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을 소재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지난 6월 개봉 직후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후 참여 제작진 다수가 한국계 애니메이터로 밝혀지며 자연스레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의 현황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의 성장
우리나라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은 1967년 개봉한 <홍길동>이다. <홍길동>은 당시 소년조선일보에서 연재하던 만화 <풍운아 홍길동>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이는 초창기 국내 애니메이션의 기반을 다졌다. <홍길동>의 흥행에 힘입어 국내에 극장용 애니메이션들이 대거 등장했으나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후 가정에 텔레비전이 보급되면서 국내 방송국은 외국에서 수입한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을 방영하기 시작했다. 이에 수입 애니메이션 작품들이 큰 인기를 얻었고 국내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시장이 축소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도 이런 변화에 발맞춰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제작을 시도했다. 이에 1968년 일본과 합작해 제작한 <황금박쥐>가 방영됐다. 그러나 제작의 중심축이 되는 주요 작업은 일본에서 이뤄졌고 우리나라는 △동화 △채색 △배경 등의 하청 작업을 도맡았다. 이후 국내 애니메이션 업계는 하청받아 제작한 애니메이션이 대다수를 이뤘다. 제작사들이 높은 제작 비용으로 실패 위험이 큰 자체 제작을 피한 결과였다. 또한 정부의 내용 검열로 인해 창작 애니메이션 제작이 감소했고 하청 작업을 중심으로 성장해 나갔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우리나라의 문화예술계가 전환점을 맞이하면서 국내 방송사들도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창작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1980년대 후반 <달려라 하니>와 <아기공룡 둘리>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큰 인기를 얻자 방송사들은 앞다퉈 아동용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아기공룡 둘리>는 캐릭터산업으로 확장되며 문화 상품으로서도 전례 없는 성공을 이뤘다. 이어 2003년 EBS에서 방영된 <뽀롱뽀롱 뽀로로>는 100개국 이상의 해외로 수출되며 국내 애니메이션 업계에 큰 획을 그었다. 이후 국내에선 △<냉장고나라 코코몽> △<로보카 폴리> △<캐치! 티니핑> 등의 아동용 애니메이션이 등장하며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을 확대했다.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의 현주소
애니메이션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산업 구조의 변화를 바탕으로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콘텐츠산업조사에 따르면 2023년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의 전체 매출액은 약 1조 1,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23%p 성장했다. 이런 성장의 배경은 원천 콘텐츠에 기반한 애니메이션 제작 방식에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제작하는 애니메이션은 주로 원작에 기반해 2차 창작 형태로 제작된다. 웹툰이나 게임 등 타 콘텐츠와 연계돼 만들어지는 애니메이션의 경우 기본적인 줄거리와 캐릭터를 구상하는 과정이 없어 제작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또한 기존 콘텐츠의 독자 층을 확보할 수 있어 안정적인 팬덤 형성이 가능하다.
한편 수입 장편 애니메이션들의 극장가 흥행이 애니메이션에 대한 국내 인식 개선에 힘을 실었다. 과거 애니메이션은 어린이용 만화영화나 일부 팬층의 하위문화로 인식됐다. 그러나 해외 장편 애니메이션의 흥행을 계기로 이러한 인식이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2023년 국내 개봉 흥행 10위권 내에 △<엘리멘탈> △<스즈메의 문단속>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자리하며 애니메이션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애니메이션 전문 OTT 플랫폼인 ‘라프텔’은 2022년 국내 토종 OTT 플랫폼 중 유일하게 흑자 전환에 성공하며 상승세를 보였다. 라프텔의 국내 월간 활성 이용자 수는 두 자릿수에서 꾸준히 성장해 올해 7월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겼다. 통계청에 따르면 12세 이하 아동 인구는 2012년 대비 2022년 약 139만 명 감소했지만 같은 기간 사이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의 규모는 약 4천억 원 이상 성장했다. 이는 애니메이션 소비층이 아동을 넘어 다양한 연령대로 확대됐음을 보여준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구조적 어려움
한국은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원천 콘텐츠를 보유했지만 이를 자체 제작 애니메이션으로 발전시킬 산업적 체계가 여전히 미비하다.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 구조는 주로 하청 중심으로 운영된다. 국내 유명 애니메이션 회사들 또한 미국, 일본과 같은 해외 대형 스튜디오의 하청을 받아 작업한다. 하청 작업 방식은 완성된 작품의 지식재산권(이하 IP)이 발주처에 귀속돼 국내 기업의 수익 창출과 브랜드 파워 형성에 불리하다. 본격적인 제작 전후의 △기획·구상 단계 △후반 작업 △연계 확장 사업에 대한 전문성도 떨어지게 된다. 이와 같은 산업 구조의 한계로 인해 경쟁력 있는 콘텐츠가 국내에서제대로 제작되지 못하고 있다.
