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의 말엔 저마다의 시간이 깃들어 있다. 같은 뜻을 전하는 말도 살아온 곳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고 그렇게 달라진 말은 오랜 시간 사람들의 입을 통해 이어져 왔다. 지역마다 다른 모습으로 이어져 온 방언은 어떻게 자리 잡게 됐을지 살펴보고자 한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
함께 살아온 우리말
우리가 흔히 같은 의미로 혼동하는 ‘사투리’와 ‘방언’은 언어학적으로 서로 다른 개념이다. 국립국어원은 사투리를 표준어와 달리 특정 지역에서 사용하는 말로, 방언을 한 언어 안에서 지역·사회적 환경 등에 따라 나타나는 독립적인 언어 체계로 설명한다. 즉 방언은 한 언어가 실제로 사용되는 다양한 모습을 포괄한다.
한국어는 처음부터 하나의 모습으로만 존재해 온 것이 아니다. 인천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하신영 교수(이하 하 교수)는 “같은 한국어를 사용하더라도 사람마다 사용하는 △어휘 △표현 △발음 등이 다를 수 있고 △지역 △세대 △사회적 환경에 따라서도 언어의 모습은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한국어는 사용하는 사람과 환경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일상에서 사용하는 말의 차이를 표준어와 방언으로 구분한다. 표준어는 다양한 한국어의 양상 가운데 공통적인 부분을 중심으로 일부를 선택해 표준으로 정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 한국어 사용은 표준어라는 하나의 기준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하 교수는 “우리가 사용하는 말엔 지역적 특성뿐 아니라 세대와 개인에 따른 차이도 있기 때문에 실제 한국어 화자가 일상에서 표준어만을 완벽하게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표준어가 정립되기 전에도 우리말은 이미 다양한 형태로 사용되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방언이라 부르는 말 역시 우리말의 다양한 모습 가운데 하나다. 표준어가 공적인 의사소통의 기준으로 자리 잡은 현재에도 방언은 여전히 한국어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산과 강을 따라
달라진 우리말
‘어서 오세요’란 말도 지역에 따라 다르게 들린다. △경상도에선 퍼뜩 오이소 △전라도에선 언능 오씨요 △충청도에선 어여 오슈 △제주도에선 혼저 옵서예라고 표현한다. 같은 의미를 전하는 말이 지역에 따라 달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방언의 지역적 차이는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됐다.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신중진 교수(이하 신 교수)는 “사람들이 이동하고 정주하면서 지역에 따라 말이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이는 오늘날의 방언이 우리 삶 속 언어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지역별로 자연스럽게 분화해 온 결과임을 보여준다. 또한 신 교수는 “한반도의 방언은 북방계·남
방계로 나뉘고 그 안에서 서부·동부 방언으로 나뉜다”며 “서부방언은 소리에 장단이 있는 반면 동부방언은 장단이 없고 높낮이가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지역적 차이를 보이면서 우리나라엔 △경기 △강원 △충청 △전라 △경상 △제주 방언이, 북한엔 △평안 △함경 방언이 형성된 것이다.
그렇다면 지역에 따라 말이 달라지는 데에는 무엇이 영향을 미쳤을까.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정승철 교수(이하 정 교수)는 “지역 구성원 사이에 교류가 줄어들면 말이 달라지고 교류가 활발해지면 말이 비슷해진다”며 “교류에 영향을 미치는 △시간 △지리 △사회적 요소가 방언이 다양해지는 이유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교류의 차이에는 지리적 환경도 영향을 미쳤다. 신 교수는 “△산맥 △강 △섬 같은 지리적 환경이 지역 간 언어의 전파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지리적 영향은 방언의 분포를 나타내는 ‘등어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신 교수는 “등어선의 굴곡이 △산맥 △강 △섬에 따라서 생긴다”고 전했다.
이처럼 방언에는 사람들이 살아온 지역의 환경이 담겨 있다. 사람들이 어떤 환경에서 살아왔는지, 다른 지역과 얼마나 교류해 왔는지에 따라 언어의 모습도 달라져 왔다. 오랜 시간 형성된 지역의 특성은 그곳에서 사용하는 말에도 남는다.
