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얼이 담긴 문화유적지 파괴, 우리 역사는 어디로
민족의 얼이 담긴 문화유적지 파괴, 우리 역사는 어디로
  • 황보경 기자
  • 승인 2020.11.2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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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 개발에 무너져가는 문화유산

  우리나라는 여러 차례 전쟁을 거치며 문화유산을 잃기도 했지만, 고대사를 다시 써야 할 정도의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를 발굴해 나가고 있다. 민족의 정체성과 역사를 증명하는 문화유적지 보존 및 발굴은 국가 차원의 필수 과제다. 그러나 우리의 부족한 역사 인식은 그 과제를 수행하기는커녕 망치고 있다. 문화재청과 산하 기구가 역할에 소홀해 상업 개발로 인한 유적지 훼손을 눈감아주는 현실이다.

 

  불법 개발과 훼손으로
  문화유적지 소실 위기

  최근 충청남도 부여 쌍북리 유적에서 6세기 백제 사비기 왕궁 관련 건물로 추정되는 대형 건물터와 대가야 토기 등이 출토됐다.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가야 각국의 사신이 백제에 온 기록이 일본 긴메이천황 때 ‘일본서기’에 남아 있다”며 “백제와 가야의 긴밀한 교류 관계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여러 차례 전쟁과 약탈을 거치면서 결정적인 고고학적 자료를 상당수 잃었다. 다행인 점은 가설로 남아 있는 역사적 사실의 근거를 확립할 수 있는 중요한 문화유적지가 한반도 곳곳에 분포해 있다는 점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15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시도 중인 유적지는 20개가 넘는다. 부여 쌍북리처럼 잠재적 가치가 높지만, 개발 이전 단계에 머물러 있는 곳도 많다.

  그러나 우리의 유적지 보존 의식은 문화유산의 발전보다 상업적 개발을 우선할 정도로 낮다. 경기도 하남시 교산은 문화재청이 정한 ‘문화 유적 분포 지역’으로, 과거 하남위례성이었을 장소로 추정한다. 하남위례성은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행정의 중심으로, 그에 준하는 유물이 대량 묻혀 있는 고대·중세 도시 유적이다. 2019년 제3신도시 건설을 추진 중 고대 유물들을 발견해 역사학계에서 개발 중단을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국토교통부는 하남신도시 사업의 중단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문화재청과 협의도 거치지 않았다.

  서울시 송파구에 위치한 풍납토성은 백제시대 초기, 흙으로 쌓은 평지성으로 1963년 국가문화재로 지정한 부지다. 그런데 2017년 서성벽 발굴조사와 2018년에 성벽 해자구간을 확인하기 위한 사전 정비작업 중 현장에서 불법으로 매립한 대형 콘크리트를 발견했다. 이로 인해 성벽 말단부 대부분이 무너진 상태였고 송파구는 경찰에 수사를 요청했다. 송파경찰서는 당시 풍납레미콘공장을 건설 추진한 삼표산업을 불법 시공·훼손의 체로 추정했지만 공소 시효가 지나 내사를 종결했다. 2000년에는 인근 재건축 아파트 입주예정자들이 공사가 늦어지고 있다는 이유로 굴착기를 동원해 발굴 현장을 흙으로 매립하기도 했다. 정부의 소홀한 감시·관리와 유적지 보호 의식이 부족한 시민들이 빚어낸 비극이다. 문화재 개발 논의가 있을 때마다 ‘제2의 풍납토성은 막아야 한다’는 말이 매번 나올 정도로 끔찍한 훼손이었다.

