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술 풀리는 학술] 세 음악가의 사랑이야기
[술술 풀리는 학술] 세 음악가의 사랑이야기
  • 황승경 국제오페라단 단장
  • 승인 2016.03.03 1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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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영화 <클라라 (Geliebte Clara, 2008)>
음악사에서 아주 유명한 사랑 이야기가 있다. 드라마나 소설에 등장할 법한 이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은 슈만과 클라라, 그리고 브람스의 이야기이다. 정신병자가 된 스승 슈만과 그의 아내이자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 그녀를 지켜보며 평생 독신으로 살아간 슈만의 제자 브람스. 영화 <클라라>는 이들의 사랑과 음악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9세기 음악사의 지대한 영향을 끼친 슈만, 클라라, 그리고 브람스는 과연 어떤 관계였을까. 또한 그들의 사랑은 서로의 음악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슈만의 아내이자
  피아니스트 클라라
  ‘음악의 천재 모차르트’도 ‘음악의 악성 베토벤’도 살아생전 자신의 작품을 정리하면서까지 작품활동에 매진할 수 없었다. 시대적 분위기도 그랬지만 의뢰와 청탁받은 작품 혹은 이미 연주한 작품을 다시 필사해서 보관하는 것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곡자 로베르트 슈만(1810-1856)의 모든 작품은 시대 순, 장르별로 정확하고 자세하게 보관돼 있다. 이를 가능하게 만든 장본인은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던 그의 아내 클라라 비크(1819-1896)였다. 최고의 인기와 실력을 구가하던 그녀가 진두지휘해 연주하고 보급하고 보관한 슈만의 작품은 명실상부 최상의 실력으로 당대 유수한 극장의 VIP 관객들 앞에서 연주됐다. 그리고 클라라는 남편 슈만의 곡뿐만 아니라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의 작품도 자주 연주했다.

  클라라에 관한 이야기는 영화 ‘클라라’에 비교적 잘 묘사돼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어쩌면 한 여성으로서의 클라라 개인보다는 슈만, 브람스와의 관계에 더욱 조명했다. 그래서 서양음악사 최고의 러브스토리 주인공인 슈만과 클라라의 사랑에 집중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다소 실망할 수 있다. 9살 소녀로 맞은 슈만과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6여 년의 법정 투쟁 끝에 얻은 결혼에 대한 여정은 영화 ‘애수의 트로이메라이’(Spring Symphony, 1983, 피터 샤모니 감독)에 비교적 자세하게 담겨 있다. 나타샤 킨스키가 분한 연약하지만 도발적이고 감성적인 클라라가 오히려 실제 클라라의 외모에서 풍기는 모습과 더욱 닮았기 때문일까. 클라라 개인의 한 남자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은 오히려 여기에 더욱 잘 나타나 있다.

  영화 ‘클라라’(Geliebe Clara, 2008, 헬마 잔더스-브람스)는 병이 난 스승 슈만의 아내 클라라를 사랑한 제자 브람스, 그리고 그 제자를 거부하며 끝까지 남편에 대한 사랑이 변치 않았던 아내 클라라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감독이 브람스 숙부의 자손이기 때문은 아니겠지만 감독의 앵글은 슈만보다 브람스에 더욱 호의적으로 집중한다. 사실 우리에게 브람스는 수염이 더부룩하고 매서운 고집불통 같은 노년의 이미지로 인식돼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꽃미남’ 젊은 브람스가 낭만적으로 등장한다.


