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냉전 시기의 안보,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탈냉전 시기의 안보,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민병원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승인 2022.03.14 2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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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에 들어서며 자리 잡은
  군사와 국가적 의미의 안보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싼 최근의 국제정세가 안보의 중요성을 다시 되돌아보게 만든다. 우리는 ‘안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마다 ‘군대’를 떠올린다. 생존의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는 것이야말로 안보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군사제도는 대부분 합법적으로 공권력을 가진 국가가 관리한다. 여기서 핵심은 바로 ‘군사’와 ‘국가’라는 키워드인데, 이는 우리가 ‘안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이미지다. 오늘날과 같은 안보 개념이 자리를 잡은 것은 근대에 들어와서다.

  군사적 역량을 갖춘 근대국가의 발전이야말로 표준적인 안보 개념이 등장하는 계기였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는 지금과 같은 안보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안보 개념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의 ‘아스팔레이아(asphaleia)’ 개념은 레슬링을 할 때 넘어지지 않는 능력을 의미했으며, 로마의 ‘세쿠리타스(securitas)’ 개념은 ‘평온한 상태’를 의미했다고 한다.

 

  안보를 증강할수록
  감소하는 안보 효과

  안보와 관련한 다양한 논의 중 흥미를 끄는 주제가 ‘안보딜레마’다. 안보를 위해 노력할수록 오히려 그 효과가 감소한다는 반(反)직관적 논리다. 군사적으로 대결하는 두 나라가 있다고 해보자. 한 나라가 안보를 증강하기 위해 군대를 늘리고 무기를 구매할 경우, 그 행위 자체가 상대국에는 위협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따라서 상대국도 당연히 군비를 증강할 것인데, 그 결과 원래의 안보 증강 효과는 상쇄되거나 줄어들 수밖에 없다.

  국제정치에서 이런 ‘안보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아직 완전한 해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상대국에 공격적이지 않다는 의사를 전달하거나 협력을 위한 제도를 만드는 등 여러 제안이 가능하지만 어떤 것도 ‘최악의 안보 상황’을 막는 데에는 역부족이다. 국가들 사이의 관계가 적대감과 배신으로 점철됐다는 역사적 사실을 고려할 때, 안보와 관련한 최악의 시나리오는 필수불가결하다.

 

  군사적 측면의 ‘전통안보’를 넘어
  실존적 위협에 집중한 ‘비전통안보’

  한편 인류의 오랜 역사 속에서 전쟁과 안보의 문제는 생존을 결정짓는 최우선의 과제였는데, 이런 절박함은 20세기에 들어와 핵무기로 인해 더욱 커졌다. 핵전쟁은 과거의 어떤 전쟁보다도 인류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1945년 이래로 핵무기가 사용된 적은 없지만, 냉전기 내내 핵무기 보유국 수는 점점 늘어났고 지금도 핵 확산을 둘러싼 경쟁과 갈등은 골칫거리로 남아 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와 냉전 시대가 저물면서 안보를 바라보는 시각도 바뀌기 시작했다. ‘국가’와 ‘군사’, 그리고 ‘핵무기’를 중심으로 하는 안보 개념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긴 것이다. 어떤 변화였을까?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진영 간 대립이 완화되면서 제3세계 지역의 분쟁과 갈등은 오히려 악화됐고, 내전과 빈곤, 나쁜 정치로 인해 사람들의 삶은 피폐해졌다. 이제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은 군사적 공격이나 핵무기가 아니라 인종 갈등과 빈곤, 질병, 금융 위기 등 새로운 종류의 위협이었다.

