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며 자라다가 죽을 더 달라고 했다는 죄목으로 장의사의 도제로 팔린다. 장의사의 집에서 학대를 당하던 그는 런던으로 도망치는데 거기서 범죄 집단의 손아귀에 떨어진다. 그는 인정 많은 신사에게 잠시 구원되기도 하지만 다시 범죄자들에게 납치돼 강도질의 도우미 역할을 강요받는다. 강도 현장에서 총상을 입은 그는 다행히 죽을 고비를 넘기고 선량한 부인과 아가씨의 도움으로 결백을 인정받고 건강을 되찾는다. 이후 범죄 세계의 위협을 받기도 하지만 그는 선량한 친구와 보호자들의 도움과 노력으로 자신의 출생 비밀을 알게 되고 유산을 물려받은 뒤 아버지 친구의 양자가 돼 이모와 함께 행복하게 산다.

 
작품 속
  매력적인 악의 세계
  고아 소년이 시련과 고난을 극복한 뒤 구원과 행복에 이르는 줄거리로 볼 때, <올리버 트위스트>는 권선징악에 바탕을 둔 일종의 도덕적 우화에 해당된다. <올리버 트위스트>의 이런 우화적 성격은 이 작품이 19세기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 호소력을 갖게 하는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착한 심성을 지닌 불우한 고아 소년이 굶주림과 천대와 사악한 위협을 당하며 극심한 시련을 겪다가 섭리에 의해 궁극적으로 행복에 이른다는 이야기는 즐거움보다는 고통이 더 많다. 이 이야기는 선보다 악이 지배하는 세상에 부대끼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원형적 믿음과 염원, 즉 구원과 섭리의 진실성에 대한 신화적 소망과 욕구를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충족시켜 준다.

  그러나 <올리버 트위스트>가 한 편의 소설로서 독자에게 흥미로운 진짜 이유는 위와 같은 도덕적 우화의 ‘보편성’보다는 올리버가 겪는 경험의 구체적 ‘특수성’, 특히 올리버를 위협하는 현실세계의 구체적인 악이 지닌 독특하고 생생한 성격에 있다. 작품 속에서 현실세계는 크게 선과 악이라는 두 개의 대립되는 세계로 나눠진다. 브라운로우와 메일리 부인으로 대변되는 너그럽고 안온한 세계가 한 편에 있고, 그 맞은 편에 범블과 페이긴으로 대변되는 비인간적이고 사악한 악의 세계가 존재한다. 그런데 이 두 세계 가운데 악의 세계, 즉 올리버의 삶과 여정을 힘들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현실세계의 악이 독자의 관심을 훨씬 강하게 끈다. 올리버를 비롯해 브라운로우, 메일리 부인, 로우즈, 해리 메일리 등과 같이 작품 속에서 선의 원리를 대변하는 인물들은 그 도덕성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지극히 감상적이고 밋밋해서 인물로서의 문제성이나 매력이 별로 없다. 이에 반해 범블, 페이긴, 싸익스, 멍크스, 날쌘 꾀돌이 등 같이 선에 대적하는 악당 인물들은 하나같이 독특한 개성과 매력을 지닌 존재들로 우리의 주의를 강력하게 사로잡는다.

 
공리주의에 의한 구민법을
  인본주의에서 비판하다
  이러한 악의 세력은 작품 속에서 다시 구빈원과 범죄세계라는 두 세계로 나뉘어 나타나는데, 먼저 전반부에서는 구빈원을 통해 잘못된 법과 제도에 의한 비인간적이고 불의한 공적 악행이 신랄하게 풍자된다. <올리버 트위스트>가 쓰여지기 몇 해전인 1834년에 영국은 1795년 이후 시행돼 오던 빈민구제법, 즉 구빈법을 새로 개정한다. 이 구빈법 개정을 주도한 사람들은 벤담과 맬서스의 사상을 신봉하는 공리주의 사상가들이었는데 그들은 공리적 원칙과 합리성에 입각해 빈민 자격요건과 행정 절차의 강화, 남녀의 분리 수용, 급식 제한과 강제노역 부과 등을 골자로 하는 신구빈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개정된 이 신구빈법은 운영 개선과 비용절감 같은 긍정적 취지에도 불구하고, 빈민계층의 출산을 막기 위해 남편과 아내를 격리해서 수용한다든가, 구빈원에 의존하는 빈민의 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최저 수준의 급식을 제공하고 가혹한 노동을 의무적으로 강요하는 것과 같은 지극히 비인간적이고 비정한 공리적 조치들이 그 핵심 내용으로 포함돼 있었다. 게다가 이런 비인간적 조치들은 행정 관리들의 여전한 부패와 무능, 그리고 전혀 나아지지 않은 어린이와 노약자의 처우 등과 결합해 구빈원 상황을 오히려 과거보다 훨씬 더 열악하고 비참하게 만들었다.

