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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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인선 차미리사교양대학 교수
  • 승인 2022.11.07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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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으로부터 십 년 전, 필자가 처음으로 대학 강단에 설 무렵이었다.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날카로운 질문을 쏟아낼 학생들을 떠올리며 지레 겁을 먹은 필자는 여름 방학 내내 도서관에 틀어박혀 강의 준비에 매진했다. 잠시 머리를 식힐 겸 도서관 옥상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친한 선배가 다가와 학위도 끝났는데 뭘 그리 열심히 공부하냐고 물었다. 이에 필자는 학생들이 어떤 질문을 할지 몰라 폭넓게 강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답을 들은 선배는 박장대소를 터트리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선아! 그런 쓸데없는 걱정하지 마! 내가 장담컨대 수업 시간에 질문하는 학생은 없을 거야! 하하하”. 확신에 찬 선배의 말에 필자도 배시시 웃었지만, 속으로는 ‘에~ 설마, 날 안심시키기 위해 하는 말일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떨리던 첫 학기가 시작됐다.

  하지만 선배의 말은 사실이었다. 소위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모여있다고 소문난 학교에서, 인문학적 열정이 가득한 학생들이 선호하는 수업을 진행하면서 필자가 받은 질문은 겨우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십 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수업이 끝나 강의실 밖으로 나가려 할 때, 용기를 내며 다가오는 학생이 반가운 것은 비단 필자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러시아의 대문호인 톨스토이는 “총명한 사람이 되고 싶거든, 총명한 질문을 하고, 주의 깊게 경청하라”(<인생의 길>)고 말했다. 필자는 우리 사회, 특히 젊은 지식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총명한 질문’을 던질 줄 아는 지혜와 용기, 그리고 이를 주의 깊게 듣고 숙고할 수 있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사회가 다원화될수록 건강한 공동체는 동일한 해법을 공유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다양한 질문을 함께 공유하며 숙고하는 공동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동일한 해법은 또 다른 갈등을 초래할 단초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시대의 치부를 파헤치는 총명한 목소리에 공명하여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높이고, 이를 계기로 더욱더 ‘총명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구성원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매튜 아놀드는 <Culture and Anarchy>에서 지성인을 “자신의 계급적 위치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본성과 인본주의적 정신에 따라 사유하고 행동하는 자”로 정의한 바 있다. 이에 더해 필자는 지성인이란 ‘삶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자’라고 규정하고 싶다. 일상 속에서 올바른 삶과 정의로운 사회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그 응답으로 삶을 한편의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는 실천적 방법까지 모색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지성인이 갖춰야 할 소양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는 용기 있게 질문을 해보자. 나 스스로에게, 선생님에게, 그리고 우리사회를 향해 용기 있게 질문을 해 보자. 그것이 현재 혐오로 얼룩지고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사회’로 변질된 사회를 회복시킬 수 있는 해법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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