사라지는 말,
다시 피어나는 말
방언은 한 번 형성된 뒤 그대로 유지되는 고정된 말이 아니다. 신교수는 “방언도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이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면서 변한다”며 “△신생 △성장 △쇠퇴 △사멸의 길을 걷는다”고 설명했다. 시대와 환경이 달라지면서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 역시 자연스럽게 변한다.
오늘날 방언의 변화에는 표준어 사용 확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 교수는 “표준어 사용이 확대됐기 때문에 방언이 위축되고 소멸 위기에 빠지게 됐다”고 말했다. 이러한 변화는 세대에 따른 언어 사용 양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립국어원에서 실시한 ‘2025년 국민의 언어 인식 조사’에 따르면 평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로 표준어를 응답한 비율은 20대에서 68.2%로 가장 높았다. 반면 60대에선 37.8%에 그쳤다. 이처럼 표준어를 주로 사용하는 비율에서도 세대에 따른 언어 사용의 차이가 나타났다.
지역어의 어휘가 줄어드는 경우도 있다. 신 교수는 “전남 진도군 조도 지역에선 과거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 따라 △샛바람 △마파람 △갈바람 △하누바람 등 다양한 이름을 사용했지만 현재는 일부만 남거나 ‘바람’으로 통칭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방언의 변화가 곧 사라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 교수는 언어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표현이 변형되거나 새로운 지역어가 생겨나는 등 다른 형태로 변화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방언은 기존의 모습을 잃는 동시에 새로운 형태로 변화하며 이어지기도 한다.
결국 오늘날의 방언은 단순히 사라져 가는 말로만 볼 수 없다. 표준어의 영향으로 일부 방언이 위축되는 동시에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표현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변화하는 방언을 우리는 왜 기록하고 보존해야 할까.
우리말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선
방언을 기록하는 일은 과거의 말을 보존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국립국어원은 지역어를 조사해 △어휘 △구술발화 △음성 자료 △지역어 지도를 구축하고 ‘지역어 종합 정보’를 통해 제공하고 있다. 현재 사용되는 방언을 기록해 두면 시간이 지난 뒤 당시의 언어생활과 지역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된다.
이러한 기록은 현재의 한국어를 이해하기 위한 연구 자료로도 활용된다. △지역 △세대 △사회적 환경에 따라 △어휘 △표현 △발음이 달라지는 만큼 다양한 방언을 살펴보면 한국어가 실제로 어떻게 사용되고 변화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하 교수는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한국어를 연구하는 것”이라며 “현재 사용되는 다양한 언어 형태를 동등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방언 연구는 과거에 사용되던 말을 수집하는 데만 머물러선 안 된다. 현재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까지 함께 기록하고 연구해야 한국어가 시간과 공간에 따라 변화해 온 모습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과거의 방언과 현재의 언어를 함께 기록하는 것은 한국어의 변화 과정을 축적하는 일이기도 하다.
방언의 가치는 언어가 지닌 다양성에서도 찾을 수 있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서로 다른 말이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말이 하나의 모습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신교수는 “우리의 가치는 획일성보단 다양성에 있다”며 “방언 역시 다양성의 보물창고”라고 표현했다. 국립국어원에서 실시한 ‘2025년 국민의 언어 의식 조사’ 중 ‘지역 방언의 유지·존속에 대한 생각’에 따르면 지역 방언이 존속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59.2%로 그렇지 않다고 답한 7.4%보다 높았다. 이는 방언이 변화하고 위축되는 상황에서도 그 다양성을 이어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방언을 단순히 사라지는 말로 바라보기보다 한국어의 한 부분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말엔 서로 다른 지역과 세대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저마다의 말로 쌓아온 시간이 담겨 있다. 그 말들이 모여 오늘의 우리말을 이루고 있다. 그렇기에 방언을 기록하는 일은 누군가의 삶과 시간이 깃든 말을 기억하고 서로 다른 모습으로 이어져 온 우리말의 시간을 다음 세대에 건네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