  디킨스는 신구빈법이 초래한 당대 구빈원의 실상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특히 당시 영국 지배 계급의 이념적 근간으로서 구빈법 개정을 주도했던 공리주의적 사고의 비인간적이고 반생명적 성격을 꿰뚫어 보고 이를 인본주의적 입장에서 강력하게 비판했다. 작품 초반부에서 고아인 올리버를 다루는 구빈원 관료들과 이사회의 비정하고 계산적이며 이기적인 행태에 대한 신랄한 풍자는 바로 그의 이러한 인본주의적 통찰과 분노의 반영이다. 어린 아이들에 대한 동정심이 전혀 없이 탁아소의 운영비 착복에만 관심이 있는 탐욕스럽고 위선적인 맨 부인, 터무니없는 허영과 권위의식으로 가득 찬 교구 하급관리 범블, 그리고 죽을 더 달라는 올리버의 간청에 세상이 뒤집히기라도 한 듯이 경악하며 호들갑을 떠는 구빈원 이사회 등은 바로 고아와 빈민 같은 사회적 최약자의 삶과 생존을 위협하는 제도적 악과 그 집행자들의 전형을 잘 보여준다.

  제도권 밖 범죄 세계의
  복잡 다양한 모습
  한편 올리버는 런던에 올라간 뒤 새로운 형태의 악의 세력에 붙들린다. 이 새로운 악의 세력은 페이긴과 싸익스가 이끄는 사회 밑바닥 범죄집단으로서 법과 제도의 공적 그물망 밖의 사적 영역에서 활동하는 세력이다. 그런데 이 범죄집단의 인물들은 작품 속에서 단순히 정형화된 악당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비록 구빈원과 마찬가지로 올리버의 인간적 존엄을 위협하는 악의 세력이긴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들은 일반적인 범죄자의 틀을 넘어서는 다면성과 복합성, 그리고 심리적 깊이를 띤다. 가령 페이긴은 탐욕스러운 장물아비에 좀도둑과 창녀들의 두목으로 혐오스러운 파충류에 비유되는 비열하고 음흉한 악당의 전형이다. 하지만 그는 선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와 기괴한 희극성과 최면적 마력을 동시에 지닌 복잡한 성격의 인물일 뿐만 아니라 무소불위의 초자연적 능력을 지닌 악마 같은 존재로까지 보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교수형을 앞두고 공포에 떠는 장면에서처럼, 초월적 악마의 이미지와는 정반대로, 비참한 사형수의 더없이 가련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올리버 트위스트>는 디킨스의 청년기 작품인지라 아무래도 예술적인 면에서는 부족한 점이 있다. 가령, 초반부 구빈원 부분에서 한껏 고조된 사회풍자의 어조가 범죄집단을 다루는 뒷부분에서 흐려진다거나 플롯 전개에 우연이 너무나 결정적으로 개입한다는 것, 그리고 올리버의 출생과 관련된 미스테리나 로우즈와 해리의 사랑 이야기에 멜로 드라마적인 상투성이 강하다는 점 등은 흔히 지적되는 결함들이다. 하지만 <올리버 트위스트>는 한 편의 고전 작품으로서 이런 결함을 넘어서는 매력을 많이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선의 승리라는 도덕적 주제를 구현하는 이야기의 보편적 호소력, 디킨스 특유의 풍자적 해학과 통찰력이 발휘된 개성적 인물 창조와 묘사, 추리소설과 같은 긴장과 희극적 활력. 비극적 감상성을 적절히 버무린 흥미로운 이야기 구성 등은 작품을 읽는 독자의 관심을 시종일관 사로잡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올리버 트위스트>가 일종의 ‘어른을 위한 동화’로서 시공을 초월한 대중적 사랑을 계속 받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도봉구 삼양로144길 33 덕성여자대학교 도서관 402호 덕성여대신문사
  • 대표전화 : 02-901-8551, 8552, 8558
  • 청소년보호책임자 : 고유미
  • 법인명 : 덕성여자대학교
  • 제호 : 덕성여대신문
  • 발행인 : 김건희
  • 주간 : 조연성
  • 편집인 : 고유미
  • 메일 : press@duksung.ac.kr
  • 덕성여대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덕성여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duksung.ac.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