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분석하는 힘, 공학으로 시야를 넓혀요
세상을 분석하는 힘, 공학으로 시야를 넓혀요
  • 황보경 기자
  • 승인 2021.09.27 1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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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의 언어는 공학이다. 그러나 공학 분야는 여전히 여성이나 일부 농어촌 지역 학생들에게 있어 다가가기 쉽지 않은 존재다. ‘공학은 누군가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는 좌우명과 함께 모두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공학 콘텐츠를 기획하는 이가 있다. ‘슈르’로 활동하는 임수빈 공학·과학 유튜버다.

 

  Q. 여성 공학도로서 어떤 길을 걸어오셨나요?

  저는 여성들이 즐기고 이해할 수 있는 공학·과학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어요. 홍익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 재학 중이고, 작년부터 유튜브 채널 ‘슈르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죠. 1인 크리에이터로 시작했지만 더 많은 여성이 공학·과학 콘텐츠를 플랫폼 형식으로 즐길 수 있으면 해서 사업화를 추진 중이에요. 현재는 여성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여성복합공간 ‘스페이스 살림’에 입주해 있습니다.

  원래는 문과였고, 국어 선생님이 되려고 했었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만 해도 생활기록부 진로 항목에는 국어밖에 없었죠. 그러나 돈벌이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다른 길을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문득 떠오른 것이 어릴 적 좋아했던 로봇이었어요. 그걸 계기로 공대에 가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런데 아버지께서 반대를 많이 하셨어요. 여자가 공대에 가는 걸 싫어하셨거든요. 아버지가 카센터를 운영하셨는데, 홍일점인 기술 분야에서 여자가 일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계셔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국 재수 후 공대에 진학했고, 등록금도 전부 제가 모아서 냈어요. 지금은 아버지께서도 응원해주세요.

 

  Q. 여성 최초 #공학 #과학을 주제로 유튜브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학내에서 외주를 받아 용돈 벌이를 했어요. 현재 재학 중인 홍익대학교는 미술대학 규모가 커요. 그렇다 보니 전시나 콘서트 등 매년 미술대학 졸업전시회가 있을 때마다 LED와 센서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았어요. 그게 다른 학교에도 소문이 날 정도로 인기가 참 많았죠.

  그런데 사실 LED나 센서 같은 건 누구나 배우면 만들 수 있거든요. 그래서 한번은 제작 방법을 배우고 싶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열었어요. 공대 수업을 듣자니 학점 때문에, 외부에서 강사를 찾자니 남자밖에 없어 곤란해하던 미술대학 여학생들이 몰려왔더라고요. 그걸 보고 유튜브를 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처음 올린 건 강의를 하며 ‘유튜브에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던 코딩 영상이에요. 근데 조회수가 4밖에 안 나오는 거예요. 체념하고 잠시 쉬다가 작년부터 새롭게 시작했어요. 분명 인터넷에 공학·과학 콘텐츠는 넘쳐나는데 그중 여자 유튜버는 단 한 명도 없거든요. 제가 여성 최초로 해당 콘텐츠를 다뤄야겠다고 생각했죠. 제 채널의 가장 큰 특화 전략은 제작자가 여성이라는 거예요. 이를 통해 더 많은 여성이 공학·과학을 이해하고 즐길 수 있었으면 했어요.

 

  Q. 여성에게 공학의 즐거움을 알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시나요?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공학·과학 콘텐츠를 잘 안 봐요. 주제가 투박했던 초창기에는 시청자 여남 비율이 1:9였어요. 4차 산업혁명이 활발하고, 우리가 쓰는 것들이 다 첨단과학기술인 시대임에도 관심이 매우 적죠.

  그래서 여성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문화적 요소를 베이스로 공학·과학적 요소를 녹이고 있어요. 추억의 만화인 〈슈가슈가룬〉에 나오는 방을 제작하거나 실리콘 장난감 팝잇을 직접 만들어보는 식으로요. 콘텐츠가 예능 같아도 그 본질은 3D프린터를 활용한 기술이에요. 재미 안에 지식을 넣어서 미끼를 던지면 기대했던 반응이 많이 나와요. “슈르 님 덕분에 웹프로그래밍 처음 시작했어요”, “코딩 배워야겠어요” 등의 댓글을 보면 성공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요.

  사실 친구들이 말하길, 예전에는 채널이 삭막하고 딱딱했다고 해요. 그런데 편집자 친구들과 함께하고 나서 정말 밝고 산뜻해졌어요. ‘이거 누구 채널이야!’ 할 만큼이요. 어느 순간 확인하니 시청자 성비가 8:2로 바뀌었더라고요. 이전과 비교하면 완전히 역전됐죠.

