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잠재적 난민이다.
우리는 모두 잠재적 난민이다.
  • 장복희 선문대 법학과 교수
  • 승인 2015.06.01 17: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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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기는 전쟁과 난민의 세기였다. 1917년 공산주의를 탄생시켰던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 이후 수많은 난민들이 유럽으로 유입되면서 난민 문제가 시작됐다. 국제연맹 시절 초대 난민고등판무관으로 임명된 노르웨이 출신 프리요프 난센 박사는 러시아 난민을 유럽에 재정착시키기 위해 구호활동을 펼쳤고 이후 동유럽 난민의 보호까지 그의 권한이 확대됐다. 이후 2차 세계대전만으로도 3천여 만 명의 난민이 양산됐다.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민 문제가 없어질 줄 알았으나 유럽에서는 냉전시대 이데올로기의 이유로, 아프리카에서는 식민지 시절을 벗어나면서 발생한 종족 간의 충돌로, 중동에서는 종교와 민족의 갈등으로, 남미에서는 정치적 사유 등으로 오대양 육대주 전 지구가 난민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한반도도 예외는 아니어서 동아시아 지역에 이념 갈등으로 인한 탈북자 문제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난민의 세기, 국제적 난민 보호의 시작 국제연맹 시절의 난민 구호활동은 1945년 창설된 유엔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2015년 5월 현재 유엔난민기구(UNHCR)의 보호대상자는 난민, 실향민 등을 포함해 약 4천 2백만 명에 달한다. 이는 전 인류의 170명당 한 명꼴이 난민 신세라 할 수 있고 이 중 80% 정도가 여성과 아동이다. 난민 보호는 1948년 채택된 세계인권선언 제14조 “모든 사람은 박해를 피해 타국에서 비호를 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인간의 권리인 ‘비호권’에서 비롯된다. 난민으로 인정받게 되면 이들은 박해를 받는 곳으로 강제송환을 당하지 않는다는 ‘강제송환금지원칙’(principle of non-refoulement)의 적용을 받게 된다. 인권의 국제적 보호를 위해 탄생한 유엔도 세계의 소수자 문제 해결을 위해 난민에 가장 먼저 관심을 갖고 1951년 최초로 난민협약을 채택했다. 그만큼 난민 문제가 중요했고 세계평화와 안전을 지키기 위해 난민 해결이 전제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1951년 이전에 발생했던 유럽 난민 보호에 한정됐던 난민협약의 제약성으로 인해 유엔은 1967년 난민 보호의 시간적·지역적 한계를 없앤 1967년 난민의정서를 채택하고 전 세계 난민 보호를 위해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도 난민협약과 난민의정서에 가입돼 있고 이로써 난민 보호의 국제적 노력에 협력하겠다고 공약한 셈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의 전신인 국제난민기구는 독일, 오스트리아 및 이탈리아의 난민촌을 떠나 새로운 삶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는 유럽인들을 도왔다.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지는 
  국제 난민 보호

  난민협약 제1조에 의하면 난민은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공포로 인하여, 자신의 국적국 밖에 있는 자로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난민은 조국은 있으나 특정 사유로 인해 조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을 말한다. 난민에게 제일 시급한 문제로는 자신들의 신분을 증명해 줄 수 있는 신분증명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제연맹시절 ‘난센여권’으로 불리는 증명서를 발급했고 이는 현재 난민협약에 의해 난민에게 발급되는 여행증명서로 바뀌었다. 일차적으로 난민의 신분 보장과 이주를 자유롭게 하는 조치가 이뤄졌고 점차 개인적 지위 보장, 기본권 보장, 고용 기회의 부여와 강제추방 금지와 같은 국내외적 조치가 진행 중이다. 

