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회 학술문예상 소설 가작
제46회 학술문예상 소설 가작
  • 강원혜(국어국문 4)
  • 승인 2022.11.21 1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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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데이, 원데이>

  1. 모닝

  그날은 배달지 착오가 있었다. 드럼통 겉면에는 이국의 언어가 쓰여 있었다. 나는 방파제 가까이 쭈그려 앉아 밧줄을 잡아당겨 드럼통을 건져 올렸다. 그것은 맹세코 정의감 때문에 저지른 일은 아니었다. 용돈이나 벌 수 있을까 해서 뚜껑을 땄던 것뿐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사람이 있었다. 조각나지도, 죽지도 않은 완전한 사람. 남자. 눈알이 새까맸다. 남자의 눈가가 얼핏 구겨졌다. 나는 손을 뻗어 그늘을 만들었다.

  “눈 아퍼?”

  그림자 아래에서도 눈알이 반짝거렸다.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고개를 홱 돌려버리고 말았다. 남자는 1층 중국집 미닫이문 옆에 사는 고양이보다도 움직임이 둔했다. 갈매기가 시야를 가로지르고, 파도가 빈 페트병을 먹어 치우고, 왁자지껄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멀어지고 나서야 대답이 돌아왔다.

  “.........네?”

  아니다. 그것을 대답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목이 탔다.

  “여기가,”

  남자는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입에서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난다. 목소리가 더 나오지 않는지 입을 뻐끔거리기만 한다. 우스운 모양이었다. 나는 입꼬리를 한쪽은 올리고 한쪽은 내리누른 기묘한 표정을 하고 남자를 돌아보았다. 남자는 낡은 밥솥처럼 입을 열었다.
여기가 어디예요.

  “인천.”

  남자가 자신의 얼굴을 천천히 더듬었다. 손끝이 잘게 떨렸다. 입에서 코, 광대뼈, 속눈썹까지 천천히 쓸던 손이 뒤로 넘어가 머리카락을 몇 번 뒤집었다. 얕은 숨이 겨우 들썩거렸다. 그 느릿한 움직임을 훑으며 짝다리를 짚었다가, 바로 세웠다가, 팔짱을 꼈다가, 결국엔 쭈그려 앉았다. 밀랍 인형 같은 얼굴이 동동 떠다녔다. 태어나서 외출 한 번 한 적 없는 도련님이 난생처음 세상에 발을 디딘 것만 같은 색이다. 아파트에서 가장 하얗다는 118호도 남자의 옆에서는 누렇게 뜨리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난 저런 피부색은 좋아하지 않는다. 괜히 더 기분이 나빠진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드럼통 안의 남자는 여전히 꿈지럭대기 바빴다. 발을 들어 드럼통을 힘껏 차버렸다. 그러나 거친 발구름에도 남자는 조용했다. 덜덜덜덜 굴러가는 통 안에서 가느다란 숨소리가 새어나온 것이 전부였다. 나는 쿵쿵 발소리를 내며 다가갔다. 드럼통 위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고개를 바싹 들이밀었다. 질린 모양을 한 얼굴이 벽면에 바싹 붙어 바르작거렸다. 우스운 꼴이었다.

  “누가 죽였어?”

  “..........”

  “아, 누가 죽이려고 했어?”

  남자는 말 없이 가슴만 들썩였다. 몸은 거칠게 오르내리고 있는데도 숨소리는 아주 가느다랬다. 아무래도 혼자 기어 나올 생각은 없어 보였다. 나는 남자의 겨드랑이 밑으로 손을 넣었다. 들어 올려주고자 한 것인데, 남자의 눈알이 회까닥 뒤집혔다. 어지간히 겁에 질린 모양이다. 살짝만 건드려도 반응하는 게 예민한 새끼 같았다. 나는 그런 동물을 다루는 법을 잘 안다. 남자의 목을 손으로 받쳐주고, 바짝 깎은 손톱으로 뒷목을 잘게 긁어주었다. 눈동자가 천천히 제 자리로 돌아왔다.

  “너 디게 부잣집 애지? 딱 보면 알어. 너같이 생긴 애들 가끔 보거든.”

  “...아.”

  “근데 살아 있는 건 처음 본다?”

  으하하, 크게 웃자 남자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뭐라고 항변을 하고 싶은지 입술을 움직였지만, 소리가 되어 나오지는 못했다.

  “살아 있는 건 골치 아픈데.”

  “아니야....”

  “아니야? 어째서?”

