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의 시각으로 세상을 그리다
어린아이의 시각으로 세상을 그리다
  • 이효은 기자
  • 승인 2022.05.16 13: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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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대학이 위치한 쌍문동은 만화 <아기공룡 둘리>의 배경이 된 곳이다. 등교를 하다 보면 둘리 동상, 둘리 뮤지엄, 둘리 거리 등 둘리의 흔적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1983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받는 둘리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캐릭터다. 둘리 아빠, 김수정 만화가와 함께 추억여행을 떠나보자.

 

  Q. 만화가를 꿈꾸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만화가는 아주 어릴 적부터 꿔온 꿈이었어요. 어떠한 계기가 있다기보다는 어렸을 때부터 형제들을 따라 만화를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만화의 매력에 빠졌어요. 만화를 접하고부터 계속 좋아하는 그림을 그렸죠. 그러다 보니 어느새 만화가라는 꿈을 좇게 됐습니다.


  Q. 만화가로서 겪은 어려움이 있나요?

  1975년 소년한국일보 신인 만화가 공모전에서 <폭우>라는 제 작품이 당선됐어요. 언덕을 하나 넘었으니 그 이후부터는 탄탄대로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새로운 고난의 길로 접어드는 과정이었죠. 당시에는 만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굉장히 좋지 않았거든요. 사회 전반에서 유해 문화로 취급받았어요. 그러다 보니 작품을 내기 전에 까다로운 심의를 받아야 했어요. 만화라는 순수한 꿈만 보고 이 길을 걸어왔는데 심의라는 현실의 장벽에 직면한 거죠.

  먹고사는 문제보다 검열이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만화를 내 마음대로 그리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었어요. 저는 문하 시절 없이 오로지 독학으로 만화를 배우고 만들어왔어요. 문하생 과정을 거쳤다면 업계 실상에 익숙했을 텐데 그런 경험이 없어 어려움을 겪었죠.

  둘리가 공룡이 된 이유도 심의 때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만화에서 둘리는 어른인 고길동 씨를 골탕 먹이고 말썽을 부리기도 하죠. 이건 둘리뿐만 아니라 어린아이에게서 쉽게 볼 수 있는 특징이에요. 어린아이는 완전체가 아니에요. 하지만 사회는 완전체가 아닌 아이들을 용납하지 않아요. 만화 속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부모님 말씀을 듣지 않고 못되게 구는 것이 불량하게 받아들여졌어요. 사실 이건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말이죠.

  아동 만화에서 아동의 본모습을 그리지 못하다 보니 동물로 의인화를 했어요. 아동과 어른이라는 관계가 덜 직접적으로 다가오다 보니 규제나 심의를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었죠.


  Q. 둘리의 자세한 캐릭터 설정이 인상 깊습니다. 캐릭터를 설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수억 년 전 공룡을 서울로 데려오는 과정이 만화 속에서는 쉬워 보이지만 구상할 때는 머리가 다 빠지는 줄 알았어요. 저는 황당무계한 이야기 진행을 싫어해서 어떤 상상력도 그럴듯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리려고 해요. 둘리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외계인에게 잡혔다가 초능력을 얻게 되고, 빙하에 갇혀 떠내려오고 얼음이 녹는 과정을 통해 서울에 도착합니다. 빙하기가 와서 공룡이 멸종했다는 가설을 작품에 반영한 거죠. 마냥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 어느 정도의 사실성을 부여한 겁니다.


  Q. 둘리의 배경이 쌍문동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상경해서 처음 자취를 시작한 동네가 쌍문동이에요. 많은 시간 아픔과 행복을 함께한 곳이고 가장 익숙한 장소입니다. 그래서 만화 배경에 쌍문동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요. 둘리가 떠내려온 쌍문동의 개천이나 고길동 씨 자녀인 철수와 영희가 다닌 쌍문초등학교처럼요.


