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비극을 되돌아보는 여정, 다크 투어리즘
역사적 비극을 되돌아보는 여정, 다크 투어리즘
  • 고유미 기자
  • 승인 2023.05.08 13: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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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참상·재해 현장 체험으로부터 배우는 성찰과 교훈

  다크 투어리즘은 비극적 사건을 담고 있는 역사적 장소나 재난·재해 현장을 방문해 해당 사건을 체득하는 여행이다. 이 과정에서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가지며 교훈을 얻기도 한다. 세계적인 다크 투어리즘 관광지로는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미국 9.11 테러 발생지 그라운드 제로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등이 있다. 우리나라도 다크 투어리즘 개발 및 관광 상품화가 이어지며 여행자의 체험과 공감을 끌어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이에 기자가 국내 다크 투어리즘 관광지에 방문했다.

 

국권 침탈의 과거를 엿보다
남산 국치의 길

  국권을 상실한 치욕스러운 역사를 기억하고 상처를 치유하자는 의미에서 조성한 국치길은 남산 곳곳에 남아있는 국치의 흔적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 길을 걸으면 과거 국권 상실의 치욕을 감당해야만 했던 시대적 아픔을 느낄 수 있다. 각 장소에는 대한제국 강제병합과 항일무장투쟁의 역사, 일본군 ‘위안부’를 기리는 공간까지 마련돼 있다. 남산을 중심으로 이어진 국치길을 표시하는 ‘ᄀ’자 보도블록 로고가 길목 곳곳에 설치됐다. 이는 표시와 함께 역사를 ‘기억’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 통감관저 터는 1906년 통감관저를 설치한 장소이며 1910년부터 1939년까지 조선총독관저로 쓰였다. 1910년 8월 22일 통감 데라우치 마시다케와 이완용이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해 수탈의 역사가 깊게 박힌 통감부와 조선총독부의 터다. 기억의 터는 △나비로 △세상의 배꼽 △대지의 눈 등으로 구성됐다.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는 나비로의 노란 나비 모양 안내 표식이 시작을 알린다. 세상의 배꼽 속 글귀를 통해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필연적으로 반복됨을 알 수 있다. 기억의 터에서는 건립 기념 조형물인 대지의 눈을 볼 수 있다. 대지의 눈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이름과 증언이 새겨져 있다. 조형물에 그려진 김순덕 할머니의 작품 <이끌림>은 납치를 당
했던 긴박한 상황을 묘사한 그림으로 당시 상황을 말해주는 듯하다.

남산 국치길에 있는 거꾸로 세운 동상과 통감관저 터 비석
남산 국치길에 있는 거꾸로 세운 동상과 통감관저 터 비석 <사진/고유미 기자>
작품 이끌림이 새겨진 대지의 눈
작품 <이끌림>이 새겨진 대지의 눈 <사진/고유미 기자>

 

일제강점기 속 아픈 역사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서대문형무소는 항일독립운동에 대한 일제의 대표적 탄압기관이며 수많은 애국지사와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정신이 깃들어 있는 장소다.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하고 박해한 흔적들이 복원돼 있으며 민족 수난의 역사를 담고 있다. 광복 이후에도 4.19혁명, 5.16군사정변과 같은 사건들로 인해 독재 정권과 군사 정권에 저항한 많은 시국사범이 이곳에 투옥됐다.

  전시관에는 △형무소역사실 △민족저항실 △지하고문실 △조사실·취조실이 있다. 전시관은 서대문형무소의 업무를 총괄했던 보안과청사 건물을 활용한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역사적 사건과 고문의 실상, 독립운동가들의 증언을 돌아보며 식민 통치에 의한 희생을 기억하고 되새길 수 있다.

  △중앙사 △옥사 △공작사 △취사장 △사형장에서는 수감자들의 수감생활을 보고 느낄 수 있으며 일제의 탄압이 이뤄진 방식을 알 수 있다. 중앙사는 옥사 전체를 감시할 수 있는 파놉티콘 구조로 간수들이 수감자를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건물이다. 옥사에는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민주화 운동가를 수감하고 고문해 형벌을 집행한 흔적들이 남아있어 역사적 아픔을 돌아보게 한다.

