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나무와 더불어 살아가요
우리는 모두 나무와 더불어 살아가요
  • 나재연 기자
  • 승인 2018.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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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묵묵하게 우리 곁을 지켜주는 존재가 있다. 바로 나무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나무와 함께 살아오며 나무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바쁜 일상에서 고요한 나무의 도움을 자각하기는 어렵다. 그런 나무에게 관심을 갖고 나무에 대해 기록하는 사람이 있다. 나무가 담고 있는 사람살이(人)의 무늬(文)를 듣는 ‘나무 인문학자’ 고규홍 작가(이하 고 작가)를 만나봤다.


  학창시절부터 꿈꿔온 작가
  고 작가는 어릴 때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근대 소설가인 김동인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나도 죽기 전에 이런 소설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나무에 관한 글을 쓰고 있지만 언젠가 소설을 쓰겠다는 꿈을 갖고 있어요. 제가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데, 글쓰기 강의를 하면서 농담 삼아 ‘나는 좋은 소설을 쓰기 전까지는 안 죽을 거라서 200년이 돼도, 300년이 돼도 살아있을 거다’고 말하곤 해요.지금은 나무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소설은 못쓰고 있지만, 언젠가는 써야죠.”

  고 작가는 중앙일보 기자를 그만두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려는데, 원고지와 가까운 직업을 갖고 싶었어요. 또 염상섭, 최서해, 채만식 같은 일제강점기 소설가들이 기자 출신이에요. 그래서 선배 소설가들이 걸었던 길을 따르는 의미에서 기자가 됐어요. 그런데 기자가 차장 정도 직급이 되면 직접 글을 쓰거나 취재를 하러 가기보다 후배들이 쓰는 글을 보는 사람이 되잖아요. 그래서 그 전에 사표를 냈어요. 제가 좀 무모한 성격이거든요. 그날 집에서 아내가 무슨 일로 일찍 왔냐고 물어봐서 오늘 사표 냈다고 말할 정도로 대책 없이 사표를 냈어요.”



  나무와의 우연한 만남
  고 작가는 직장을 그만둔 후 천리포 수목원으로 떠났다. “처음에는 절에 들어가서 소설을 구상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때는 템플스테이가 활성화돼있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절을 찾지 못해 고민하던 중에 제 친구가 절보다 더 조용한 곳이 있다며 천리포 수목원을 추천해줬어요. 그때 천리포 수목원을 처음 알았어요. 지금 천리포 수목원은 1년에 30만 명이 오는 곳이지만 당시에는 3천 명의 회원만 갈 수 있는 비공개 수목원이었어요. 또 지금보다 교통이 좋지 않아서 회원들도 그 곳에 잘 오지 않았고요. 그래서 아주 조용한 곳이었죠.”

  고 작가는 천리포 수목원에서 두 달을 지냈다고 한다. “그때 저는 나무에 관심이 없었어요. 그냥 조용한 곳에서 소설을 구상하고 쉬려고 했을 뿐 이었죠. 그런데 12월 초, 눈이 내리고 있을 때 산책을 하다가 하얀 꽃이 피어있는 걸 발견했어요. 그 꽃의 푯말을 봤더니 목련과라고 쓰여 있었어요. 그런데 목련은 봄에 피는 꽃이지 겨울에 피는 꽃이 아니잖아요. 그 꽃을 보면서 분명 사연이 있어 겨울에 피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사연이 무엇인지 궁금해졌어요. ‘지금까지 기자로서 사람의 사연을 캐러 다녔다면, 이제부턴 나무의 사연을 캐보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나무에 빠져들다
  고 작가는 지난 20년 동안 나무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처음에는 나무에 대한 글을 오래 쓸 것 같지 않았어요. 잠시 하다가 소설을 쓰거나 다른 일자리를 찾으면 그만둘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나무에 대해 알면 알수록 깊이가 있더라고요. 또 이런 분야의 글이 없다 보니까 제 글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생겼어요. 그래서 저 자신도 즐겁고 보람차서 계속 나무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어요.”

  고 작가는 나무가 사람의 향기를 간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가 보는 나무는 식물학자들이 보는 나무와 달라요. 저는 사람이 떠나도 나무는 남는다고 말해요. 나무는 종류에 따라 천 년 이상도 살아요. 그렇게 오래 사니 나무의 곁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무척 많은 거죠. 나무는 그 사람들의 향기를 간직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저에게 나무란 사람과 더불어 살아오며 사람의 무늬를 간직하고 있는 자연물이에요.