  Q. <아기공룡 둘리>가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고 우리는 다 같이 연결된 채 살아가잖아요. 만화에 그런 관계를 녹여내려고 했어요. 삶을 살다 보면 때로는 복잡한 관계가 형성되기도 할 거예요. 가족, 직장, 친구 등 여러 문제가 있겠죠. 떼려야 떼지 못하는 관계들을 언젠가 만날 겁니다. 둘리와 고길동 씨가 그래요. 고길동 씨는 둘리를 쫓아내고 싶어 하지만 어떠한 이유로 쉽게 쫓아내지 못해요. 바로 고길동 씨의 조카 희동이 때문이에요. 희동이는 다혈질 기질이 있어서 다루기 힘든 아이죠. 그런 희동이가 가장 따르는 게 둘리예요. 둘리만이 희동이를 다룰 수 있으니 함부로 둘리를 내쫓을 수가 없는 거죠. 만화 속 인물들의 연결고리에 우리 사회나 가족의 모습을 투영할 수 있도록 했어요.

  이런 관계가 있어서 둘리뿐 아니라 모든 캐릭터가 고루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서커스단 출신인 또치는 눈칫밥을 먹어서 기회주의적이고 상황 판단이 빨라요. 외계인인 도우너는 단세포적이어서 사람들 말을 그대로 믿고요. 둘리가 길동이네 집안사람들을 애완동물이라고 말한 걸 도우너는 다 믿어버리죠. 사실 둘리 하나만 보면 캐릭터가 그렇게 특이하지도, 색다르지도 않아요. 하지만 또치의 교활함, 도우너의 단순함, 둘리의 무던함이 어우러져 만화가 완성된 거죠. 이런 얽히고설킨 관계를 어른의 시각이 아닌 둘리, 즉 아동의 시각으로 끌어가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아요.


  Q. 성인이 된 후 둘리와 고길동 씨에 대한 인상이 정반대로 바뀌었다고 하는 독자들이 있습니다. 독자들의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둘리의 행동은 또래가 보면 당연한 거예요. 그래서 아이들의 지지를 얻는 거죠. 하지만 그 지지를 보내던 아이들이 자라 성인의 관점에서 둘리의 행동을 다시 보니 참 못마땅할 겁니다. 독자들도 만화와 함께 성장하는 과정이 아닐까 싶어요.


  Q. 작가님에게 둘리는 어떤 의미인가요?

  긴 시간 동안 함께한 둘리는 제게 가장 가까운 가족 같은 존재예요. 또치와 도우너도요. 이 캐릭터들이 어느 틈에 자식 같은 아이들이 돼 있더라고요. 그리고 저와 여러분 세대가 소통할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해줘 고맙기도 합니다. 지금처럼요.


  Q.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요?

  원래 멋있는 만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어요. 2009년 SBS에서 방영한 <NEW 아기공룡 둘리> 이후 극장판 애니메이션인 <아기공룡 둘리-얼음별 대모험>의 후속작을 기획하고 있었는데 사정상 무산이 됐어요. 이 무산된 이야기를 만화 작업으로 준비하고 있어요. 빠르면 아마 내년에 만화책이 나올 것 같습니다.

  이 나이가 되면 기획을 앞이 아닌 뒤에서부터 합니다. ‘내가 힘을 쏟으면 여기부터 여기까지는 할 수 있겠구나’ 같은 생각을 하죠. 이게 작업에서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옛날에는 일생일대의 역작을 내겠다는 포부를 갖고 임했으나 이제는 내 필력이 남아 있는 기간에 작업을 최대한 해보자고 마음먹어요. 지난해 <사망유희>라는 작품을 냈어요. 단편으로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인데 그림을 그릴 힘이 있다면 <사망유희>를 계속 이어서 내고 싶다는 목표가 있습니다.


  Q. 여러 고개를 넘기 위해 계속해서 도전할 대학생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도전을 거창하게 생각하기보다는 삶을 살아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생각해보세요. 인생에는 ‘사업을 해봐야겠다’, ‘전과를 해봐야겠다’, ‘외국에 나가야겠다’ 같은 많은 고민과 선택이 있겠죠. 고민하고 선택하는 과정을 삶의 징검다리를 놓으면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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