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의 빈부격차, 스크린 독과점
영화계의 빈부격차, 스크린 독과점
  • 정지원 기자
  • 승인 2018.11.05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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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실현해야

  중간고사가 끝난 기자는 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기로 했다. 기자는 시험 기간 동안 많이 들어본 A 영화를 보자고 친구에게 제안했지만, 친구는 기자가 들어본 적 없는 B 영화를 보고 싶다고 했다. 이에 일정에 가장 잘 맞는 시간에 상영하는 영화를 보기로 한 기자와 친구는 A 영화와 B 영화의 상영 일정표를 찾아봤다. 그런데 상영 일정표를 보니 B 영화의 상영 일정은 제한적인 반면 A 영화는 언뜻 봐도 상영 일정이 많이 배정돼 있었다. 이같은 상황은 영화를 보고자 할 때 흔하게 발생하는 일이다. 우리사회는 ‘스크린 독과점’이라 불리는 이 현상을 바로잡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스크린 독과점은 왜 일어나는 것이며 어떤 문제를 갖고 있을까?

  너는 스크린 차지
  나는 스크린 거지

  스크린 독과점은 특정 영화가 지나치게 많은 스크린에서 상영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는 지난 1일을 기준으로 약 2,900개의 스크린이 있다. 이때 약 1,450~2,030개(50%~70%) 이상의 스크린에서 특정 영화를 상영한다면 해당 영화가 스크린을 독과점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스크린 독과점은 스크린 점유율이 아닌 상영 점유율로 논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스크린 점유율은 상영 횟수와 관계없이 특정 영화가 한 번이라도 상영된 적이 있는 스크린의 수를 통해 결정되기 때문에 적절한 비교 기준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2018년 우리나라 스크린을 가장 많이 차지한 영화 Top5<출처/영화진흥위원회>
2018년 우리나라 스크린을 가장 많이 차지한 영화 Top5<출처/영화진흥위원회>

  특정 영화의 스크린 독과점 현상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집계한 박스오피스에 따르면, 지난 4월 25일에 개봉한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는 지난 3일을 기준으로 2,553개의 스크린에서 총 240,545번 상영돼 올해 가장 많은 스크린을 차지한 영화다. 반면 같은 날 개봉한 영화 <살인 소설>은 같은 기준을 적용했을 때, 434개의 스크린에서 총 5,709번 상영됐다. 여기서 보이는 확연한 차이는 주변 영화관 상영 일정표에서 특정 영화들이 차지하는 상영관과 상영 시간대를 비교했을 때에도 알 수 있다.

  영화관, 스크린, 이익까지
  모두 독차지하는 수직계열화

  그렇다면 이렇게 특정 영화가 대다수의 스크린을 차지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대기업이 소유한 영화관 수가 전체 영화관 수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과 *‘영화산업의 수직계열화’가 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영화계 관계자는 “대기업 계열의 영화관 세 곳이 전국 스크린 수의 92%, 영화관 매출의 97%를 차지하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영화관은 그들과 이해관계가 있는 계열사가 투자, 배급하는 영화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해당 영화를 상영관에 비교적 많이 배치한다”고 말했다. 이로써 영화산업을 운영하는 대기업이 스크린과 수익을 독과점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는 것이다.
 