2018년, 풍납토성 서성벽이 콘크리트 폐기물로 인해 대부분 사라져있다.출처/시정일보
2018년, 풍납토성 서성벽이 콘크리트 폐기물로 인해 대부분 사라져있다.<출처/시정일보>

 

  구멍 뚫린 문화재보호법,
  '유적지 보호'가 최우선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정부 재정을 대규모로 투입하는 사업이 정책·경제적으로 진행할 타당성이 있는지 사전에 검증하기 위해 예비타당성조사제도(이하 예타)를 시행한다. 예타에서 유적지를 없애고 상업적으로 개발하려는 경우 문화재보호법 또는 관련 방침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다. 하지만 하남 교산신도시처럼 문화재 발굴 이전에 개발을 추진한 경우 도중에 막기가 힘들다. *비지정 문화재라면 더욱 그렇다. 개발을 추진한 당사자뿐만 아니라 투자자 또는 계약자 및 거주민 등 여러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개발 중단 시 발생하는 피해를 보상할 주체가 없기 때문이다. 문화재 개발은 공공의 영역이므로 국가가 손실액을 일부 지원할 수 있으나 그 이상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더욱이 토지가 사유지인 경우 재산권과 소유권 문제로 정부가 보존 및 발굴 작업을 원한다고 해서 실행할 수 없다.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문화재관리학과 서재권 교수(이하 서 교수)는 “건설사업의 예타는 거주환경 개선과 유적지 보호의 간극을 메꾸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유적지를 파괴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며 “유적지를 한 번이라도 파괴·훼손할 경우 복구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문화유적지의 훼손은 객관적 역사 자료뿐만 아니라 효율적으로 활용했을 때 얻을 수 있었던 가치도 사라지게 한다”고 덧붙였다.

 

  한반도 최대 유적지, 중도
  그 위에 설 ‘레고랜드’

  2010년, 강원도청은 세금 1,500억을 투입해 강원도 춘천시 중도에 레고랜드 테마파크를 건설하려고 했다. 연간 200만 명의 관광객과 만 개 이상의 일자리 창출을 기대하며 중국 및 동남아 시장을 겨냥해 특수를 누리려는 목적이었다.

  중도는 사암지대로 신석기 이래 수많은 유적이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며 밀집해 있다. 선사시대 유물만 9천여 점이고 집터는 약 1300기, 고인돌은 140구기 이상이다. 2014년도 레고랜드 건설을 위해 진행한 매장문화재 발굴 조사에서는 1차 발굴지를 확인한 결과 3천 평이 넘는 사각 형태의 대형 **환호를 발견했다. 발굴 기관과 학계는 이를 청동기시대 주거지의 구조와 운영 방식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 판단했다. 특히 청동 도끼나 비파형 동검은 중부 이남 지역 최초의 발굴로 한반도 고대사를 다시 쓸 유적이라는 평가가 압도적이다.

2017년, 문화재청 발굴조사 결과 춘천 중도에서 발견한 청동시 시대 취락의 흔적이다.출처/연합뉴스
2017년, 문화재청 발굴조사 결과 춘천 중도에서 발견한 청동시 시대 취락의 흔적이다.<출처/연합뉴스>

  중도의 매장문화재 유존지역 평가 평점은 91.77점으로 원형 보존 기준인 76점을 훨씬 뛰어넘었다. 이처럼 가치 있는 매장문화재가 존재하는 지역은 원형을 훼손하지 않도록 보존하는 것이 원칙이다. 법령에 따르지 않은 조사나 발굴을 할 수 없고, 공사 중 문화재를 발견하면 즉시 중지해야 한다. 이에 따라 당시 문화재청은 보존가치가 높은 구역은 보존구역으로 지정하고 그 이외의 지역은 유적을 복토·보존하는 조건으로 개발을 허용했다. 그런데 2달 후 원형 보존이 아닌 일부 이전 복원으로 결정을 번복했다. 2017년에는 유적지 매립에 고운 모래가 아닌 잡석을 이용해 훼손한 혐의로 공사를 다시 중지했으나 문화재청은 비공개 현지 점검을 조작한 후 허위 보고서를 작성했다. 잡석이 아닌 굵은 모래를 매립했다고 둘러대며 공사를 불법으로 재개한 것이다. 

