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모두, 왼발을 한 보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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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현아 기자
  • 승인 2005.11.19 1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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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르뽀 / 전국노동자대회

 11월 13일 오후 3시 48분 광화문 사거리. 곳곳에 앉아 쓴 담배를 물고 있는 노동자들의 잿빛 인생 이야기가 퍼진 걸까. 가을하늘이 뿌옇다. 2만5천여 명의 노동자들, 연신 터지는 사진기 플래시와 수많은 깃발들이 찬 허공을 가른다. 주위를 둘러본다. 지하철역 출구부터 길게 늘어선 전투경찰들과 그 안에 네모나게 들어선 노동자 대열. 일부러 까만 바둑알들 안에 흰 바둑알들을 모아놓은 듯한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친다. 바로,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비정규 권리 보장 입법 쟁취!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부시 반대 아펙 반대’를 기치로 내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창립 10주년과 전태일 열사 35주기를 기념하는 “2005 전국노동자대회”의 현장에 기자는 서있다.

 무대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그리고 농민들의 ‘비명’이 이어진다. 이달 안에 비정규입법 노사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음달 1일 총파업을 하겠다, 14일부터 아펙 수업을 강행하겠다 등 무대에 선 연사들의 핏대 높인 외침들이 스피커를 타고 저기 종로1가 사거리까지 울려 퍼진다. 하지만 이수호 집행부가 지난달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의 금품 수수 사건으로 총사퇴한 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꾸려지면서 민주노총 현장 조합원들의 지도부 불신이 극에 달한 상황 때문일까. 노동자들의 공감 섞인 함성과 박수소리는 시큰둥하다. 대열의 뒤쪽에서는 노동자들의 취중진담이 진행 중이기도 하다. 또 행인들의 무관심한 발걸음에, 이 대회가 진정 누구를 위한 대회인지 머리가 어지럽다.

 그래도 울린다. 세월의 흐름도, 그 누구의 비리도 상관없이 2만5천여 명 노동자들의 가슴 깊숙이 쌓여 있는 울분과 염원은 큰 메아리로 남아 광화문을 두드린다. “가슴이 뭉클하다. 이 자리에 참석하니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기아자동차 광주지부 소속인 노대식씨는 말한다. 이어 “비정규입법권리를 쟁취하고, 무상교육이 이루어지길 바란다”며 소망을 드러낸다. 조금 더 대열 쪽으로 가본다. 대열 옆에서 전단지를 나누어주고 있는 사회진보연대 소속인 최예륜씨도 말문을 연다. “노동자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고자 참석하게 되었다”며 “지금 민주노총에 위기가 왔다. 민주노총은 변화된 상황을 인식하고 근본적인 확신을 가져야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광주상용 소속인 최귀남씨의 “미국 자본주의 정권에 노동자들은 서럽다”는 말은, 비정규직을 철폐하고 아펙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한 힘을 더한다.

 3시간여 동안 계속된 그들의 외침은 그들을 둘러싼 전투경찰과의 큰 마찰 없이 막을 내리고 있다. 최귀남씨는 “한동안 오지 않다가 온 것인데, 예전만큼 강도 높은 대회가 아닌 것 같다. 격세지감을 느낀다”며 아쉬움을 드러낸다. 그러나 흐른다.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로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아래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한 노동자가 찬바람을 가르고 전단지를 흩날리며 노래 위에 새롭게 가사를 붙인다. 크레인에 걸린 빨간 깃발은 그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춘다. 그래, 이제 우리, 그 노래에 함께 춤을 추자. 그들만이 아닌 우리 모두 이 땅의 노동 현실에 귀 기울이고, 개선되도록 함께 나아가자. 그것이 진정 우리의 심장이 뜨겁게 말하고, 35년 전 쓰러져간 전태일 열사가 울부짖으며 말한 새로운 세상이다.

배현아 기자 / pearcci6@duks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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