  “...돌, 아가지...않을 거니까.”

  그렇게 말하는 남자의 눈빛에서, 나는 캄캄한 밤바다를 보았다. 그것은 결심한 사람 같기도, 초연한 사람 같기도 했다. 삶을 결정했다는 것만큼은 나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조금의 시련으로도 픽 죽어버려도 이상하지 않은 몸뚱아리를 하고서 아파트의 사람들만큼이나 강렬하게 살아 있기를 원했다. 그 눈빛만큼은 아주 익숙한 것이었다.

  “그래.”

  그래서 나도 결정을 내렸다.

  “집에 가자.”

  남자를 통 안에서 끌어내고 어깨 위로 둘러멘다. 그 무게가 퍽 달가웠다. 나는 이 반가운 짐짝을 달고 아파트로 발을 끌었다.

  2. 애프터눈

  가느다란 적막으로 엮인 아파트 복도 위를 하얀 신발이 가로지른다. 반은 걸치고 반은 바닥에 질질 끄는 채로 걷고 있었지만, 남자는 군소리 하나 없었다. 계단을 오를 때 벅찬 숨소리를 몇 번 뱉다 마는 것이 전부였다. 닿은 등 뒤가 밋밋하고 숨도 길어서 자꾸 뒤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새까만 머리카락 위로 햇빛이 내리면 광대뼈가 금빛으로 물든다. 잠시 멈춰 서서 반짝이는 볼을 쳐다보았다. 감겨 있던 남자의 눈이 가늘게 뜨였다. 기다란 속눈썹이 갈색빛이었다. 왜, 입술이 동그랗게 모였다가 가볍게 떨어진다. 기다려도 말을 하지 않자 머리카락에 코를 묻으며 다시 눈을 감는다. 그 모양을 물끄러미 쳐다보고만 있었다.

  “왜 자꾸...”

  쳐다 봐. 남자가 속삭였다. 눈길을 뚝 떨어트렸다. 달리 대답할 길이 없었다. 507호의 문을 열자 마른 기운이 쏟아졌다. 다른 집들은 습해서 살지 못하겠다고 아우성인데 이 방만은 유독 건조했다. 매일 젖은 수건들을 식탁이며 탁자, 붙박이장에 걸어놓고 나와도 오후가 되면 모두 바삭바삭 말라 있었다. 해의 그림자가 길게 누워 있는 바닥 위를 성큼 밟아 침실 문을 열었다. 파도 소리가 들이치며 커튼이 크게 펄럭인다. 침대 위에 짐을 바르게 펴 눕혔다. 발목이 침대 바깥으로 튀어나와 덜렁거렸다. 무릎을 접
어 옆으로 눕혀주자 길이가 딱 알맞았다. 창문을 닫고 커튼을 묶어 고정시켰다. 무음의 바다가 넘실거렸다. 남자는 바다를 등지고 누워 내 무릎을 꼼꼼히 훑었다.

  “왜 자꾸 쳐다 봐.”

  “아냐..........”

  입을 다물더니 이불을 이마 끝까지 덮어쓴다. 어이가 없다. 침실의 문을 열어둔 채로 나왔다. 냉동실에 소분해 담아둔 밥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이불 더미는 여전히 말이 없다. 하나밖에 없는 숟가락으로 밥을 찬물에 말았다. 반찬거리도 없고 쟁반 구실을 할 만한 것도 없어서 그릇만 달랑 들고 침대 옆에 앉았다.

  “먹여줘야 돼?”

  남자가 부리나케 일어나 앉았다. 그릇은 허벅지 위에 올려주었다. 손이 급하지 않게 숟가락을 쥔다. 남자의 움직임에 발맞추어 눈 밟는 소리가 났다. 해 저무는 바다와 지독하게 어울렸다. 카세트 테이프로 녹음해다가 파도 소리와 맞바꾸고 싶을 정도로.

  “뭐라구 불러? 너.”

  엉덩이를 바싹 당겨 앉았다. 남자는 말 없이 숟가락질만 해댔다.

  “멀티가 안 되는 양반이네.”

  나는 베란다로 몸을 돌렸다. 빨래건조대인지, 옷 수납장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로 옷이 쌓여 있었다. 자주 입는 티셔츠를 세 장 꺼내 개기 시작했다. 집안은 고요했다. 저만한 덩치의 남자가 조용하게 밥을 먹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저렇게 커다란 남자라면 열이면 열 추저분한 소리를 내며 먹는 게 당연했다. 마치 처음 보는 동물 같았다.빨래를 개다 말고 쳐다보고 있자, 남자가 내키지 않는단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주해열.”

