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빚어낸 도자기, 흙에서 예술로
시대를 빚어낸 도자기, 흙에서 예술로
  • 이예선 강원대학교 조형예술·디자인학과 교수
  • 승인 2026.09.14 16: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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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을 넘어 시대를 담다, 도자기의 오랜 여정

  △흙 △물 △불을 통해 만든 도자기에는 그것을 만들어 온 사람들의 삶과 시대의 모습이 담겨 있다. 생활을 위한 그릇에서 출발한 도자기는 고려청자의 비취빛과 조선백자의 담백한 아름다움으로 이어져 새로운 미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젠 국경을 넘어 세계의 산업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도자기의 역사를 따라가며 그 안에 담긴 기술과 예술의 가치를 살펴보고자 한다.

  흙과 불에 새겨진 기술과
  미의 역사를 따라가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밥그릇과 찻잔은 너무 익숙해서 그 안에 얼마나 긴 시간이 담겨 있는지 생각하기 어렵다. 그러나 도자기는 인류가 △흙 △물 △불의 성질을 이해하고 생활에 활용해 온 대표적인 산물이다. 부드러운 흙은 손을 거쳐 형태를 얻고 불을 통과하면서 다시 물에 풀리지 않는 단단한 그릇이 된다. 초기의 토기는 음식을 저장하고 조리하는 생활 도구로 쓰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도자기에는 한 시대의 △기술 수준 △미의식 △사회의 가치관까지 함께 새겨졌다. 오늘날 박물관에 놓인 그릇 한 점을 바라보는 일은 오래된 생활용품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 표면에는 그것을 만들고 사용했던 사람들의 △삶 △기술 △시대가 남아 있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빗살무늬토기
출처/국립중앙박물관

  흙과 불이 만든
  문명의 그릇

  빗살무늬토기는 한반도의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유물 가운데 하나다. 서울 암사동에서 출토된 토기를 보면 넓은 입에서 좁은 바닥으로 이어지는 몸체에 선과 점으로 이루어진 기하학적 문의가 반복된다. 토기는 음식을 담고 저장하거나 끓이는 데 사용됐다. 그릇의 등장은 사람들이 다양한 식재료를 조리하고 보관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생활방식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토기는 단순한 ‘용기’에 그치지 않았다. 표면에 반복해서 새긴 기하학적 무늬에는 물건을 만드는 사람의 미적 감각과 당시 공동체의 문화가 함께 드러난다. 흙을 빚어 형태를 만들고 표면을 장식한 뒤 적당한 온도에서 구워 완성품을 얻으려면 재료와 공정에 대한 경험적 지식이 필요했다. 선사시대 토기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단지 그릇의 오래된 연대만이 아니다. 자연에서 얻은 재료를 인간의 의도에 따라 다른 성질의 물질로 변화시켰다는 점이다.

  흙이 단순히 마르는 것과 불에 구워지는 것은 다르다. 물이 빠져굳은 흙은 다시 물을 만나면 쉽게 무르지만 충분한 온도에서 구워진 점토는 물에 다시 쉽게 풀리지 않는 단단한 물질로 변한다. 인간은 이런 변화를 경험으로 익히며 더 높은 온도와 더 안정적인 가마를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도자기는 생활 도구이자 하나의 재료기술로 발전했다.

  도자 제작의 변화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불을 다루는 기술의 발전이었다. 노천에서 굽던 방식에서 한발 더 나아가 가마를 이용해 열을 가두고 공기의 흐름과 온도를 조절하면서 더 단단하고 치밀한 그릇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이후 가마와 유약 기술이 발전하면서 더욱 다양한 도자기가 등장했다. 이런 점에서 도자기의 역사는 인간이 불을 얼마나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게 되었는가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매끈한 자기 한 점에서 보는 색과 광택은 수백, 수천 번의 실패와 경험을 통해 축적된 재료기술의 결과다.

 

  고려, 푸른빛에
  기술과 상상력을 새기다

  한국 도자사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이름 가운데 하나는 고려청자다. 고려의 도공들은 중국에서 발전한 청자 제작 기술과 양식을 받아들이면서도 이를 그대로 모방하는 데 머물지 않고 자신들만의 색과 장식 기법을 발전시켰다. 특히 12세기에 이르면서 고려청자는 높은 수준의 제작 기술과 독자적인 미감을 보여준다.

  고려청자의 푸른빛은 표면에 푸른 안료를 칠해 얻은 색이 아니다. 철 성분을 포함한 흙과 유약 그리고 가마 안의 산소를 줄여 굽는 환원 소성 조건이 함께 적용해 특유의 회청색과 비취색을 만들어낸다. 당시 사람들도 이 색은 특별하게 여겼다. 1123년 고려를 방문한 송나라 사신 서긍은 「선화봉사고려도경」에서 고려 사람들이 청색 도기를 ‘비색(翡色)’이라고 부른다고 기록했다.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이 오늘날에 와서 새롭게 발견된 것이 아니라 동시대 사람들에게도 깊
은 인상을 남겼음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고려 도자의 독창성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주는 기술은 상감이다. 아직 완전히 마르지 않은 그릇의 표면에 무늬를 파고 그 자리에 흰색이나 검은색 흙을 채워 무늬를 만들고 그 위에 유약을 입혀 구워내는 방식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청자 상감 구름 학 무늬 매병」을 보면 그 효과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푸른 유약은 마치 하늘처럼 펼쳐지고 그 위에 흰 학과 구름이 떠다닌다. 장식은 그릇의 표면 위에 단순히 덧붙여진 것이 아니라 그릇의 몸체 안에 새겨져 유약 아래에서 하나의 화면을 이룬다. 재료의 성질을 이해하는 기술과 자연을 그릇에 담으려는 미적 상상력이 함께 만난 결과다.

