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계 미투, 그 검은 뿌리를 파헤치다
체육계 미투, 그 검은 뿌리를 파헤치다
  • 이예림 기자
  • 승인 2019.03.19 0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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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외치는 MeToo, 저도 성폭력 피해자입니다

  지난해 12월,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이하 심 선수)는 성폭행 피해를 고백하며 가해자로 조재범 전 대표팀 코치(이하 조 전 코치)를 지목했다. ‘대한민국 쇼트트랙 간판선수’로 불리는 심 선수가 ‘MeToo’를 외치자 보이지 않던 성폭행 피해가 체육계 곳곳에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로써 체육계 미투 운동은 우리사회에 다시 한번 경종을 울렸다. 체육계 전반에 깊게 박혀있던 검은 뿌리, 이제는 그 뿌리를 뽑을 시간이다.


  미투 운동은 현재진행형
  지난해 서지현 검사의 외침으로 시작된 미투 운동이 법조계를 비롯해 예술계, 연예계 등 사회 전반에 나타나면서 국민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미투 운동이 진행되는 여러 분야와 달리 체육계에선 미투 운동이 나타나지 않아 그 피해가 없는 듯 보였다. 그러나 심 선수의 용기 있는 고백을 시작으로 선수들의 성폭행 피해 폭로가 이어지자 이는 ‘*침묵의 카르텔’이었을 뿐이란 것이 밝혀졌다.

  사실 체육계 미투 운동은 이미 시작됐었다. 2016년 10월, 테니스 선수로 활동했던 김은희 테니스 코치(이하 김 코치)가 과거 초등학생이었던 그를 성폭행한 테니스 코치를 고발한 것이다. 지난 1월에 진행된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김 코치는 “어렸을 때 당했던 성폭행 피해를 체육계 지도자가 되고 나서야 고백할 수 있었다”며 “성폭행 가해자가 여전히 체육계에서 지도자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용납하기 어려웠다”고 전했다.

 

<출처/한겨레>

  누가 그들의 입을 막는가
  지난 1월, 신유용 전 유도선수가 과거의 성폭행 피해를 폭로하면서 체육계 미투 운동은 이어지는 듯 보였다. 그러나 체육계에서 나타나는 미투 운동은 다른 분야에 비해 여전히 활발하지 않은 편이다.

  이에 김 코치는 체육계에 본인처럼 성폭행 피해를 당하고도 고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작년에 여러 분야에서 미투 운동이 진행됐는데 유독 체육계만 잠잠했다”며 “내가 성폭행을 당하고도 오랜 시간 이를 말하지 못했던 것처럼 나와 같은 피해자는 더 많이 있을 것이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해 한남대학교 경찰학과 이창훈 교수가 실시한 ‘2018년 스포츠 (성)폭력 실태조사(이하 2018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한 국가대표 선수 598명 중 ‘한 번이라도 성폭력을 당했다’고 응답한 선수는 10명(1.7%)으로 나타났다. 또한 초·중·고등학교 운동부에서 활동하고 있는 일반 선수의 경우 조사에 응한 1,069명 중 58명(5.4%)이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충남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과 이창섭 명예교수(이하 이 명예교수)는 “체육계 특성상 지도자가 선수를 지도하면서 신체를 접촉하는 경우가 잦다”며 “이는 선수와 지도자 간의 경계심을 느슨하게 만들기 쉽다”고 말했다. 이어 “또한 부지불식간에 그 경계를 넘어 성폭력 범죄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성폭력 피해를 입은 선수들을 침묵하게 만드는 것일까? 이에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운동선수 육성 제도를 그 원인으로 지적한다. 우리나라 운동선수는 그들의 진로가 지도자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선수가 지도자에게 성범죄를 당하더라도 그 피해를 고발하기를 꺼리는 것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한소정, 김혜정 활동가(이하 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운동선수들은 감독, 코치에 의해 경기의 출전권을 얻거나 진로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며 “또한 해당 스포츠 종목에서 지도자에 의한 인맥이 구성됐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같은 지도자에게 지도를 받는 폐쇄성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선수의 미래가 지도자에게 많은 영향을 받는 만큼 지도자에 의해 피해를 본 상황을 신고하고 이에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다”고 말했다.


