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석] 여성 상위시대의 껍데기
[기자석] 여성 상위시대의 껍데기
  • 정혜원 문화학술부장
  • 승인 2016.03.15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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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매년 3월 8일이면 온갖 포털사이트에는 ‘여성의 날’이라는 단어를 화두로 많은 기삿거리가 쏟아진다. 세계 여성의 날은 UN에서 세계 여성들의 지위 향상을 위해 기념일로 지정한 날이다. 사회적약자였던 여성들을 위해 기념일을 지정한 것에 대해서는 좋은 취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쩐지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집회를 열고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한 운동을 펼치는 것이 오히려 여성을 사회적 약자로 바라보게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러던 차에 기자는 남성의 날도 있는지 궁금해졌다. 검색해보니 남성의 날 역시 존재했다. 그러나 남성의 날 행사나 남성의 날과 관련한 기사는 도무지 찾기 힘들었다. 더군다나 남성의 날을 제정한 이유 중 하나는 ‘여성에 의한 역차별’이었지만 그 역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활동은 이뤄지지 않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기자는 여성의 날을 맞아 여전히 여성들이 여권 신장을 갈구하는 상황에 놓여있는 것도, 여성의 날과 대비될 만큼 조용하기만 한 남성의 날이 있다는 것에도 씁쓸함을 느꼈다.

  흔히들 ‘여성 상위시대’라고 한다. 우리는 정말 여성 상위시대에 살고 있는 걸까. 기자는 그렇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여전히 여성은 단정한 용모와 얌전한 성품을 요구받는다. 또한 그런 성차별적 고정관념들은 이미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우리가 딱히 큰 문젯거리로 삼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다. 일례로 얼마 전 모 기독교 방송에서 한 목사가 박근혜 대통령과 세계 여성 정치인들의 외모를 비교하는 장면이 그대로 전파를 탔다. 목사는 박 대통령에게 “세계 유명 여성 정치인들의 육중한 몸매와는 달리 박 대통령은 여성으로서의 미와 모성애적인 따뜻한 미소를 갖고 계신다”고 말했다. 목사는 스스로가 생각하는 ‘여성의 미’를 잣대로 여성을 대상화해버린 것이다. 더군다나 목사에 말에 미소를 짓는 대통령의 모습은 기자에게 적잖은 충격을 줬다. 자신의 여성성과 ‘모성애’적 미소를 칭송한 목사의 언사에 웃음으로 화답하는 대통령에게 우리는 카리스마와 리더십을 기대해선 안 되는 것일까. 이 목사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여성적인’이란 단어가 이미 우리사회에 자연히 인식돼 있다는 생각이 들자 어쩐지 조금 힘이 빠졌다.

  최근 들어 여성 혐오와 남성 혐오 간 대립이 팽팽하다. 우리사회는 여권 신장과 남녀 평등이라는 말로 여성이 사회적 강자가 된 것처럼 겉을 그럴싸하게 포장한다. 그러나 여성 혐오가 가속화돼 가는 시점에서 현대사회를 여성상위시대라 일컫는 것은 큰 착오다. 포장지를 벗긴 우리나라는 여전히 OECD 남녀 임금 격차에서 14년째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는, 나흘에 한 명씩 남편 혹은 남자친구에 의해 여성이 살해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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