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술 풀리는 학술] 세상은 정말 존재할까? 우리의 선택은 자유로운가?
[술술 풀리는 학술] 세상은 정말 존재할까? 우리의 선택은 자유로운가?
  • 한우진 덕성여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6.05.10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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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영화 <매트릭스 (The Matrix, 1999)>
 
영화 <매트릭스>는 인공두뇌를 가진 컴퓨터, 일명 AI가 지배하는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인간들은 태어나자마자 AI가 만들어낸 인공 자궁 안에 갇혀 AI의 생명 연장을 위한 에너지로 사용되고 그들의 뇌세포에는 ‘매트릭스’라는 프로그램이 입력된다. 그들에게 입력된 프로그램의 내용은 1999년의 가상현 실이다. 인간들은 평생 그 가상현실 안에서 살아가며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혹은 화처 럼 우리 역시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1999년 워쇼스키 자매(The Wachowskis-당시 형제)가 제작한 <매트릭스>는 360도 카메라를 이용한 상과 엄청난 액션, 그리고 흥미로운 설정과 스토리로 큰 충격을 줬다. <매트릭스>는 각종 철학·문화 코드의 뒤범벅이다. AI가 지배하는 미래는 SF의 기본요소 중 하나이다. 여기에 비서구권의 문화와 세계관, 휴머니즘, 자아발견 등이 더 해졌다. <매트릭스>는 전형적인 SF의 요소들을 통해 철학적 호기심을 매력적으로 구현했다. 

  AI가 지배하는 음울한 세상. 기계들을 위한 생체건전지로 살아가는 현실을 알지 못한 채 인간들은 매트릭스 안에서 저마다의 삶을 살아간다. 이 가상세계에서 프로그래머인 ‘니오’는 어느 날 기계에 저항하는 실제 인간들에 의해 구출돼 시궁창 같은 현실을 접한다. 니오는 자신을 구한 동료들과 함께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저항활동을 하다가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해 AI도 어찌할 수 없는 ‘그분(the One)’이 된다.

  여러 학자들이 주장하는 회의주의 
  <매트릭스>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인식론적 테마는 회의주의이다. 데카르트는 <성찰 I>에서 감각에 대한 회의, 특히 외부세계에 대한 회의를 진행한다. 회의주의의 첫 근거는 꿈이다. 나에게 주어진 것만으로는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 없으므로 감각 경험은 불확실하다는 주장은 장자의 ‘호접지몽’과 닿아있으며 영화 <인셉션>의 기본 설정이기도 하다. 데카르트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전능한 악마에 관한 사고실험을 한다.

  “더할 나위 없고 유능하고 교활한 어떤 악한 이가 온갖 재주를 부려 나를 속이려 하고 있다고 가정한다. 하늘, 공기, 땅, 빛깔, 모양, 소리 및 모든 외적인 것은… 환이요 속임수일 따름이라고… 또 나 자신은 손도 없고 눈도 없고 살도 없고 피도 없고 아무 감각 기관도 없고, 다만 잘못해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라고 생각하겠다.”(<성찰 I>)

  철학사에서 외부 세계에 대한 회의는 버클리 (George Berkeley)의 관념론으로도 나타난다. 로 크(John Locke)는 외부대상이 관념(idea)을 통해 단지 간접적으로 지각된다고 말했다. 물잔에 있는 빨대가 비연속적으로 보이는 현상은 물체가 있는 그대로 지각되지 않음을 알려준다. 버클리는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esse est percipi)”라 고 하며 직접 알 수 있는 관념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존재하는 실체로 단지 상정돼 있는 물체란 없다고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이는 지나친 견해이다. 하지만 철학사에서 회의주의 는 극복하기가 쉽지 않은 악명 높은 문제이다.