  스크린 독과점으로
  울고 웃는 사람들

  위와 같은 상영, 투자, 배급의 수직·통합적 구조 속 이해관계자들은 스크린 독과점으로 많은 이익을 본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관계에서 제외된 사람들은 이로 인해 피해를 보기도 한다. 우선 영화를 보는 대중은 스크린 독과점이 발생함에 따라 다양한 영화를 볼 기회를 박탈당한다. 이에 대해 A 학우는 “우리나라에서 2016년 4월에 개봉한 영화 <라스트 홈>을 예매하기 위해 영화 상영 일정표를 찾아봤다”며 “그러나 해당 영화가 비주류 영화여서 상영 횟수가 적었고, 그마저도 일정과 맞추기 힘든 시간대였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그 영화를 보지 못해 아쉬웠다”며 “비주류 영화의 스크린 수를 보장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대기업 계열의 영화가 스크린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속의 이해관계자가 아닌 영화 제작자는 자신의 영화가 스크린에 분배되는 비중이 적어 수익에 피해를 보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스크린 독과점에 맞서 일반 영화관에서 영화를 상영하지 않는 영화도 나타났다. 바로 민병훈 감독(이하 민 감독)과 이상훈 감독의 영화 <황제>다. 영화 <황제>는 영화관에서 상영되지 않고 사람들이 요청하는 곳을 찾아가 그곳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찾아가는 영화’를 진행했다. 지난해 12월 8일에 진행된 영화 <황제>의 기자간담회에서 민 감독은 “다른 영화와의 공정한 경쟁을 통해 영화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지만 지금은 한 영화가 2천 개가 넘는 스크린을 독과점하는 시대다”고 전했다. 또한 민 감독은 “영화의 출연자와 제작진, 영화에 대한 존엄성을 포기하며 영화관에 영화를 배정해달라고 할 수 없었다”며 “새벽이나 아침 시간에 ‘끼워팔기’로 상영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고 전했다. 이어 “자존감 있게 살아남고 싶었고, 영화관에서의 상영을 포기하는 대신 카페나 대학 등의 개인 공간에 찾아가 영화를 공유하는 게 영화를 지키는 일이라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스크린 독과점 해결을 위한 움직임
  영비법 개정안 발의
  스크린 독과점이 영화계를 잠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 여러 정책을 제안하고 있다. 그중 가장 많이 논의되고 있는 정책은 2016년 10월에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의원이 대표 발의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의 일부 개정안(이하 영비법 개정안)에서 제안된 ‘배급·상영 겸업 금지’와 ‘스크린 상한제 도입’이다.

  배급·상영의 겸업을 금지하는 사안은 영화산업의 수직계열화를 해체하기 위함이다. 미국에서는 1940년대에 ‘파라마운트 판례’를 통해 이를 불법으로 판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영화계 관계자는 “영비법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배급과 상영의 주체가 분리되면서 서로 견제하게 되는 구도가 생겨 다양함을 추구할 수 있다”며 “이가 스크린 독과점이 해소되는 첫 단추가 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영화산업의 대기업 3사가 ‘수익 극대화’라는 시장 논리에 따라 움직인 것이기 때문에 영화산업의 수직계열화를 해소하는 것은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에 근본적인 대책으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 스크린 상한제다. 이는 한 영화의 스크린 상한선을 두는 것으로, 특정 영화에 할애하는 스크린의 수를 제한하게 한다. 이에 대해 엣나인필름 정상진 대표는 한겨레에서 “우리나라의 상황에 맞게 조정하더라도 스크린 상한제는 필요하다”며 “또한 단순히 스크린의 수를 제한하는 것뿐만 아니라 상영 횟수나 시간대, 좌석 수도 같이 고려해 주된 시간대에도 다양한 영화가 상영될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전했다.

  한편, 영비법 개정안은 아직 통과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서일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송영애 교수(이하 송 교수)는 “어떤 분야에서든 중소기업이나 영세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독과점을 규제하듯이 영화산업에서도 규제가 필요하다”며 “그러나 배급사와 영화관이 어떤 방식으로 분리돼야 하는지 등의 논의가 진행되기 어려워 해당 법안이 무사히 통과돼 실현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영화를 둘러싼 사람들
  서로 공존해야

  대기업 계열의 영화관은 그들이 스크린 독과점에 동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원하는 영화를 상영하는 것뿐이라고 항변한다. 매진되는 영화를 많이 상영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지다. 이에 대해 송 교수는 “대규모 상영이 이뤄지는 영화는 대개 대규모 홍보도 가능한 영화다”며 “단순히 대중의 관심을 이유로 스크린 독과점을 정당화하는 논리에 따르면 규모가 작은 영화들에게 매우 불공평한 환경이 조경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스크린 독과점을 막기 위해 정부의 직접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송 교수는 “개인이나 사기업 차원에서 기득권을 놓기는 쉽지 않아 스크린 독과점을 해결하기 어렵다”며 “정부가 대기업의 독과점 상황을 규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영화를 바라보는 대중의 태도도 중요하다. 대중은 박스오피스에 올라온 영화 이외에도 수많은 비주류 영화에 관심을 가짐으로써 이들이 소외되지 않는 다양한 문화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영화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대표적인 대중문화다. 이에 많은 사람은 영화를 만들고, 수입하며, 상영하고, 감상한다. 영화를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은 각자의 이익을 최우선하기보다 서로 공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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