  서대문형무소에서는 일제강점기 민족독립의 역사와 민주화 시기 정치적 급변을 간직한 장소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민족정신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서대문형무소 중앙사의 외부 전경
서대문형무소 중앙사의 외부 전경 <사진/고유미 기자>
수감자들이 실제로 투옥된 10옥사
수감자들이 실제로 투옥된 10옥사 <사진/고유미 기자>

 

민주주의의 열망을 담은
국립 4.19민주묘지

  우리대학 인근 강북구 수유동에 있는 국립 4.19민주묘지는 4.19혁명의 민주열사와 희생자를 기리는 국립묘지다. 이곳에 방문하면 독재 권력에 맞서 일어난 1960년 4.19혁명의 희생자를 기억하고 민주주의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주요 시설은 △4.19혁명기념관 △4월학생혁명기념탑 △수호예찬의 비 △*유영봉안소 △4.19민주묘지다. 4.19혁명기념관에서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전개 과정, 이에 따른 역사적 의의를 배울 수 있다. 4.19혁명 희생정신을 기리는 4월학생기념탑은 민주묘지 중앙에 있으며 민주열사의 동상과 함께 참배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잔디광장에 있는 자유의 투사 조형물은 궐기학생과 진압경찰의 대치 상황을 묘사한 동상이며 수호예찬의 비는 4.19혁명이 소재인 시를 각인한 비석이다. 자유의 투사 조형물과 함께 수호예찬의 비에 새겨진 시를 읽으면 당시의 상황을 깊게 이해할 수 있다. 유영봉안소는 유영을 봉안해두고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 공간이다.

  국립 4.19민주묘지에 방문해 과거 의거 및 혁명 과정을 되돌아보고 민주주의의 역사적 의의와 교훈을 생각해 보는 기회를 얻길 바란다.

4월학생혁명기념탑
4월학생혁명기념탑 <사진/고유미 기자>
4.19민주묘지 전경
4.19민주묘지 전경 <사진/고유미 기자>

 

제주 4.3사건의 흔적
관덕정과 4.3평화공원

  제주도는 4.3사건을 중심으로 다크 투어리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유적지들은 4.3사건으로 인한 민간인 학살과 당시 제주도민들의 처절한 삶을 기억하고 추념하기 위한 공간이다.

  관덕정은 본래 군사훈련을 목적으로 세워졌으며 과거 관민이 함께 공사를 의논하고 죄인을 다스리는 곳으로 쓰였다. 이곳은 1947년 3월 1일 4.3사건 발발의 도화선이 된 3.1 발포사건이 일어난 현장이다. 제28주년 3.1절 기념식을 마친 참가자들이 시위를 벌였고 관덕정 앞을 빠져나가던 중 어린아이가 기마경찰의 말발굽에 치였다. 경찰이 다친 아이를 조치하지 않자 시민들의 항의가 시작됐고 경찰의 발포로 인한 희생으로 이어졌다. 3.1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3.10 민관총파업이 일어나 제주 4.3사건이 발발했다.

  제주 4.3평화공원은 사건의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조성했다. 주요 시설로는 △제주4.3평화기념관 △위령제단 △위패봉안실 △위령광장 △봉안관 등이 있다. 기념관에는 4.3 사건의 역사적 진실을 기록하며 사건의 배경과 전개 과정, 결과와 현재 진상규명운동까지의 역사를 그렸다. 위령제단은 4.3 희생자에 대한 참배를 진행하는 공간이다. 위패봉안실은 희생자의 위패가 모셔진 공간이며 위령광장에서는 매년 4.3 희생자 추념식을 봉행한다. 봉안관에는 4.3 유해발굴사업에 의해 발굴된 희생자의 유해가 봉안돼 있다.

제주4.3평화공원 중앙에 있는 위령탑
제주4.3평화공원 중앙에 있는 위령탑 <사진/고유미 기자>
국가지정 보물 제332호 관덕정
국가지정 보물 제332호 관덕정 <사진/고유미 기자>

 

 



*유영: 고인의 초상이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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