  강원도 지방 정부도 우리나라 고고학 사상 최대 규모의 선사시대 도시 유적인 중도를 상업적 개발을 명목으로 훼손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2015년에는 삼국시대의 유물까지 나와 유적지를 보호해야 한다는 학계 주장이 일었고 권한 남용에 의한 비리 혐의까지 드러나면서 공사를 또 중지했다. 그러나 강원도청은 레고랜드 건설 대체부지가 있었음에도 중도 개발 강행 입장을 고수했다. 2018년에는 상수원 의암호에 위치한 공사현장에서 대량의 불법매립 건축폐기물을 발견했다. 바로 이듬해에는 각종 불법 혐의와 레고랜드 운영사와의 불평등계약 논란으로 역사적 가치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부문에서 심각한 손해를 끼쳤다. 공사 기간 장기화로 처음 계획보다 더 많은 비용이 필요했다. 결국 국민 세금 4천억 원 이상을 투입해 역사를 지워버린 행위나 다름없다.

 

  세계적 가치 지닌 문화유적지
  적극적인 보호 제도 마련해야

  영국에는 잉글리시 헤리티지(English Heritage)라는 정부 설립 단체가 있다. 보존가치가 있는 유적에 대해 관련 정부 부처와 협의 후 해당 유적을 보호 대상으로 지정한다. 보존할 가치가 있다면각종 소규모 유적까지도 사유지 여부를 묻지 않고 유적지 자체를 개발 불가능한 원형 보존 지역으로 지정한다. 프랑스는 자연·문화유적지를 국가 정체성으로 여겨 개인 사유지가 유적지 지정 공고를 받을 경우 12개월 동안 해당 지역에 대한 공사 등의 변경 행위를 할 수 없도록 한다. 이후 중앙 정부의 보존·관리 정책을 수립하면 각 지방 정부인 데파트망에서 보호 조치와 관리 방안을 마련 후 심의를 거쳐 구체적인 사업계획서를 제출한다. 오스트레일리아 또한 사업자의 이해관계보다 국가문화유산 보호를 최우선 목적으로 두는 문화유산위원회를 설치해 문화재 보존에 앞장서고 있다.

  우리나라도 문화재 보호를 위해 2019년 문화유산 보존체계를 바꾸는 등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국내에 있는 문화재를 모두 조사하고 훼손하거나 사라질 우려가 있는 문화재를 관리하는 ‘목록주의’를 도입 중이다. 또 보존관리 범위를 면 단위로 확장하고 문화재 정책에 지방 정부와 민간 참여를 확대할 예정이다.

2019년, 문화재청이 '목록주의' 기반의 문화유산 미래정책을 밝혔다.출처/연합뉴스
2019년, 문화재청이 '목록주의' 기반의 문화유산 미래정책을 밝혔다.<출처/연합뉴스>

  그러나 상업적 개발과 얽힌 문제는 아직 진척이 없다. 매장문화재의 원형유지 및 발굴조사 금지 기본원칙 준수를 강화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책무 조항을 개정하고 유적지 훼손 시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 또 훼손 사실을 즉각 알아차리고 대응하기 위해 신고포상금 제도 도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시민교육과 홍보는 꾸준히 확대해야 한다. 개발 이전 매장문화재 조사비용을 국가가 책임짐으로써 시공 주체의 부담을 더는 방법이 있다.

  서 교수는 “겉으로 보이는 유적지 외에도 아직 발굴하지 않은 문화재가 많고, 개발한 다음에는 어떤 형식으로 진행했는지에 따라 가치가 소멸 혹은 부가될 수 있다”며 “우리가 충분한 주의와 역사적 인식을 가지고 문화유적지를 바라봐야 한다”고 전했다.


*비지정 문화재: 문화재보호법이나 지방 조례에 따른 국가지정문화재가 아닌 유산 중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문화재
**환호: 청동기시대 주거지를 보호하기 위해 마을 인근을 둘러싸도록 파놓은 도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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