  “이름이야?”

  “응.”

  “이쁘다.”

  해열, 해열, ......... 주해열. 단어를 처음 배우는 어린 아이처럼 입속으로 이름을 여러 번 굴렸다. 오빠인가? 응, 그런가 봐. 그건 또 어디 말이야. 너는 애가 조그맣고....... 해열은 그릇을 깨끗하게 비우고 침대 옆에 내려두었다. 다시 드러누워 이불을 끌어 올리는 꼴이 아주 상전이 따로 없었다.

  “너는.”

  목이 끓는지 몇 번 재채기를 한다. 침을 꿀떡꿀떡 삼킨 해열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너도 가르쳐줄래.”

  “무얼?”

  “이름.”

  말의 고도가 가파르지 않고 차분하다. 갈비뼈를 간지럽히는 말투다. 괜히 배를 문질렀다.

  “나는 이름 없어.”

  “없...다고?”

  고개를 대충 끄덕였다. 그릇과 숟가락을 한데 모아 싱크대에 넣어두었다. 가장 깨끗한 컵을 고르고 골라 미지근한 물을 부었다. 컵을 내밀자 해열은 가만히 쥐고 있기만 했다.

  “그거 깨끗한 컵이거든?”

  해열은 몸을 들썩이더니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목구멍으로 물을 넘기는 소리조차도 기이하게 얇았다.

  “사람들이.”

  “어.”

  “너를 뭐라고 불러.”

  “사람들이?”

  “응.”

  “507호.”

  한참을 또 말이 없다. 고개를 쳐들자 눈이 마주쳤다. 몸을 반쯤 일으켜 손을 뻗으려 할 때 해열의 팔이 빠르게 다가왔다. 머리통을 가득 안은 품이 오르내린다. 지겹도록 코끝을 간지럽히던 바다 냄새로부터 최초로 유리되는 순간이었다. 바닷물에 푹 절여진 지 꼬박 하루는 지난 것 같았는데도 비린내라고는 부스러기도 맡을 수 없었다. 가슴팍에 깊게 코를 박아 숨을 들이쉬었다. 끌어안은 팔의 힘이 느슨해진다.

  “뭐하는 거야?”

  심장 소리만이 쿵쿵거리며 말을 대신했다. 유난한 고동에 귀를 바싹 들이댄다. 마주 안은 햇빛 덩어리가 쉼 없이 반짝거리는데도 눈을 감아버리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 팀장님이 보여주었던 황금빛으로 뒤덮인 위작이 떠올랐다. 진품에 기댄 귓가가 그새 발긋하게 물든다. 해열의 유일한 흔적 같은 박동을 부여잡은 채로 짧아지는 해를 배웅했다.

  3. 이브닝

  우당탕탕!

  큰 소리에 눈이 번쩍 뜨였다. 풍경이 어스름했다. 텅 빈 침대 위를 식은 손으로 더듬었다. 잔뜩 주름진 시트 위에 반듯하게 접힌 이불의 조화가 퍽 해열다웠다. 심장은 여전히 오른쪽 귀에서 느리게 뛰었다. 이명 위를 문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어두운 집안에서 욕실 전등 빛만이 환했다. 귀먹은 심장 소리 사이로 물이 세차게 쏟아졌다. 열린 문틈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기다란 해열이 욕실 벽에 절반, 바닥에 절반 늘어진 채로 들썩거렸다. 수도꼭지는 사리분별을 못하고 물을 쏟아낸다. 문가에 걸터앉았다. 맨발에 해열이 신은 슬리퍼가 닿았다.

  “오빠.”

  꿈쩍도 않는다.

  “야.”

  몸을 부르르 떤다.

  “주해열.”

  하룻밤 사이에 둘이나 귀가 먹다니. 발목을 붙들고 바깥으로 홱 잡아끌었다. 보기 좋게 뒤로 넘어간 해열이 타일에 머리를 부딪히고 나서야 아, 한다. 눈동자가 형광등을 피해 천장 틈을 이리저리 쫓아다니다 문간에 겨우 닿았다.

  “어..........”

  “야.”

  “응.”

  “멀쩡한가부다?”

  “...응.”