  이처럼 탈냉전기에 들어와 ‘전통안보’에 대비해 ‘비전통안보’의 측면이 중시됐다. UN에서도 1990년대 이후 곤경에 빠진 사람들의 삶에 초점을 맞춘 ‘인간안보’ 프로그램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국제정치학의 코펜하겐학파는 이러한 안보 개념의 변화를 이론화했는데, 이들은 안보가 군사적 차원을 넘어 경제, 문화, 환경, 보건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안보 개념을 통해 ‘보호해야 할 대상’이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국가 행위자 이외에 테러집단과 사회조직 등 비국가 행위자들이 안보의 주체로 올랐다는 점도 중요해졌다. 그리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행위자들이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실존적(existential)’ 위협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더 복잡해지는 안보,
  확장된 안보 개념과 신(新)안보딜레마

  탈냉전기 안보 개념의 변화를 어떻게 규정하건 간에 새롭게 추가된 또 하나의 요소는 안보의 사회적 측면이다. 안보의 개념이 확장되면서 사람들은 점차 사회적 현안을 안보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컴퓨터 해킹이 급증하면 ‘사이버안보’ 문제가, 코로나가 일상의 삶을 위협하면 ‘보건안보’ 문제가 관심사로 떠오르곤 한다. 이처럼 중요한 사회적 어젠다를 안보로 간주하면 다른 모든 사안에 비해 사회적 자원을 결집해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은 탈냉전기의 안보 개념이 확장됐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 사람들은 사회적 관심과 자원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자신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슈를 안보문제로 내세우려 ‘안보화(securitization)’ 경쟁에 뛰어들기 때문이다. 모든 이슈가 안보문제가 될 수 있다면 사실상 안보가 정치적·사회적 과정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는 곧 안보문제가 사회적 담론에 의해 결정돼야 하는가에 대한 우려로 이어지기도 한다.

  탈냉전기 안보 개념의 변화에서 두드러진 또 하나의 특징은 복잡해지고 있는 속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다. 원래 군사안보나 국가안보를 이야기할 때에는 안보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별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오늘날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안보문제는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다. 안보의 위협 요인 자체가 다양해진다는 점에서 이를 ‘신안보(new security)’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그러한 변화가 안보문제를 인식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성과 예측 불가능성을 띤다는 점에서 ‘신흥안보(emerging security)’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오늘날 과학기술의 발전이 안보에 미치는 영향이 무척 크다는 점도 안보의 새로운 개념화에 한몫한다. 인공지능, 드론, 로봇 등 첨단기술이 군사기술로 전용되면서 안보위협의 정도는 양적 차원이 아니라 질적 차원으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와 달리 기술의 파급효과는 인적 자원이나 국가전략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바꿔놓고 있으며 안보문제를 둘러싼 민감성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이처럼 국제정치의 네트워크가 더욱 복잡해지면서 적(敵) 개념이 불명확해지고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가능성 증가로 인해 안보딜레마의 기본 속성이 변하는 모습을 일컬어 ‘신(新)안보딜레마’라고 부르기도 한다.

<출처/월간중앙>

 

  전통안보와 신흥안보의 혼합 속
  우리가 갖춰야 할 안보관은 무엇인가

  냉전 이후 지난 30여 년 동안 안보의 속성 자체도 급변했고 안보담론도 다양하게 전개됐다. 특히 안보 행위자의 종류가 다양해졌고 안보의 대상도 확장됐다. 안보문제가 정치의 영향에 흔들리는 ‘안보화’ 추세도 지속된다. 이와 같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전통안보의 모습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예를 들어 북한의 지속적인 핵무기 개발이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재래식 전쟁 수행은 우리가 과거의 안보 패러다임에서 완전하게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잘 드러낸다. 따라서 오늘날의 안보문제는 전통안보와 신흥안보가 혼합되어 나타나는 일종의 ‘복합안보(complex security)’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탈냉전기의 빠른 변화 속에서 우리는 어떤 안보관을 갖춰야 할까? 국제정치의 상호의존과 네트워크화, 첨단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안보환경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한반도와 동북아를 둘러싼 전통안보의 치열한 대결 구도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전통안보와 신흥안보라는 이중 부담을 안고 있다. 또한, 기술의 발전에 따른 안보환경의 변화를 직시하면서 그에 대응하기 위한 정교하고도 효과적인 안보전략을 구축해야 한다. 이 점이 바로 우리가 오늘날의 안보 환경과 개념의 변화를 제대로 이해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교훈이자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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