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예정된 삶이 아니다.
인생은 예정된 삶이 아니다.
  • 강수경 교수님
  • 승인 2007.04.14 2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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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을 졸업한 다음날 아버지는 어린 나에게 장래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물으셨다. 나는 하얀 가운이 예뻐 보이던 간호사가 되고 싶다고 하였더니 아버지는 법대를 가서 판·검사가 안 되면 굶어 죽는다고 하셨다. 이후 대학입학원서를 쓰는 날까지 판·검사가 안 되면 굶어 죽는 줄 알았던 나는 아무 고민 없이 법대를 진학, 고시공부를 시작하였다.

대학 재학 중 내가 좋아하던 남학생이 자기친구와 소개팅을 하지 않겠냐고 하였다. 그 남학생과 친해질 흑심으로 나는 그 소개팅을 나갔다. 소개팅에 나온 파트너는 나에게 자기가 활동을 하는 야학을 구경시켜주겠다고 하였다. 그 파트너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서울 성동구 공장밀집지역내에 어느 건물의 복도 끝을 막아서 운영을 하는 곳이었다. 그 곳을 들어서던 순간의 잔잔한 충격. 중년의 돋보기 아저씨부터 내 또래의 대학생연배의 청년까지 모두 대학생선생들의 어설픈 수업을 허기진 배를 채우듯 흡수하고 있었다. 나는 그날 이후 그 야학의 선생이 되었고 이후 고시공부는 등한시되었다. 매일 도서관에서 밤늦게까지 고시준비를 하고 있는 줄 아셨던 부모님들은 자꾸 사법시험에 떨어지는 나를 의아해 하셨다. 이후 고시가 아닌 대학원을 진학하면서 부모님께 그간 고시공부가 아닌 야학에서 선생을 하였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고시보다는 학문을 하고 싶다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날의 홀가분함이란.

지금 나는 법학을 가르치는 선생을 하고 있다. 판·검사가 되지는 못하였으나 아버지의 말씀처럼 굶어 죽지는 않았다. 자화자찬을 한다면 부모님의 희망이셨던 법학을 가지고 돈을 벌고 있으니 부모님의 기대를 어느 정도 충족시켜드린 것이고, 대학생활의 대개를 차지하였던 야학에서 느꼈던 가르침의 성취감을 선생이 되어 또한 느끼고 있으니 나 스스로에게도 만족스런 결과인 듯하다.

지금까지의 삶속에서 느낀 것은 인생은 희망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나, 매 순간 충실하게 살아간다면 스스로 만족할 만한 해석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나에게 법학에의 길을 열어 주신 나의 아버지에게 감사한다. 법학은 안 하면 굶어 죽을 만큼은 아니나 매력이 있는 학문이다. 그리고 나를 야학이라는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어 준 그 파트너를 한번쯤은 만나보고 싶다. 야학을 시작하고 얼마지 않아 나에게 다른 남자친구가 생겨 그 남학생은 군에 입대를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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