청자 상감 구름 학 무늬 매병출처/국립중앙박물관
청자 상감 구름 학 무늬 매병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조선, 흰 그릇에서
  비움의 아름다움을 찾다

  조선에 들어서면서 도자의 분위기는 달라진다. 고려 상감청자의 전통은 분청사기로 이어졌고 한편에서는 백자의 생산과 사용이 점차 확대됐다. 15세기 후반에는 왕실의 수요에 맞춰 경기도 광주 일대의 관요(분원)에서 백자가 제작됐고 이후 백자는 조선을 대표하는 도자기로 자리 잡았다. 흔히 조선백자를 성리학의 검소함과 절제만으로 설명하지만 실제 변화에는 △왕실의 수요 △생산체계 △기술발전 △시대별 취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백자는 장식이 적은 만큼 형태와 색 자체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유물이 ‘달항아리’다. 달항아리는 크기 때문에 하나의 흙덩어리로 물레 성형하기 어려워 위아래 몸체를 따로 만든 뒤 가운데를 이어 붙였다. 높은 온도의 가마에서 굽는 과정에서 조금 기울거나 완벽한 원형에서 벗어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미세한 비대칭과 자연스러운 흰빛은 오히려 달항아리 특유의 매력이 됐다.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이 정교한 장식과 깊은 색채에서 드러난다면 달항아리는 넓은 흰 공간과 단순한 형태만으로 시선을 붙든다. 무엇을 더 새길 것인가보다 어디까지 덜어낼 수 있는가가 새로운 미적 질문이 된 셈이다. 같은 흙과 불로 만든 그릇이 시대에 따라 전혀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는 사실은 도자기가 단순한 생활도구를 넘어 시대의 미의식을 담는 매체임을 잘 보여준다.

백자 달항아리출처/국립중앙박물관
백자 달항아리
출처/국립중앙박물관

  바다를 건넌 도자기,
  세계의 취향을 바꾸다

  도자기의 역사는 한 나라 안에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중국에서 먼저 고도로 발전한 자기를 바탕으로 한반도와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각 지역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각자의 도자문화를 발전17세기 유럽에서 중국과 일본의 자기는 값비싼 수입품이자 선망의 대상이었다. 유럽의 장인들은 오랫동안 동아시아의 단단하고 희며 반투명한 자기를 직접 만들 방법을 찾았다. 1780년 작센에서 경질자기 제작에 성공한 뒤 1720년 마이센에 유럽 최초의 경질자기 제작소가 세워졌다. 초기 마이센 자기의 청화 장식과 형태에는 당시 유럽을 매료시켰던 동아시아 자기의 영향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이러한 동아시아 자기 열품은 유럽의 실내장식과 식문화, 이른바 ‘시누아리즈’ 취향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 점의 그릇이 △취향 △산업 △기술 경쟁까지 움직인 셈이다.

  근대 이후 한국 도자가 서구에서 알려지고 평가받는 과정 역시 일방적인 ‘전파’라기보다 △수집 △연구 △예술가들의 교류 속에서 그 가치가 다시 발견되는 과정으로 보는 편이 적절하다. 이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가 대영박물관의 조선 달항아리다. 영국 도예가 버나드 리치(Bernard Leach)는 1935년 서울에서 이 항아리를 구입했고 1947년 도예가 루시 리(Lucie Rie)에게 빌려주었다가 선물했다. 달항아리는 이후 오랫동안 루시 리의 작업실에 머물렀고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1999년 대영박물관에 들어갔다. 조선에서 만들어진 흰 항아리 한 점이 국경을 넘어 현대 도예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세계적인 박물관의 소장품이 된 것이다. 도자기가 이동시킨 것은 물건만이 아니었다. 그릇을 만드는 기술과 형태 그리고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시선도 함께 이동했다.

 

  손끝에서 디지털로,
  아직 끝나지 않은 도자의 역사

  현대 도예가들은 △청자의 유약 △백자의 형태 △전통적인 소성기술을 이어가면서 동시에 △조각 △설치 △디자인과 결합해 도자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디지털 기술도 새로운 도구가 됐다. 네덜란드 디자이너 올리비에 반 허프트(Olivier van Herpt)는 젖은 점토를 층층이 쌓는 대형 세라믹 3D프린터를 개발해 사람이 손으로 빚은 흔적과 기계가 반복해서 만드는 패턴이 함께 드러나는 그릇을 선보였다. 최근에는 생성형 AI로 도자의 형태나 표면 무늬를 탐색하고 이를 3D 모델과 점토 프린팅으로 연결하려는 연구와 창작도 등장하고 있다.

  수천 년 전 사람들은 흙이 불을 만나 단단해지는 성질을 이용해 그릇을 만들었다. 고려의 도공은 가마 속 산소와 유약을 조절해 비취빛을 얻었고 조선의 도공은 흰 흙과 단순한 형태 속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찾았다. 오늘날의 작가는 컴퓨터와 AI로 형태를 탐색하고 기계로 점토를 쌓기도 한다. 사용하는 도구는 끊임없이 달라졌지만 흙이라는 평범한 재료의 가능성을 탐구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도자기는 과거의 유물만이 아니다. 한 시대의 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했는지, 사람들이 무엇을 아름답다고 여겼는지, 서로 다른 문화가 어떻게 만나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박물관의 유리 진열장 안에 놓인 그릇 한 점을 마주할 때 그 표면의 색과 무늬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안에 함께 이어진 사람과 시대의 이야기를 상상해 본다면 도자기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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