스승 슈만과 클라라
제자인 브람스와 만나다
  영화 ‘클라라’는 슈만과 클라라가 결혼한 지 10년이 지난 시점인 1850년 즈음부터 시작된다. 어쩌면 이때가 이들 부부에게 가장 행복하고 풍요로웠던 인생의 정점이었다. 바로 이 시기에 이들부부는 젊은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를 소개받는다. 슈만은 작곡가뿐만 아니라 당대 최고의 신랄한 악평을 일삼는 비평가로도 이름나 있었다. 허나 칭찬에 지극히 인색했던 슈만은 유독 브람스의 곡에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는 무명인 브람스를 평단이 눈여겨 보는 계기로 이어졌다. 변변한 배경도 지연도 없던 브람스는 요즘 말로 ‘흙수저’에다가 한 집안의 가장이기까지 했다. 브람스에게 슈만 부부는 하늘이 점지해 준 은인이었고 이로 인해 브람스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았을 것이다. 특히 자신의 곡을 창작의도 이상으로 연주해내는 클라라는 그의 인생 최고의 여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슈만의 아내 클라라는 브람스를 남자로 받아주지 않았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슈만을 사랑한 클라라
  그러면 영화 제목처럼 ‘클라라’라는 여인의 시각을 쫓아 보자. 음악 교육자였던 아버지의 문하생으로 들어온 18살의 법학도 슈만을 클라라가 처음본 것은 9살 때였다. 그는 혈기왕성한 훈남으로 감성적이고 다정했으며 사귀는 여인에게 작곡한 곡을 선물하는 낭만까지 있었다. 최고의 재능을 가졌지만 이를 위해 하루 18시간의 연습을 소화하며 자기 이름조차 쓸 줄 모르던 ‘신동바보’ 9살 클라라에게 화려하고 달콤한 언변과 박식하고 명석한 필력을 소유한 슈만은 그야말로 환상 속의 우상이었다. 그의 주변에는 여자가 넘쳐났지만 클라라에게 이는 별로 중요치 않았다. 보통 콩깍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완강한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빈 손으로 꿈에 그리던 그와의 결혼식을 올린다. 그래도 그들의 사랑은 충만했다. 결혼으로 안정된 슈만은 그 즈음 가장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한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비호 아래에 변변한 지적인 교육을 받지도 못했을 뿐더러 21세에 결혼한 이후에는 피아노를 남편에게 양보하면서까지 현실에 충실하며 현모양처의 길을 걸었다. 여섯 아이의 양육과 남편의 확실한 비서 역할, 그리고 남는 시간을 쪼개서 본인의 연습을 하며 24시간 빠듯하게 시간을 보내야 했다. 당연하게 본인의 감정과 자아를 추스를 시간적, 심적 공간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환청과 망상에 시달리며 기이한 행동을 일삼던 남편 슈만이 라인강에 투신하는 소동을 일으키며 정신병원으로 향하게 된다. 남겨진 여섯 아이와 남편의 병원비까지 떠맡게 된 임산부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이때 백마탄 기사처럼 14살이나 어린 브람스가 나타났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알고 있지 않았을까? 유행가 가사처럼 불같은 사랑의 허무함을 …

 
클라라와 브람스
  사랑 혹은 뮤즈
  18살의 슈만을 만난 9살의 클라라와 20살의 브람스를 보는 34살의 클라라의 사이에 놓인 25년의 세월을 보면 클라라의 선택이 이해가 간다. 또한 지고지순하고 순수한 사랑으로 남기기를 원하는 후세들에게는 아쉽지만 실제로 브람스는 클라라에게 열렬하게 고백을 한 2년 후에 다른 여인과 약혼을 하고, 클라라와 슈만의 셋째 딸인 율리와 사랑에 빠지기도 했다. 

  이렇듯 브람스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지만 클라라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의 관계는 사랑이 거절된 직후부터 음악적 뮤즈, 인생의 멘토, 예술적 동지로 남았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이 불꽃처럼 화려하고 열정적으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가장 끈끈하게 지속될 수 있지 않았을까?

  클라라가 죽은 다음 1년 후 브람스가 아무런 지병 없이 갑자기 사망했다는 것은 우연일지 모르지만 클라라가 위독하다는 서신을 받자마자 40시간이나 걸려 클라라에게 달려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종을 지키지 못해 어린아이처럼 대성통곡했다는 일화가 이를 증명한다. 브람스가 밝힌 것처럼 클라라는 ‘그의 삶에 가장 아름다운 경험이었고가장 위대한 가치였으며 가장 고귀한 의미’였을 것이다.

  클라라는 77년의 생애 동안 16년의 결혼 생활을 포함한 28년 동안 여한 없이 열정적이고 충실하게 슈만을 사랑했으며 43년간 브람스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됐다. 슈만과 클라라, 클라라와 브람스의 사랑을 두고 많은 이들은 시리고 아린 사랑으로 기억할지 모르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당당하고 담담하게 충실한 그들만의 사랑을 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아무리 천생연분, 찰떡궁합을 과시해도 더 주고 덜 받음에 있어서 서운해 하고 서글퍼 한다. 이런 우리네 사랑에 이들 세 사람의 각기 다른 사랑은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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