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게 찍힌 낙인, 게임업계 사상검증
여성에게 찍힌 낙인, 게임업계 사상검증
  • 나재연 기자
  • 승인 2018.10.01 12: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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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업계에 성행하는 ‘메갈’ 숙청

  마녀사냥이란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 유럽에서 빈번하게 일어났던 광신도적 종교재판이다. 이는 당시 기독교 세력의 권력 유지를 위한 이교도 숙청으로부터 시작돼 무고한 희생자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사회의 혼란을 정당화하는 기제로 이용됐다. 이에 오늘날 우리는 무고한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비난하는 것을 마녀사냥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2016년, 우리나라의 게임업계에서는 마녀사냥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여성 노동자 탄압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게이머게이트’
  한국의 ‘넥슨 티셔츠 사태’

  미국 게임업계를 뒤흔든 ‘게이머게이트(#Gamer Gate)’ 사태는 지난 2013년, 여성 독립 게임 개발자 ‘조 퀸(Zoe Quinn)’이 출시한 ‘디프레션 퀘스트(Depression Quest)’라는 게임에서 시작됐다. 해당 게임은 조 퀸의 우울증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게임으로, 게임 평론가들과 일부 유저들의 호평을 받았다. 그런데 2014년, 조 퀸이 게임 평론가와 성관계를 맺은 대가로 게임에 대한 호평을 약속받았다는 루머가 퍼졌다. 이에 일부 게이머들은 조 퀸이 게임업계의 공정성과 도덕성을 훼손했다며 게이머게이트 해시태그 운동을 벌였다.

  결과적으로 조 퀸이 성상납으로 평론가들에게 호평을 받아냈다는 것은 아무 근거 없는 허위사실이었다. 그러나 게이머게이트는 이러한 사실관계를 규명하기보다 조 퀸의 신상을 털고, 신변에 위협을 가하며 강간·살인 협박을 하는 괴롭힘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마녀사냥은 게임업계의 다른 여성 노동자에게도 벌어졌다. 페미니스트 미디어 비평가 ‘아니타 사카시안(Anita Sarkeesian)’은 게임 내 여성의 이미지를 비평하는 비디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이에 반발하는 게이머들에게 살해 협박 등 신변의 위협을 받았다. 게이머게이트는 미국에서 게임업계의 여성 종사자들을 공격하고 게임업계에서 배제하려는 움직임이었다.

  2016년, 우리나라의 게임업계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여성 노동자를 탄압하는 ‘넥슨 티셔츠 사태’가 일어났다. 지난 2016년 7월, 넥슨의 온라인 게임 ‘클로저스’에서 ‘티나’ 캐릭터를 연기한 김자연 성우(이하 김 성우)는 ‘Girls Do Not Need A PRINCE’라는 문구가 쓰인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 해당 티셔츠는 페이스북이 온라인 커뮤니티 ‘메갈리아’의 페이지를 잇달아 삭제하자 메갈리아 측이 이에 대한 소송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후원하면 제공되는 상품이었다. 이를 알아본 일부 네티즌이 김 성우에게 메갈리아를 옹호하는 것이냐는 의문을 제기했고, 이에 김 성우는 자신의 SNS에 “메갈리아의 회원으로 활동한 적은 없지만 여성혐오에 대응하는 웹사이트라 생각하고 있다”며 “딱히 나쁜 인상을 갖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이후 김 성우의 발언에 대해 많은 사람이 해명을 요구했다. 이에 김 성우는 SNS를 통해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라면 행동에 책임을 질 의사가 당연히 있다”며 “무엇을 해명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전했다. 이에 많은 사람이 김 성우에게 반감을 갖고 넥슨에 김 성우를 새로운 성우로 교체해달라고 요청했다. 김 성우가 ‘메갈’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에 넥슨은 하루만에 클로저스 홈페이지를 통해 티나의 성우를 교체하겠다고 전했다. 같은 날, 에이스톰의 게임 ‘최강의 군단’에서도 김 성우가 담당한 캐릭터 ‘이나자미’의 음성 교체를 공지했다. 이는 지난 2015년에 넥슨의 온라인 게임인 ‘메이플스토리2’에서 미성년자를 성희롱했던 성우를 기용해 논란이 됐을 때, 6일이 지난 후 성우 교체를 공지했던 것에 비해 매우 빠른 대처였다.
 

출처/기자연 트위터 지난 2016년 7월, 김자연 성우가 자신의 SNS에 올린 사진이다.
지난 2016년 7월, 김자연 성우가 자신의 SNS에 올린 사진이다. <출처/김자연 트위터>

  성우 교체를 시작으로
  퍼지는 ‘메갈 사냥’
  넥슨 티셔츠 사태는 많은 비판과 우려를 낳았다. 게임개발자연대는 SNS 게시글을 통해 “넥슨이 김 성우와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건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며 “이가 앞으로 게임 개발자들의 정치적 의사 표명을 막고, 특히 여성 개발자들의 목소리를 억압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우려는 실제로 이어졌다. 김 성우의 교체 이후 남성 이용자 위주의 게임 커뮤니티에서는 성우나 원화가, 시나리오 작가 등 게임업계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메갈’인지 아닌지 검증하는 ‘메갈 사냥’이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메갈 사냥을 자행하는 커뮤니티의 게이머들은 여성 노동자들이 개인 SNS에서 페미니즘(Feminism) 성향을 담고 있는 게시글을 직접 작성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러한 타인의 게시글에 공감을 표하거나, 여성 단체의 공식 계정을 팔로우하는 행위까지도 메갈이라 규정했다. 그리고 여성 노동자의 SNS를 살피며 이러한 행위들을 포착해이를 근거로 내세우며 게임회사에 여성 노동자를 게임에서 배제하라고 요청했다.