  아무도 그들을 보호하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체육계가 관행적으로 폭력을 행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이미 체육계에선 물리적 폭력을 동반한 사제 간 권력 관계가 암묵적으로 용인되고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상황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성폭력 피해도 발생하기 쉽다고 주장한다. 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운동선수는 과거에 지도자에 의해 폭력을 경험한 경우가 많다”며 “이러한 경험은 운동선수가 폭력을 일상적으로 수용하게 하면서 운동선수를 성폭력 범죄에 노출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부가 운영하는 기존의 운동선수 보호기관이 성폭력 범죄로부터 선수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사실도 이를 방증한다. 대한체육회는 지난 2009년부터 스포츠인권센터를 운영하며 운동선수의 성폭력 피해를 방지하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관은 피해 선수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다른 분야의 인권센터는 △성폭력과 같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폭력에 대한 전문가 채용 △가해자의 권위, 권력으로부터 피해자 보호, 가해자 징계 원칙 준수 등의 독립성 보장 △신고부터 상담, 법적 지원, 의료지원, 추후 일상지원까지 보장 및 비밀유지 등의 조건을 갖춘 상태에서 인권센터가 운영된다”며 “그러나 대한체육회의 경우 가해자에 대한 징계부터 미온적이었으며 피해자가 협회나 센터의 도움 없이 개인적으로 법적 다툼을 감당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스포츠인권센터가 선수들에게 ‘문제 해결 창구’로 인식되지 않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용기 내 외쳤지만 고통은 지속됐다
  성폭력 범죄의 경우 다른 범죄에 비해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2차 피해가 극심한 편이다. 이는 어렵게 미투를 외친 운동선수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해 심 선수가 성폭행 피해를 폭로한 후, 여러 온라인 사이트에는 조 전 코치의 무죄를 주장하는 글이 올라왔다. 해당 글은 조 전 코치에 의해 황제훈련을 받는 심 선수가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으며 조 전 코치에 대한 언론 보도가 조 전 코치의 인격을 살인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해당 글의 작성자는 심 선수가 피해 장소로 지목한 장소에선 성폭행이 불가능하다며 조 전 코치의 무죄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지난 1월 22일, 심 선수의 변호인 측은 온라인에 퍼지고 있는 2차 가해성 글에 대해 “어렵게 용기를 낸 심 선수에게 사실이 아닌 내용으로 2차 가해를 하고 있다”며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렇듯 성폭력 피해자가 겪는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가해자를 엄단하는 정책이 시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성폭력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를 방지하기 위해선 조직운영책임자가 가해자를 엄단하는 정책을 원칙대로 시행해야 한다”며 “그러나 현재 체육계는 각종 연맹 및 협회, 대한체육회 등 여러 조직으로 운영 체제가 분산된 상태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가해자가 받는 징계, 처벌이 일률적으로 시행되기 어렵게 만든다”고 말했다.

  또한 현재 체육계 미투의 대부분은 지도자에 의해 벌어진 성폭력 범죄인 경우가 많다. 이는 2018년 실태조사에서 ‘국가대표 여자 선수를 대상으로 한 성폭력이 대체로 지도자에 의해, 숙소나 훈련장에서 발생한다’는 결과가 나타난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이에 체육계 지도자를 교육하는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체육계에서는 성폭력 범죄만을 방지하기 위한 교육이 아니라 안전과 성평등, 민주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환경을 위한 교육이 돼야 한다”며 “그러나 무엇보다도 범죄가 발생했을 때 이가 재발하지 않도록 가해자에게 엄격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교육이자 예방책이다”고 말했다.


  이제야 너와 함께한다, With You
  최근 우리사회에선 체육계 전반에 깊게 박힌 검은 뿌리를 뽑기 위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8일, 더불어민주당 권미혁 의원이 발의한 ‘체육계 미투 3법’은 체육계 폭력과 성폭력을 근본적으로 예방하며 우리나라 체육계에 만연한 ‘엘리트주의’와 ‘결과중심주의’를 철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체육계 성폭력을 근본적으로 방지하기 위해선 선수의 인권을 희생하며 ‘국위선양’을 목표로 했던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는 논지다. 이에 대해 이 명예교수는 “대회의 메달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현재 체육계에선 비행행위가 불가피한 것으로 용인될 수 있다”며 “전반적인 체육계 구조가 바뀌지 않는 이상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개인의 희생이 정당화되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고 말했다. 성폭력상담소 활동가 또한 “선수들의 인권이 희생되는 방식의 스포츠 정책을 변경해야 한다”며 “학생인 운동선수의 학습권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실업 및 성인 선수의 노동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체육계에서 성차별을 근절하고 성평등을 제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성폭력 범죄는 성차별, 성평등과 직결된 문제다”며 “여성 스포츠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더 많은 여성 지도자를 등용하려는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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