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開)추억③
개(開)추억③
  • 김수연 기자
  • 승인 2018.12.05 14: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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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의 추억을 열다

  당신의 어린 시절은 어떤 추억으로 차 있는가?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는 나겠지만, 어른이 된 우리는 모두 새천년의 시작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내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 시절은 우리의 머릿속에서 항상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어느새 추억이라고 회상하기도 가물가물한 옛날이 됐다. 이에 우리의 어린 날을 채웠던 2000년대 추억의 상징들을 모아봤다. 기억을 가로막는 먼지를 털어내고 어린 날을 담아놓은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자.

  무대에서 빛나는 나만의 별
  학창시절, 우리가 학업에 지친 상태로 집에 돌아와 TV를 켜면 반짝이는 무대에서 멋지게 춤을 추는 아이돌이 있었다. 우리는 화면 속 아이돌의 화려한 모습을 동경했고, 그들은 우리의 ‘우상’이 됐다. 우리가 사랑했던 아이돌은 따라하고 싶고, 따라가고 싶은 ‘빛나는 별’이었다.

  이재연(가명. 21) 씨는 초등학생 때 ‘소녀시대’의 영향력이 대단했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수련회를 갔는데 이때 같은 반 친구들과 장기자랑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저희는 당시 유행하던 노래인 소녀시대의 ‘Gee’에 맞춰 춤을 추기로 했죠. 소녀시대가 입은 걸로 유명했던 형형색색의 스키니진도 맞춰 입었고요. 그런데 장기자랑이 시작하고 보니 까 다른 장기자랑 팀들도 대부분 Gee를 췄더라고요. 그때의 기억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서 Gee는 아직까지 제 애창곡이기도 해요.”

  허민아(가명. 20) 씨는 어렸을 때부터 ‘빅뱅’을 좋아했다고 한다. “빅뱅의 공연을 보기 위해 티켓을 예매하기가 아주 치열해서 티켓팅을 할 때마다 이를 ‘피켓팅’이라고 했어요. 피켓팅에 성공하면 국내에서 하는 공연은 물론이고 빅뱅의 콘서트를 보러 해외까지 가기도 했죠. 저는 빅뱅의 해외 콘서트를 보기 위해 혼자 외국에 갔어요. 당시에는 길도, 언어도 모르는 타국에 혼자 남겨졌다는 두려움이 컸죠. 하지만 공연장에서 빅뱅을 실제로 보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공연장까지 무사히 갈 수 있었어요. 그러다 한 번은 비행기가 연착돼 혼자 공항에서 밤을 샌 적도 있어요. 그때는 아이돌을 좋아하는 게 쉽지 않다며 울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 힘든 기억도 공연장에 도착하면 사라지더 라고요. 지금은 모두 제게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우리가 좋아했던 아이돌을 점차 잊게 됐다. 하지만 우리의 학창시절을 빛 내준 아이돌의 흔적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가 좋아했던 아이돌의 반짝임은 아직 우리의 마음속에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 시절 우리에게 아이돌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동전 하나로 즐겼던 중독적인 맛
  수업이 끝나고 우리가 달려가는 곳은 집이 아니라 학교 앞 문방구였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도 각양각색의 불량 식품을 파는 문방구를 지나칠 수 없었다. 그곳에는 테이프 모양, 별 모양, 빨대 모양, 신호등 모양 등 다양한 종류의 불량 식품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진우(가명. 20) 씨(이하 김 씨)도 초등학생 때 불량 식품을 좋아했다. “저는 초등학생 때 불량 식품을 엄청나게 먹었어요. 100원짜리 테이프나 아폴로, 불고기 맛이 나는 쥐포 모양의 불량 식품 등을 좋아했죠. 그중에서도 200원 짜리 콜라 맛 아이스크림은 매일 사 먹을 정도로 좋아했어요.”

  김 씨는 불량 식품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이를 몰래 먹다가 혼난 적이 있다고 했다. “대부분의 불량 식품은 부피가 작아서 책상 서랍이나 주머니에 넣어 몰래 먹기 좋았어요. 하지만 한 번은 수업 시간에 별사탕을 몰래 먹다가 선생님께 혼난 적이 있어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조용한 교실에 서 제가 실수로 별사탕을 입으로 깨물어 불량 식품 먹는 걸 선생님께 걸린 거예요. 그래서 교실 앞으로 나가 선생님께 야단을 맞았죠.”

  김 씨는 이제는 불량 식품을 쉽게 접할 수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작년 스승의 날에 친구들과 함께 초등학교에 방문했어요. 학교에 도착하니 제가 좋아했던 불량 식품이 생각나 문방구가 있던 곳으로 갔죠. 하지만 예전에 있던 문방구는 사라지고 편의점이 새로 들어섰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불량 식품을 사 먹지 못했어요. 이렇게 문방구가 조금씩 사라지면서 제 추억도 함께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쉬워요.”