 

  메갈 사냥의 정점,
  사상검증 면담

  2016년 이후, 게임업계에서는 메갈 사냥이 만연하게 이뤄져 왔다. 그러던 지난 3월, IMC게임즈의 게임 ‘트리 오브 세이비어’의 성혜진 원화가(이하 성 원화가)가 메갈로 지목당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에 IMC게임즈 김학규 대표(이하 김 대표)는 진상 파악을 위한 면담을 진행했으며 면담 내용을 트리 오브 세이비어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해당 게시글에 따르면, 김 대표는 성 원화가에게 △여성단체를 팔로우한 이유 △한남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게시글을 리트윗한 이유 △과격한 메갈 내용이 들어간 글에 ‘마음에 들어요’를 찍은 이유를 물었다.

  김 대표와 성 원화가 사이에 이뤄진 면담 내용이 공개되며 김 대표가 성 원화가에게 사상검증을 진행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이에 △한국여성민우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의전화 등에서 IMC게임즈의 사상 검증을 비판하는 성명문을 냈다. 이후 IMC게임즈는 노동청으로부터 동일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방지하라는 권고 조치를 받았다.

 

  게임업계는 왜
  메갈 사냥을 수용하나

  지난 2016년부터 게임업계는 유저들의 반 페미니즘 성향을 대부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유저들의 요구를 빠르게 반영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게임업계에서는 소비자의 대다수가 반 페미니즘 성향을 띠고 있어 그들의 요구를 무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페미니스트 게이머 모임 페이머즈(이하 페이머즈)는 “여성 노동자에게 사상검증을 요구하는 블랙컨슈머(Black Consumer)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10~30대 남성들은 게임업계 소비자로서 과대 대표화 돼 있다”며 “여성 게이머와 남성 게이머의 수는 실제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게임업계는 소비자와 공급자의 관계가 가깝고 피드백이 빠르게 오가는 특성이 있어 이러한 남성 게이머들의 협박이 잘 수용된다”며 “그러나 메갈 논란으로 인해 게임이 망하거나, 큰 타격을 입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다.

  게임업계가 이러한 메갈 사냥을 수용하는 이유는 게임업계 전반에서 성평등적 관점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페이머즈는 “게임업계 자체가 폐쇄적인 남초 집단이기 때문에 이러한 요구에 거부감이 적다”고 말했다. 이어 “외국 게임사의 경우 게임의 여성주의적 요소에 대해 ‘과도한 *PC(Political Correctness)’라며 이의를 제기해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하지만 국내에서는 넥슨 티셔츠 사태에서 넥슨이 블랙컨슈머의 손을 들어줬고, 이에 자연스럽게 업계 대부분이 국내 게임업계에서 선두에 서 있는 넥슨을 따라간 것이다”고 말했다.

 

  법적으로 보호받기 어려운
  여성 노동자들

  이러한 메갈 사냥은 여성 노동자 개인의 자유의사 표현을 근거로 실제 업무에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침해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논란에 휘말린 여성 노동자들은 이에 저항하지 못하고 일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이에 대해 페이머즈는 “현재 가장 빈번하게 피해자가 되고 있는 성우와 원화가들은 대부분 외주 형태의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다”며 “이에 따라 그들이 받는 피해는 작업물이 삭제·교체되거나 외주계약이 끊기는 식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입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게임업계는 폐쇄성이 심해 법적인 분쟁을 벌이거나 피해 연대체와 엮이면 업계에서 매장될 수 있다”며 “피해자들은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피해를 외부에 호소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여성프리랜서일러스트레이터연대(WFIU)의 마크.
여성프리랜서일러스트레이터연대(WFIU)의 마크.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보호받기 위해서는
  페이머즈는 “특수계약 노동직에 대한 법적인 피해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이는 게임업체뿐만 아니라 다양한 업체의 여성 노동자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러한 피해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6월, ‘여성프리랜서일러스트레이터연대(WFIU)’가 출범했다. WFIU는 서브컬쳐업계에서 여성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들이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에 연대하기 위해 출범했으며, 일러스트레이터 간 기본적인 정보 교류를 비롯해 법적자문 및 비용을 지원한다. WFIU는 “더 이상 여성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들이 피해로 고립되지 않고 이 연대의 출범으로 새로운 비전을 꿈꿀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게임업계의 여성 노동자 탄압은 반 페미니즘 성향이 페미니즘 성향을 억압하고자 하는 움직임에서 비롯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게임업계와 소비자가 모두 메갈 사냥의 부당성을 인식해야 한다. 페이머즈는 “가장 현실적인 해결방안은 게임업계가 비논리적이고 차별적인 악성 민원을 수용하지 않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소비자 또한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 표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를 배척하는 행태를 멈춰야 한다”며 “이를 위해 게임업계에 전반적으로 성숙한 시민의식이 제고돼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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