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을 술로 달래는 키친 드링커
외로움을 술로 달래는 키친 드링커
  • 황보경 기자
  • 승인 2022.03.02 01: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집을 집이라 부를 수 없는 이들

  여성 알코올 중독 환자의 상당수는 40대 이상 전업주부다. 일명 ‘키친 드링커’라 불리는 이들은 가정 내외 그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달래기 위해 혼자 술을 마시다가 중독에 빠진다. 가부장제라는 환경적 요인에 기반한 키친 드링커의 알코올 중독은 우울증과 악순환을 반복하며 삶을 파괴한다. 구조적 차별의 피해자인 이들을 더 이상 가정 문제만으로 치부하면 안 된다.

 

  나날이 증가하는 키친 드링커
  줄어드는 남성 환자와 대비돼

  키친 드링커란 남편과 자녀가 없거나 잠든 시간대에 집에서 술을 마시는 알코올 중독 여성을 말한다. 이들은 매일, 혼자, 몰래 음주 후 술을 숨겨 놓는다는 특징이 있다.

  2006년부터 수면 위로 드러난 키친 드링커 문제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채 이어지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국내 알코올 사용 장애 환자 수를 조사한 결과 2018년 국내 여성 알코올 사용 장애 환자 수는 1만 7,000여 명으로, 2014년부터 연평균 증가율 1.6%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1.73%의 감소율을 보인 남성 환자수와 대비된다. 같은 해 실제로 치료를 받은 진료 현황 통계에서도 남성은 2.04%의 연평균 감소율을 보인 반면, 여성은 1.16% 증가율로 상대적으로 높은 수치를 보인다. 여성 환자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연령대는 40대로, 22.8%를 차지한다. 2018년 기준 40~49세 전업주부 가정은 54.2%, 50~64세는 50.5%다. 40~50대 여성의 알코올 사용 장애 증가는 키친 드링커의 증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같은 기간 동안 남성 알코올 사용 장애 환자는 줄어들었으나 여성은 증가세를 보였다.
같은 기간 동안 남성 알코올 사용 장애 환자는 줄어들었으나 여성은 증가세를 보였다.<출처/데이터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 제공>

 

  알코올에 취약한 여성
  술로 삶과 가정 파괴해

  키친 드링커의 가장 큰 문제는 개인의 건강 파괴다. 여성은 남성보다 알코올 분해 효소가 원활하지 않다. 월간폭음률 통계에서도 술자리 1회당 남성 소주 7잔, 여성 소주 5잔을 기준으로 한다. 여성은 남성과 동일한 양의 술을 마셨을 때 혈중알코올농도 수치가 약 2배가량 더 높다. 따라서 음주 시 간 질환, 우울증, 불안증, 폭식증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지속적으로 음주할 시 암이나 종양 생성을 촉진하는 단백질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간경화증과 당뇨는 물론 치매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다.

  두 번째 문제는 자녀에게 대물림이 된다는 점이다. 산모가 키친 드링커라면 태아를 태아 알코올 증후군(Fetal Alcohol Syndrome, 이하 FAS)으로 만든다. FAS는 태아의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미쳐 신체 기형과 학습장애를 일으키는데, 성인기 사회 부적응자가 되는 2차 장애까지 유발한다.

  또한 키친 드링커와 함께 생활하는 가족들은 심한 트라우마를 경험한다. 이러한 가정에서 방치된 아이들은 엄마와 비슷한 환경에 놓일 경우 술에 의존하는 습관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전 가톨릭정신과 A 원장은(이하 A 전 원장) “알코올뿐만 아니라 부모의 삶 자체가 대물림될 수 있다”며 “자신이 부모로부터 받은 부정적 면을 성찰하고 바뀌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다”고 말했다. 대물림은 알코올 중독 재현을 넘어 △성 중독증 △대인기피증 △도박중독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진병원 양재진 대표원장은 “아빠가 알코올 중독일 때보다 엄마가 알코올 중독인 경우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크다” 며 “병원에서 치료할 시 엄마의 금주를 이뤄내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상처받은 자녀들의 마음까지 치료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음주에 빠진 전업주부들,
  ‘우울하기 때문에 마신다’

  키친 드링커가 술을 찾는 가장 큰 환경적 이유는 가정에서의 소외로부터 생기는 외로움이다. △남편과의 불화 △자녀와의 충돌 △시부모와의 갈등 등 가정문제가 많을수록 외로움이 극대화된다. 이러한 공허함과 외로움에 가족이 아닌 술만이 자신을 위로해줄 수 있다고 느끼며 홀로 음주를 시작한다. A 전 원장은 “생물 심리 사회 모델에 따르면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은 △유전 △심리 △환경이 각각 1/3씩 차지한다”며 “여성 알코올 중독자에게는 가정과 가부장적 사회에서 오는 스트레스나 성적 억압이 환경적 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그러나 술은 세로토닌과 도파민 분비를 통해 일시적으로 기분을 좋게 만들어줄 뿐, 장기적으로는 부정적인 감정을 조절하는 힘을 잃게 만든다. 음주가 반복되면 이전만큼 호르몬을 분비시키기 위해 더 많은 알코올을 필요로 하며, 음주하지 않을 시에는 우울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이는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키우며 악순환으로 번진다.