  난민 발생의 해결로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난민을 보호하지만 해당 국가가 안전할 경우 난민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해 자발적으로 본국 귀환이 이뤄지는 것이다. 이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처음 도착한 비호국에 정착하거나 제3국에 재정착하는 방안이 있다. 무엇보다도 난민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국가에 의한 인권 침해에 있다. 그러므로 사전에 난민 발생을 예방하거나 줄이는 해당 국가에 민주화의 바람을 불어넣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난민 보호와 해결의 3중 전략을 동시에 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1922년 국제 연맹의 프리요프 난센 박사가 처음 도입한 난센 여권은 국적이 없는 난민들을 위해 발행했던 최초의 국제적 신분증이다.   출처/위키백과
  국제규범에서 난민의 정의와 박해는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지 않고 모호한 개념으로 남겨져 있다. 기존의 난민 정의를 확대 해석하고, 가능한 발생할 수 있는 박해를 모두 포함하도록 규범 초안자들이 의도한 것이다. 최근에는 할례, 성적 소수자, 양심적 병역 거부, 고문 피해자 등의 예상치 않았던 사유로 난민 신청을 하고 있고 이러한 이유로 나라별로 난민으로 인정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는 누구나 어떠한 사유로 난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2001년 정치적 박해에 따른 첫 에티오피아 난민을 인정한 이후 현재 난민 신청자 10,760명 중 난민협약에 의해 490명을 협약난민으로 인정하고, 797명에게는 인도적 체류를 허가했다. 또한 2013년 7월부터는 아시아 최초의 독립된 난민법을 채택하였다. 난민법에 따라 법무부에 ‘난민과’가 신설됐고 인천 영종도에 난민 지원 기능을 수행하는 난민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난민 신청자에 대해서는 생계와 정착을 지원하고 있기도 하다. 아시아에서는 우리나라가 제도적으로, 실질적으로 난민 지원을 선도해 나가고 있는데 이는 난민 보호에 있어서는 큰 변화라 할 수 있다.

  난민 보호의 수혜국
  이제는 난민지원으로 돌려줄 때
 
그리스의 비극시인 유리피데스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조국을 잃은 일”이라고 했다. 우리도 일제 식민지 시절 나라를 잃어본 경험이 있고 한국전쟁으로 인한 전쟁 난민, 암울한 군사정권 시절 정치적 난민을 유출한 경험이 있다. 그랬던 한국이 이제는 난민을 수용하는 국가가 됐다. 그만큼 우리의 인권 의식과 역량이 커지고 국력이 신장했음을 의미한다.

  대문호 빅토르 위고,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키신저와 올브라이트, 상대성이론을 만든 아인슈타인, 천재 음악가 쇼팽은 모두 난민 출신으로 그들은 이 세상을 변화시킨 인물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백범 김구 선생, 도산 안창호 선생과 안중근, 윤봉길 의사, 노벨평화상 수상자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난민으로 보호받았던 적이 있었고, 이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한국의 독립과 민주화는 요원했을 것이다. 지금은 과거 국제사회에서 받았던 수혜를 돌려주고 난민 보호라는 국제적 노력에 협력해 나갈 때이다.

  우리는 우리나라에 난민 신청을 하는 외국인에게 편견을 버리고 주변에 살아가고 있는 난민에게도 한국을 ‘제2의 조국’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인류애를 가지고 대해야 할 것이다. 이들은 훗날 조국으로 돌아가 한국말을 잘하고 한국을 잘 아는 민간외교관으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난민이 잘 정착하고 자신의 능력을 발전시켜 정착국과 세상에도 도움이 되는 훌륭한 인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 사회의 민주주의의 성숙도는 강한 자와 약한 자의 인격적 대우와 인권 존중의 간격으로 가늠된다. 난민 보호는 불투명한 현실에서 잠재적 난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임무이기도 하다. 앞으로 한국의 난민법 제도가 우리 사회 내의 모든 약자의 인권 보호 상징이 되고 다른 소수자보호법 제정의 견인차 역할을 하며 나아가 세계 평화와 안전에도 기여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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