  회의주의는 올해 작고한 퍼트넘(Hilary Putnam)의 ‘통속의 뇌’ 사고 실험으로도 그려진다. 우리가 단지 양액이 가득한 통 속의 두뇌라고 상상해보자. 이 두뇌와 연결된 컴퓨터는 전기 화학적 신호를 내게 전달해 지금 커피 향을 즐기고 있다고 느끼게끔 한다. 물론 우리가 통속의 뇌 일리는 없으나 내적 경험만으로는 실제 경험과 통 속 두뇌의 감각을 구분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외부 세계의 존재를 따로 가정해야 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로 돌아가보자. 그는 왜 이런 회의를 했 을까? 그는 모든 회의에서도 살아남는 확실한 지식의 기반을 찾길 원했다. 감각은 꿈이나 매트릭스처럼 우릴 속인다. 물론 우리가 실제로 매트릭스 세계에서 사는 것인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감각만으로는 실제와 매트릭스를 구분 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매트릭스> 내에서 사람들은 매트릭스를 모른 채 살아간다. 심지어 배신자 사이퍼는 단지 가상임을 알면서도 포도주와 스테이크를 즐기며 동료를 팔아넘긴다). 지식과 학문의 체계는 조금도 거짓이 없는 확실한 진리에 기반을 둬야 한다. 이를 찾기 위해 데카르트는 확실한 진리의 후보들을 검토해 조금이라도 의심의 여지가 있으면 거짓으로 간주하는 방법적 회의를 진행했다. 전능한 악마도 방법적 회의의 일환이다. 데카르트는 <성찰 Ⅱ>에서 극단적인 회의에도 살아남은 진리로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를 발견한다. 내가 존재하지 않으면 전능한 악마라도 나를 속일 수 없다. 내가 세상과 나의 육체에 대해 회의하는 동안 나는 존 재할 수밖에 없다. 회의는 일종의 생각 활동이다. 고로 생각하는 동안 나는 존재한다. 이처럼 감각보다 생각의 확실성을 지식의 원천으로 삼는 사조가 데카르트에서 시작하는 근대 ‘합리주의’이다.

  우리의 결정은 자유의지일까?
  이제 형이상학으로 건너가 보자. <매트릭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니오가 진실을 알려주는 빨간 약을 먹을 것이냐, 파란 약을 먹고 매트릭스에 머물 것이냐를 선택하는 순간이다. 양 손에 약을 들고 있는 모피어스(신화 속 꿈의 신)는 니오가 빨간 약을 선택할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표정을 짓는다.
  19세기 라플라스(Pierre-Simon Laplace)는 현재까지의 모든 사실과 뉴턴법칙을 아는 악마가 존재한다면 그는 미래의 모든 사건을 예측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곧 세상일이 자연법칙에 의해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결정론’을 의미한다. 빅데이터가 바로 현대판 라플라스의 악마이다. 누군가가 매일 학생회관에서 점심을 먹다가 어느 날 별 이유 없이 다른 식당에 가는 예외조차 이미 구글은 알고 있다. 빅데이터는 내가 어느 확률로 기존의 원칙을 깰지도 예측한다. 만일 세상의 모든 일이 이미 인과적으로 다 결정돼 있다면 어느 행위 에 대해 법적·윤리적 책임을 묻는 것이 무의미해 진다.

  매트릭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유로운 선택을 내린다고 생각한다. 나름 혹독한 결과를 초래한 니오의 선택은 단지 호기심에서 비롯한 것일까? 어쩌면 빨간 약의 선택도 AI에 의해 예견돼 있을지 모른다. 또는 일종의 버그일 수도 있다.

  결정론은 자유의지와 양립할 수 있을까? 라플라스의 악마는 우주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며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을 예측한다. 그러나 악마가 아닌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를 앞에 두고 합리적 추론을 통해 최선의 선택을 할 뿐이다. 우리는 그저 정해져 있는 길을 따라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A가 아닌 B라는 선택을 할 수도 있 었으며 나름의 합리적 추론을 통해 A를 선택했다. 따라서 A라는 선택은 이미 결정돼 있었지만 동시에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모피어스와 트리니티는 니오가 도래하기로 예언됐던 그분(the One)임을 굳게 믿는다. 그러나 이들이 찾아간 오라클은 니오가 스스로를 믿으며 그분이 돼야함을 암시할 뿐이다. 처음에는 별 능력이 없던 그는 동료의 믿음에 부응해 자신의 잠재력을 깨닫고서 슈 퍼맨과 같은 그분이 돼 간다. 빨간 약을 선택한 행 위는 니오의 숙명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파란 약을 선택해 익숙한 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다. 선택의 순간에 그는 앞으로 일어날 엄청난 일들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렇더라도 그는 쉽지 않은 선택을 내린 셈이다. 그는 선택 이후 일어나는 모든 일을 책임지며 스스로 그분임을 입증해 나간다. 이렇게 본다면 <매트릭스>는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화해를 그린 영화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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