  2018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조사에 따르면 우울증을 겪는 여성은 45만 명이며 그중 40~50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43.25%다. 단순 호르몬뿐만 아니라 참고 견디는 것이 여성의 미덕으로 여겨지는 사회 풍조로 인해 억압된 감정들이 표출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키친 드링커의 우울은 단순 가정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독박육아, 경력단절, 가부장제가 요구하는 며느리상 등 곳곳에 자리잡은 성차별적 문화가 만들어 낸 결과다.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 병수 원장은 “남자는 술을 많이 마셔서 우울증에 빠지지만, 여자는 우울증 때문에 술을 마시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며 “키친 드링커는 지난 세월에 대한 회한과 이루지 못한 꿈으로 인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술을 마신다”고 말했다.

한 잔으로 시작한 술은 내성이 생기면서 더 많은 알코올을 필요로 하고, 낮밤을 가리지 않게 되면서 중독으로 접어든다.
한 잔으로 시작한 술은 내성이 생기면서 더 많은 알코올을 필요로 하고, 낮밤을 가리지 않게 되면서 중독으로 접어든다.<출처/용인정신병원>

  여성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지름길로 술을 찾는다는 점을 이용한 마케팅도 지속적인 음주에 영향을 준다. 달콤한 과일주나 낮은 도수 주류를 언제든 가볍게 마실 수 있는 음료처럼 홍보함으로써 술에 대한 경계심을 확 낮추는 것이다. 다사랑중앙병원 김석산 원장은 “최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학교 수업이나 보육 시설, 문화센터 등의 운영이 정체되며 육아 스트레스가 가중해 이에 대한 보상으로 술을 찾는 문화가 활발해졌다”며 “소량이어도 습관적으로 반복된다면 내성이 생겨 점점 음주량이 늘어나고, 결국 알코올 중독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

 

  사회적 편견이 늦추는 치료
  적극적 제도 개선 바탕 돼야

  키친 드링커는 정신적 치료가 필수다.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은 서로 악순환의 반복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키친 드링커는 병원을 찾아 치료받기까지의 과정이 남성보다 오래 걸리며, 대부분의 알코올 중독 치료가 남성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어 맞춤형 치료를 받기 힘든 실정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전체 여성 알코올 질환자 40만 9,414명 중 치료를 받은 비율이 3.9%에 그쳤다고 발표했다. 이는 9.9%인 남성에 비해 6%나 낮은 수치다. 원인으로는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중년층의 잘못된 편견 △알코올 중독을 숨기려는 사회 분위기 △부족한 사회대비제도 등이 있다.

  특히나 알코올 중독을 수치로 여기는 사회 풍토는 유독 여성에게 더 가혹하다. 직업적으로 성공한 여성이 남성보다 술을 잘 마신다는 이미지가 생겨날 정도로 이전보다 사회가 술을 마시는 여성에 대해 관대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성 알코올 중독 환자에 대한 편견과 비난은 여전하다. 각 가정에서 적극적으로 치료를 권하기보다 알아서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해 중증까지 병을 키우는 사례가 많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더라도 남성에 비해 수치심과 무력감, 죄책감을 더 많이 느껴 조기 퇴원을 강행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보건복지부 지정 알코올 질환 전문 병원이 적은 것도 문제점이다. 전국을 통틀어 9곳밖에 되지 않으며, 수도권 4곳을 제외하면 도별로 한두 개 정도밖에 없는 실정이다. 정신과 병원이 총 400여 개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매우 적은 비율이다. 대부분의 의사가 알코올 질환 전문 병원 신청을 꺼리는데, 인력을 타 병원보다 20% 더 채용해야 하고 타 정신과 입원환자를 후 순위로 둬야 해 경영난이 생기기 때문이다. 현재 각 지역에서 공공의료 역할을 담당하는 알코올 질환 전문 병원은 어려움을 감내하며 소명의식을 발휘하는 것이다. 아주편한병원 정재훈 병원장은 “사회적 필수분야로 전문 병원에 포함된 알코올 질환 전문 병원이 잘 유지되고 더 확대되려면 이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다”고 말했다.

알코올 전문 병원의 기능과 특징이다. 전국을 통틀어 9곳밖에 없다.<출처/알코올전문병원협의회 공식 홈페이지>

  여성 알코올 중독은 남성과 다른 양상을 보인다. 여성차별로 인한 스트레스를 억누르다 한 잔, 두 잔 시작한 음주가 파멸로 이어진다. 단순히 가정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되며, 사회적 뒷받침을 꼭 마련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도봉구 삼양로144길 33 덕성여자대학교 도서관 402호 덕성여대신문사
  • 대표전화 : 02-901-8551, 8558
  • 청소년보호책임자 : 고유미
  • 법인명 : 덕성여자대학교
  • 제호 : 덕성여대신문
  • 발행인 : 김건희
  • 주간 : 조연성
  • 편집인 : 고유미
  • 메일 : press@duksung.ac.kr
  • 덕성여대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덕성여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duksung.ac.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