  우리는 수업이 끝나면 100원짜리 동전을 들고 문방구로 달려가 불량 식품을 사 먹곤 했다. 불량 식품을 가득 안고 문방구에서 나올때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그 시절 우리에게 불량 식품은 ‘최고의 간식’이었다.

 

  작은 화면 속 나만의 오락실
  어렸을 때 우리는 게임을 무척 좋아했다. 게임을 하며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었다. 특히 당시 출시된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 DS’(이하 닌텐도)가 우리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한 손에 들어오는 크기로 쉽게 휴대할 수 있고 백 가지가 넘는 게임을 할 수 있는 닌텐도는 최고의 보물과 같았다. 우리는 어디에 있든 닌텐도만 있다면 금세 게임의 세계에 빠질 수 있었다.

  오예림(가명. 19) 씨(이하 오 씨)는 초등학생 때 닌텐도를 구매했다 고 한다. “같은 반 친구가 학교에 닌텐도를 가져와 자랑하는 걸 보고 닌텐도를 처음 알게 됐어요. 그 친구에게서 빌린 닌텐도로 게임을 해봤는데 정말 재밌었어요. 그날 집으로 돌아간 후 바로 엄마한테 닌텐도를 사달라고 졸라 닌텐도를 갖게 됐죠.”

  오 씨는 닌텐도가 가진 장점이 많다고 말했다. “닌텐도의 가장 큰 장점은 자동차 게임, 리듬 게임, 두뇌 게임, 롤플레잉 게임 등 하나의 게임기로 다양한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또 언제 어디서든 닌텐도로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자기 전의 침대나 이동하는 차 안, 쉬는 시간의 교실 등 모든 곳에서 닌텐도만 갖고 있다면 지루할 틈이 없었죠.”

  닌텐도는 최근까지 기술의 발전에 맞춰 발전된 형태의 게임기를 출시하고 있다. 오 씨는 닌텐도의 추억을 다시 느끼기 위해 최근 새로운 닌텐도를 구매했다고 한다. “어느 날 우연히 TV에서 선전하는 닌텐도 광고를 보게 됐어요. 광고를 보니 제가 어릴 때 좋아했던 게임인 ‘동물의 숲’이 너무 하고 싶었죠. 하지만 제가 갖고 있던 닌텐도는 너무 오래돼서 고장나 있길래 닌텐도를 새로 구매하게 됐어요. 요즘은 업데이트된 동물의 숲을 즐겁게 플레이하고 있어요.”

  닌텐도는 언제 어디서나 우리의 지루함을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이에 닌텐도는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 시절 우리에게 닌텐도는 ‘영원한 친구’였다.

 

  주말 저녁마다 찾아왔던 함박웃음
  이제는 볼 수 없지만 우리의 주말을 책임진 예능 프로그램이 있었다. 주말 저녁, 가족들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우리는 TV를 보며 웃느라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당시 방영됐던 예능 프로그램은 우리에게 그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임지원(가명. 20) 씨는 예능 프로그램 중 <패밀리가 떴다>를 가장 좋아했다고 한다. “저는 초등학생 때 <패밀리가 떴다>를 가장 좋아해 이를 일요일마다 챙겨봤어요. 그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저마다의 별명을 갖고 있었던 게 생각나요. ‘덤앤더머’, ‘천데렐라’, ‘게임마왕’ 등 각자의 캐릭터에 맞는 별명 때문에 더 재밌었던 것 같아요.” “또 <패밀리가 떴다>엔 사람들 몰래 음식에 라면 수프를 넣는 장면이 많았어요. 아무리 맛없는 음식이라도 라면 수프만 넣으면 순식간에 맛있는 요리로 변했었죠.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제일 많이 웃었던 것 같아요.”

  류다솜(가명. 20) 씨는 예능 프로그램 중 <무한 도전>을 가장 좋아했다고 한다. “저는 <무한도전>을 정말 좋아했어요. 제 토요일에는 <무한도전>이 빠질 수 없었죠. 많은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지만 그 중에서도 ‘벼농사 특집’이 기억에 남아요. 출연자들의 생생한 몸개그가 인상적이었거든요. <무한도전>은 시청자들에게 웃음은 물론 감동까지 준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무한도전>이 종영돼 다시는 <무한도전>의 재미를 느낄 수 없어 아쉬워요.”

  주말 저녁이 되면 우리는 TV 앞으로 달려가 당시 좋아했던 예능 프로그램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TV를 시청하면서 우리의 웃음은 멈추지 않았고, 하루를 즐겁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 시절 우리에게 예능 프로그램은 ‘웃음 보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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