  예를 들어 충청남도 서산 해미읍성에 감옥 터가 있는데, 그 감옥 터 바로 앞에 회화나무 한 그루가 있어요. 이 회화나무는 조선 시대 병인양요 때 배교를 거부하는 천주교인을 매달아 놓는 용도로 쓰였어요. 그렇게 천여 명이 죽었어요. 그래서인지 이 회화나무는 가지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구불구불하게 자랐어요. 원래 회화나무는 느티나무처럼 무성한 가지를 넓게 펼치며 자라는 아름다운 나무거든요. 하지만 해미읍성의 회화나무는 곁에서 죽어가는 생명들을 보면서 자기 방식대로 몸을 펼 수 없었던 거죠. 나희덕 시인의 <해미읍성에 가시거든>이라는 시에도 이 회화나무가 처형의 도구로 쓰이며 생김새가 달라진 사연에 대해 말하고 있어요. 이처럼 나무는 사람살이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요.”



  나무를 찾아 떠나는 발걸음
  고 작가는 글을 쓰기 위해 직접 나무를 찾아간다고 한다. “제 원칙이 ‘삶은 머리로 이뤄지지 않고 반드시 현장에서 이뤄진다’는 거예요. 기자로 일을 하며 삶의 현장을 직접 찾아가야만 한다는 원칙이 생긴 것 같아요. 가보지 않고 인터넷에 검색하는 것만으로 사람살이의 무늬를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거죠. 상상할 수 없는 가슴 찡한 이야기들은 인터넷에 검색해서는 나오지 않고 현장에 가야만 들을 수 있어요. 그래서 가지 않으면 쓰지 않죠. 또 이미 다녀온 곳이라도 제가 가지 않았던 사이 나무가 변했을 수도 있고 새로 만나는 사람이있을 수도 있으니 다시 가보기도 해요.”

  그렇게 직접 현장을 다니며 고 작가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많이 돌아다니다 보니식물학자나 전문가들이 발견하지 못한 나무를 제가 먼저 발견하기도 해요. 제가 화성 전곡리에서 물푸레나무를 봤는데, 그 나무가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나무라 알려진 나무보다 두 배 이상 컸어요. 그래서 이 나무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해 문화재청에 천연기념물 지정을 신청했어요. 이후 이 물푸레나무는 전문가들의 정밀조사를 거쳐 천연기념물로 지정됐어요. 알려지지 않았던 나무가 저를 통해서 보존되고 알려지게 돼 의미 있는 일이었죠.”

  나무를 통해 위로를 건네다
  고 작가는 매주 ‘나무편지’를 쓴다고 한다. “기자를 그만두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어 좋았지만, 제 글을 읽어줄 독자가 없어 외로움을 느꼈어요.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다가 인터넷을 이용하게 됐어요. 그렇게 제가 쓴 글을 HTML 파일로 만들어서 아는 사람들에게 이메일로 보내는 나무 편지를 시작했어요. 지금은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나무편지를 받아요. 제 홈페이지에서 이메일 주소를 기재하면 누구나 받을 수 있거든요.”

  고 작가는 나무편지를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며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처음 나무편지를 쓴 2000년부터 지금까지 제 부모님이 돌아가신 두 달을 제외하고는 매주 나무편지를 보냈어요. 그렇다 보니 나무편지를 많이 아껴주시고, 사랑해주시는 분들이 생겼어요. 그분들이 답장을 보내주시기도 해요. 한 분은 병원에서 말기 암 환자인 아내를 간호하다가 서너 달 만에 집에 돌아오셨다고 해요. 그분이 집을 정리하고 컴퓨터를 켜서 이메일을 체크하는데, 그동안 쌓인 나무편지가 눈에 띄었대요. 그 자리에서 나무편지들을 하나씩 보기 시작했는데, 그걸 읽으면서 지난 시간 동안 쌓였던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었다고 해요. 그래서 나무편지를 보내줘서 감사하다고 저에게 답장해주신 거죠. 작가로서 이런 식으로 제 글을 통해 누군가를 치유해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기쁜 일이에요. 이러한 답장을 통해 제가 작가로서 살아가는 데 많은 힘을 얻어요.”



  직접 나무를 느껴보세요
  고 작가는 나무와 더불어 살고 있다는 것을 직접 느껴보라고 권했다. “대학생은 활동적이기 때문에 정적인 나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바라볼 겨를도 없고요. 그래도 나무가 우리와 관계를 맺으며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체임을 느껴봤으면 해요.딱 30초면 돼요. 나무의 곁에 가서 서 있는 거예요. 그리곤 숨을 길게 들이쉬고 내뱉어요. 그러면 이산화탄소가 나오잖아요. 이 이산화탄소를 나무가 빨아들이고 산소를 뱉어주는 거예요. 이걸 들이마시면 내가 내뱉은 이산화탄소가 산소가 돼서 다시 내 몸에 들어오는 거죠. 이 30초를 통해서 나무와 한 몸이 돼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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