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비행사 박경원
1933년 8월 7일 아침, 일본 하네다 비행장을 이륙하던 비행기 한 대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비행사 박경원이 조종하는 비행기였다. 1903년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발명한지 18년 만에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안창남이란 청년이 비행기 조종사가 되었고, 그로부터 불과 4년 뒤 박경원은 1926년 12월 28일 가마다 일본 비행학교에서 비행사 시험에 합격함으로써 우리나라는 물론 동양권에서도 최초의 여자 비행사가 되었다. 박경원은 1901년 경북 대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얼굴에 주근깨가 많고 힘이 세서 이웃 사람들은 장래 여장부라고 말하며, 사내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것이라 아쉬워했다. 점점 자라나 박경원은 신명 여학교 고등과에 입학하였고, 그 후 일본으로 건너가 요꼬하마 기예학교에 유학하여 외국의 신학문을 배우기도 하였으며 귀국 후에는 대구 자혜의원 간호과 과정을 마치기도 하였다. 원래 박경원의 꿈은 간호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던 1922년 어느 날, 동아일보사 주최로 열린 안창남의 시범 비행을 구경하게 되었고 그 때부터 박경원의 인생의 방향은 바뀌었다. 자신의 머리 위에서 날개를 좌우로 흔들며 곡예를 부리는 비행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결국 파일럿이 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난 박경원은 동경에 있는 가마다 자동차 학교를 찾아가 입학 수속을 마쳤다. 하지만 딸이 위험한 비행을 자처하고 나선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부모님에게서 학비 조달이 끊겨버리자 큰 난관에 봉착하였다. 하지만 파일럿이 되고자 했던 그녀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비싼 기름값을 마련하기 위해 밤낮으로 간호사일과 택시 운전을 병행해가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학교를 마칠 때는 수석으로 졸업하여 남학생들이 졸업장을 찢어버리기도 하였고, ‘여자는 엉덩이가 커서 비행기 조종은 무리’라는 성차별적 조롱도 모두 감수하여야 했다. 그러던 박경원은 마침내 1926년 12월 28일, 가마다 일본 비행학교 졸업과 동시에 3등 비행사 자격을 얻게 되었고 일년 반쯤 후에는 2등 비행사 자격까지 획득하였다. 이는 실로 개인의 영광이며, 또한 대한민국의 자랑이 아닐 수 없었다. 1933년 8월 7일은 박경원이 비행기를 몰고 서울 여의도에 나타나기로 한 날이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이를 구경하고자 나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비행기는 보이지 않았다. 일본 하네다 비행장을 이륙한 비행기, 청연은 30분 가량 비행 후 일본의 현악산에 추락하였던 것이다. 최근 개봉을 앞둔 장진영 주연, 윤종찬 감독의 영화 ‘청연’으로 사람들에게 조금씩 알려지고 있는 박경원. 우리 나라 항공계의 많은 기대와 희망이었던 그녀는 서른 셋이라는 안타까운 나이로 삶을 마감했지만 그녀의 도전 정신과 용기는 우리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숨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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