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우리 안의 과거사
[사설]우리 안의 과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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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4.03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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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덧 완연한 봄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인 봄이 누군가에게는 잊기 힘든 기억을 쏟아내야 하는 시간일 수 있다. 제주 4.3 사건 이후 70년이 지났다. 4.19 혁명이나 5.18 민주화 항쟁과 비교해 제주 4.3 사건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높지 않았다. 제주 4.3 사건이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피해가 컸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비극적 현대사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소극적이었다. 제주 4.3 사건은 추정 피해자만 1만 4천여 명이며, 이들의 유족이 5만 9천 명에 이른다.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 사건이었다고 말하기에 무리가 없을 정도의 규모다. 제주 4.3 사건은 보도연맹 사건과 더불어 민간인 학살의 대표적 사례다.

   또한 제주 4.3 사건은 한국 사회의 민주화 이행 뒤에도 재평가가 늦게 이뤄진 점에서 더 비극적이다. 다른 사건이나 항쟁에 독재, 군사정권이 유용하게 사용한 반공 이데올로기가 강하게 덧입혀진 탓이다. 제주 4.3 사건 기간 토벌대가 남로당의 반란을 진압한 부분도 있고 남로당 역시 학살에 가담한 바가 있다. 그럼에도 이 과정에서 양민 학살이 발생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제주 4.3 사건의 본질은 민간인 학살이다. 이를 주도했던 집단 중 하나는 서북청년회인데, 당시 이승만은 이들을 격려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민주화 이후에도 제주 4.3 사건 유족과 피해자에 대한 감시, 방문조사가 지속됐다. 이후 제주 4.3 사건 희생자 추념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것은 불과 몇 해 전인 2014년이다. 당시 우파 단체 일부는 제주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이었던 박원순 시장의 사임을 요구했다. 제주 4.3 사건은 이처럼 최근까지도 한국 사회 안에서 인정받기 어려운 소수의 외로운 싸움이었다. 다행히 시간이 흐르면서 제주 4.3 사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특히 올해는 70주년을 기념해 다양한 행사가 예정돼 있다.

  한국 사회는 일제강점기 동안 발생한 다양한 탄압과 비인도적 행위에 일본의 사과를 꾸준히 요구해왔다. 국제적으로 이에 대한 지지를 유도하는 노력을 지속했으며, 상당한 수준의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한다. 그럼에도 우리 안의 과거사 중 가장 끔찍했던 사건인 제주 4.3 사건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진상조사나 책임자 처벌이 없었다. 이에 제주 4.3 사건에 대한 재평가는 우리 안의 과거사를 바로 세우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 현대사에는 여러 가지 갈등이 있었으며, 그중에는 무력을 동반한 폭압과 민간인 학살도 있었다. 그럼에도 제주 4.3 사건처럼 오래 다수의 외면을 받아온 경우는 드물다. 경제 성장 이후 사회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높아지면서 한국 사회가 외면해왔던 많은 일이 재평가됐으며, 적절한 조치가 이뤄졌다. 제주 4.3 사건 역시 이러한 궤적을 밟아야 한다는 점에서 늦은 감은 있지만, 한국 사회의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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