 

  Q. 실험 및 제작을 위한 아이디어는 주로 어디서 얻나요?

  가벼운 실험은 대부분 구독자가 보내준 제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진행해요. 나아가 조금 더 복잡한 실험이나 제작은 평소에 제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들 위주로 하고 있죠. 원체 만들고 싶어 했던 물건이 많은 데다 제보도 많이 들어와서 주제 때문에 크게 고민했던 적은 없어요.

 

  Q. 지금까지 진행했던 실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3일 만에 만든 소맥 제조기예요. 절대 3일 만에 만들 수 있는 분량이 아니었는데, 열정으로 순식간에 만들어 냈어요. 만드는 동안 대회에 나가는 것처럼 박진감이 넘쳤죠. 짧은 시간에 만든 실험물이다 보니 큰 기대는 없었는데, 생각보다 작동이 정말 잘 되더라고요. 리모컨을 누르면 소주와 맥주가 환상적인 비율에 맞춰서 나왔고 거품도 예뻤어요. ‘과거의 내가 이걸 대체 어떻게 만들었지?’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웠어요. 졸업전시회에 쓰고 싶으니 공유해 달라는 연락도 많아요. 제작을 마친 날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셨는데, 제가 만든 작품으로 친구들과 소맥을 마신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했어요.

 

  Q. 실험을 영상으로 남기는 과정에서 어떤 점이 가장 까다롭나요?

  매번 어려움을 느껴요. 실험과 제작은 순식간에 진행돼서 재촬영이 불가능하고 변수도 너무 많아요. 특히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순간 성공한 것이 와르르 무너질 때 가장 힘들어요. 실패한 줄 알았던 실험인데 카메라가 뜨거워질 즈음에 녹화를 끄면 갑자기 성공하기도 해요. 예전에는 자막으로 설명하고 넘어가곤 했는데, 지금은 그게 싫어서 원테이크 방식으로 찍고 있어요.

  실험이 늦어지면서 영상 업로드도 같이 지연될 때가 있어요. 대표적인 예로 지난번 만들었던 대나무 분수대예요. 대나무 통의 무게중심이 아래에 있어야 하는데, 전혀 없어서 3D프린터로 다시 뽑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됐죠.

  이런 일이 잦다 보니 공학자가 되기 위한 필수 덕목은 인내심이라는 생각을 종종 해요. 수많은 변수에 실험이 실패하더라도 분노하지 않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인내심이 꼭 필요한 것 같아요.

 

  Q. 사업화를 추진한다고 하셨는데, 앞으로의 포부가 궁금합니다.

  저는 지방 출신이에요. 서울에 올라와서 보니까 배신감이 느껴질 정도로 교육의 격차가 크더라고요. 서울은 학교에서 최신 장비로 수업을 하고, 주민센터에서도 질 높은 강의를 많이 해요. 지방은 그런 여건이 안 되거든요. 4차 산업혁명이 주역인 시대가 다가왔는데, 농어촌 지역 학생들이 필요한 교육을 제대로 못 받는 사실이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사회적기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농어촌 지역 학생들과 앞서 계속 언급했던 여성, 이외에도 공학에서 소외된 계층에게 교육적인 콘텐츠를 제공하려고요. 최종적으로는 영향력 있는 교육 회사가 되는 게 목표예요. 스페이스 살림에 입주한 게 그 첫걸음이라고 볼 수 있죠.

 

  Q.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공학의 의의는 무엇인가요?

  공학은 내가 실생활을 통제할 수 있는 일종의 힘을 만들어줘요. 세상을 분석할 수 있어요. 예시를 들자면 많이들 좋아하는 방탈출 게임 같은 건 *라즈베리 파이와 **아두이노라는 프로그램으로 만드는 거예요. 공학을 배우면 그런 것들이 바로 보여요. 저 에어컨에는 무슨 센서가 들어 있는지, 저 LED는 뭘로 쓰인 건지, 고장이 나면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도요. 공학으로 이뤄진 세상을 공학자의 눈으로 보면 마치 해킹을 하는 것 같아요. 그게 기분 좋아요. 전처럼 아무것도 모를 때와 확연한 차이가 있죠.

  이렇듯 공학은 세상을 보는 시야의 폭을 더 넓혀줘요. 많은 사람이 공학을 가까이했으면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어요. 자신이 매일 지니고, 쓰고, 입고 다니는 것들에 대한 공학적인 소양을 갖췄으면 좋겠어요.


*라즈베리 파이: 영국 라즈베리 파이 재단이 소프트웨어 교육을 확대하기 위해 개발한 초 소형 컴퓨터

**아두이노: 오픈소스를 활용해 다양한 방식으로 제작할 수 있는 하드웨어 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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