노동 환경 역시 열악하다. 애니메이션 업계 노동자들은 저임금 중노동에 시달리며 이로 인해 숙련된 인력이 업계를 떠나거나 해외로 유출되고 있다. 2023년 콘텐츠사업 고용구조 분석 연구에 따르면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78.9%의 기업이 인력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애니메이션 기업은 대부분 50명 내외의 중·소규모 사업장으로 비정규직 비율 또한 약 40%에 달한다. 기업들은 자체 제작보단 해외 기업의 외주 작업을 선호할 수 밖에 없다. 이런 구조가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하는 악순환을 낳는다. 더해 텔레비전 중심의 유통 체제와 영유아 애니메이션에 편향된 제작·투자는 장기적으로 국내 애니메이션의 경쟁력이 저하될 수밖에 없는 요소다.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선 창작 중심의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 애니메이션 업계의 전문 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하고 안정적인 노동 환경 보장을 통해 인재 유출을 막아야한다. 이를 바탕으로 국내 IP 생산이 증가하고 이를 수익화하는 사업 모델을 강화한다면 한국 애니메이션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콘텐츠로 자리 잡을 것이다.
세계로 나아가는
K-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은 더이상 특정 세대만 즐기는 콘텐츠가 아닌 전 세대를 아우르는 콘텐츠로 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애니메이션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육성해 세계 시장으로의 진출을 목표하고 있다. 올해 4월 문화체육관광부는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애니메이션 산업 진흥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해당 발표에 따르면 △애니메이션 특화 펀드 신설 △애니메이션 IP 확대 △캐릭터 IP 활성화 △전문인력 양성 △전략적 해외 진출 △제작 산업 확대 등 6대 중점 추진 과제를 마련할 계획이다.
현재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을 이끄는 제작 모델과 수출 성과도 주목할 만하다. ‘투니모션’은 인기 웹툰을 애니메이션으로 변환해 플랫폼에 유통하는 국내 회사다. 웹툰 원고를 활용해 애니메이션으로 바꾸는 작업을 거쳐 성우 더빙과 효과음을 합성해 영상을 제작한 후 유통한다. 인기 웹툰을 바탕으로 작업하는 만큼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적합한 청장년층 대상 애니메이션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추고 있다.
또한 올해 7월 개봉한 <킹 오브 킹스>는 국내 시각특수효과 전문기업인 모팩 스튜디오가 제작했다. 개봉한 지 17일 만에 북미 개봉 한국 작품 중 최고 수익을 돌파했으며 국내에 올해 개봉한 애니메이션 중 처음으로 100만 관객을 넘겼다. <킹 오브 킹스>는 내수용이 아닌 해외 시장을 목표로 제작됐지만 국내 기술과 자본으로 완성돼 의미가 깊다.
글로벌 시장에서 문화 콘텐츠의 힘이 커지고 있는 만큼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에도 아낌없는 투자와 관심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뛰어난 창작자들이 마음껏 역량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이를 통해 국내 제작 애니메이션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독자적인 콘텐츠로 성장하길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