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가 판치는 세상
판소리가 판치는 세상
  • 이경라 기자
  • 승인 2009.09.16 17: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알아갈수록 깊이 있는 우리 음악

신명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미학이다. 신명은 한(恨)을 잊게 하고 흥(興)으로 인도한다. 또한 악(惡)를 몰아내고 복(福)을 채워주는 버거운 현실을 이겨내는 원동력이다. 이런 힘을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이들 중 하나가 중요무형문화제 제5호 판소리 흥보가 이수자인 채수정 선생이다.
그녀는 예향(예술을 즐기는 사람이 많고 예술가를 많이 배출한 고을)으로 알려진 진도에서 고모들의 민요와 판소리를 배경삼아 환경적으로 귀에 익어왔다. 실질적으로는 같이 부를 수는 없었지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17세에 어머니의 뜻에 따라 국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사실 고등학교 이전까지는 판사가 되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공동선을 추구하는 인간적 가치를 판결로서 내리고 싶었다. 하지만 국악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로 지금까지도 판소리 밖에 모르고 살았다. 그녀에게는 새롭게 배우는 것인 만큼 배움에는 끝이 없었고 그 과정이 재미있고 신기하게 느껴졌다. 16살 즈음에서 판소리로 시작된 제2의 인생이 새롭고 이상적으로 느껴졌고 의무라고 생각했다. 더불어 엄청난 과제들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것을 하기 보다는 판소리를 취미로 여기고 전공으로 키워왔다.
20년이 넘게 판소리를 하면서 후회한 것은 없지만 힘든 점이 많았다. 대학생들이 학교를 졸업하면 취직을 해야 하고 한 분야의 전공자로서 인정을 받고 경력을 쌓아 가야한다. 그런데 그녀 같은 예술가들은 대학을 졸업해도 똑같다. 돈도 벌 수 없고, 무언가 끝이 없다는 것을 하고 있다는 게 그녀에게는 굉장히 어렵게 느껴졌다. 한 60세 정도는 넘어가야 전공자로서 알려질까 말까하고 학교를 졸업하더라고 배워야 할 것은 너무 많다. 그녀는 결혼을 해서 주부로 살면서도 마음속에는 연습해야하는데, 저번 공연보다 이번에는 더 잘해야 하는데 등등 항상 새로 생겨나는 과제들로 판소리에 관심이 쏠려있었다. 배우고, 외우고, 공연장도 가고, 레슨도 받아야 하고 등 학생의 신분을 못 벗어난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가 작년에 이화여대 박사학위를 받았으니 초등학교 입학하면서부터 32년간을 학생의 신분으로 살았다는 느낌이다.
그녀는 “박사학위를 받고 학교에서 인정은 받았지만 예술가로서 보면 아직도 초보다”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이미 중견 소리꾼이라는 말은 많이 붙이지만, 그녀가 스스로 돌아보았을 때는 아직 멀었다. 스승님들이나 다른 명창들의 소리를 들으면 ‘나도 저렇게 해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때 너무 힘들고 지친다. 오늘도 그녀는 스승인 박송희 선생 사진을 옆에 두고 북을 치면서 연습을 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졸업이라는 것이 없다는 생각에 연습을 하다가도 종종 우울해진다. 박송희 선생도 판소리 인간문화재인데 이제야 판소리를 좀 알 것 같다고 말씀하신다니 공감이 된다.

문화소통으로 표현되는 기쁨

 
약간 침울했던 분위기 속에서 무대와 공연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니 그녀의 눈이 다시 반짝거렸다. 3~4시간, 길게는 5시간의 긴 시간의 완창 공연을 하다보면 지치지 않으냐는 물음에 그녀는 “아니다”라고 단번에 대답한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 공연이 막바지로 흘러갈 쯤이면 점점 힘이 솟는다고 한다. 무대에 서면 연습할 때보다 긴장이 풀리고 편해지면서 목소리도 풀리고 컨디션이 배로 좋아진다. 그녀가 가진 목소리로, 그녀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표출한다는 기쁨은 말로 할 수가 없다.
이런 그녀도 국악에 대한 관심이나 흥미가 서양의 다른 장르들 보다 떨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국악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국악에 대한 관심이 서양의 다른 장르들보다도 많다. 국악은 아직도 자연스러운 것을 많이 추구하는데 서양의 것은 강하고 과장되는 것들을 좋아하는 정서적인 차이는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요즘에는 퓨전 바람이 불어서 다른 서양의 악기와도 한 무대에서 공연을 하기도 하고 그런 공연들을 보다보면 전통 국악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늘지 않을까. 그런데 요즘에 조금만 국악적인 요소가 보여도 다 국악으로 보는 경향이 있더라고 한다. 서양의 악기들 가운데 가야금 하나만 들어가 있어도 국악이다, 전통이다 라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조금은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그녀는 동서의 예술적 관계가 더 원만히 되어서 넘나들고 소통하다 보면 국악도 지금보다는 관심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성악+연극=판소리

그녀는 “국악에 대한 시도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말한다. 그런데 요즘 세대의 젊은이들은 가사가 어렵다, 알아들을 수가 없다 라는 이유로 판소리에 대한 시도를 해보지 않는 것이 그녀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말로 들린다. 물론 한자가 많아서 어렵게 느껴지기는 하겠지만 한자를 모른다고 해서 국민이 모두 아는 고전의 이야기 전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핑계에 그친다는 생각이다. 가수 ‘아웃사이더’의 속사포 같은 랩은 가사를 보고 따라 해보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처럼 판소리에도 그 정도의 관심을 가진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장르이다. 또한 그 많은 시도들 속에서 우리 전통의 가치는 잊지 않았으면 하고 판소리가 판치는 세상이 언젠가는 올 수 있지 않을까 꿈꿔보기도 한다.
판소리는 이야기로 따지면 문학이고, 음악으로 따지면 성악이고, 공연으로 따지면 연극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판소리는 1인 창극이지만 다양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또한 매우 다양한 감정들을 담고 있다. 우리의 조상들의 희노애락을 담은 판소리야 말로 애국적이고 전통을 고수할 수 있는 노래이다. 그녀는 소리를 하면서 행복을 느끼고 연습 때문에 힘들고 괴롭다가도 또 공연하고 교육을 하다보면 자부심도 생기고 힘도 난다. 노래를 하다보면 가슴 절절한 가사 한 구절이 마음속에 박혀서 나 자신까지도 이야기 속에 투영되는 듯 한 느낌도 들기 마련이다.
제비 다리를 고쳐 준 흥보의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처럼 그녀도 대한민국의 판소리를 애국심과 사랑으로 널리 퍼뜨리고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도봉구 삼양로144길 33 덕성여자대학교 도서관 402호 덕성여대신문사
  • 대표전화 : 02-901-8551, 8552, 855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전유진
  • 법인명 : 덕성여자대학교
  • 제호 : 덕성여대신문
  • 발행인 : 김경묵
  • 주간 : 조연성
  • 편집인 : 전유진
  • 메일 : press@duksung.ac.kr
  • 덕성여대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2 덕성여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duksung.ac.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