  욕실용 슬리퍼는 해열이 신은 것이 다였다. 맨발로 들어가 수도꼭지를 잠갔다. 세면대의 물기를 깨끗하게 닦아내기까지 하고 해열의 옆에 쭈그려 앉았다. 축축한 손도 수건으로 꼼꼼히 감싸 눌렀다. 하얗다 못해 질려있던 손이 붉게 물들어서야 좀 사람 같다. 어제 사서 고생을 한데다 잠자리도 좋지 못해서 훌쩍 일으키는 건 무리였다. 하는 수 없다. 별 수도 없고. 팔목을 끌었다, 발목을 끌었다 해가며 방까지 겨우 끌고 들어갔다. 방문을 열어제낄 때쯤 하소연도 덧붙였다. 오빤 내가 운전기사인 줄 알지. 아냐 안 그래. 오빠두 자기 꼴이 좀 웃기다구 생각하진 않어? 보는 사람도 없는데 뭘. 없긴 왜 없어? 너는.......... 나는 뭐. 너는 이런 거 좋아하는 것 같아서. 웃기지두 않네. 커다란 담요를 덮어 콧잔등까지 휘둘러 감아주었다. 담요를 끌어 내리려 할 때마다 손을 쳐내 뭉텅이 안으로 꽁꽁 감춰 넣었다. 얼굴의 절반을 가린 탓에 보이는 거라곤 눈썹과 눈알이 전부였다. 그만해도 썩 괜찮았다. 저항을 포기한 해열이 대신 눈을 억울하게 치켜뜨는 것으로 항의를 보냈다.

  “말하지 말라구.”

  욕실 전등불을 껐다. 방안에 천천히 저녁이 가라앉는다. 느리게 내리는 달빛을 피해 해열의 품으로 기어들어갔다. 지난 오후의 자취를 찾으려는 발버둥이다. 가슴께에 귀를 들이밀어 이명과 주파수가 꼭 닮은 곳을 찾아든다. 방금까지만 해도 놀라 자빠져 발발 떨고 있던 사람의 심장 소리가 이 세상 것이 아닌 것처럼 얕다. 새끼손가락 반절만도 못한 깊이였다. 해열의 팔이 조심스레 뻗어 와 등 뒤를 에둘렀다. 눈을 감고 잔상 위에 소리를 덮어쓰는 일만을 했다. 가슴이 오르내리는 폭마저 미미하게 느껴진다. 명치가 있을 법한 부분을 찾아 더듬다 담요만을 손에 쥐었다.

  “오빠.”

  “응.”

  “오빤 귀신이야?”

  가슴팍이 크게 들썩인다. 웃긴 소릴 했나 싶어 고개를 들었다.

  “내가 귀신이면 너는 케르베로스게.”

  “어려운 말 하지 마.”

  길게 말하면 숨이 찬 듯 했다. 말과 말 사이에 자주 쉼을 두었다. 지지부진해도 영 답답하지는 않은 게 신기한 일이었다. 밤하늘을 가로지르고 꽂히는 달빛의 궤적이 해열의 머리꼭지 위로 드리운다. 달빛이 다녀간 뺨이 씰룩인다. 그 광경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어서 입을 꾹 다물었다. 요란한 아름다움이란 고인 바다와도 같으니까.

  “지옥을 지키는 개냐는 말이야.”

  “나 개같은 새끼라구?”

  해열이 눈을 홉뜨고 쳐다본다. 빤히 마주 봤더니 몇 초 버티지 못하고 눈을 돌린다. 그러고 나서 기껏 한다는 말이,

  “저승사자?”

  란다.

  “내가 오빠 패기라두 했어? 뭔 소리야.”

  건져 와, 주워 와, 먹여 줘, 재워 줘, 지난 하루를 되짚어보니 그야말로 천사가 따로 없다. 그런데 지옥이니, 저승이니. 기가 찼다. 정말로 모르겠단 표정을 지으니 해열이 제 뒷통수를 매만진다. 그런 몸짓은 일종의 항의였다.

  “아! 그럼 내가 오빠를 무슨 수로 끌고 와!”

  버럭 성을 내며 번쩍 고개를 든다. 앉은 키로는 눈높이가 얼추 맞았다. 반짝거리는 눈알을 들여다보는 일은 선글라스 없이 햇볕을 보는 일과 같았다. 그러자고 마음 먹은 게 아닌데도 자꾸 먼저 시선을 피하게 됐다. 괘씸했다. 담요를 끌어 올려 머리 위까지 꽁꽁 덮어버렸다. 그 맨질맨질한 눈알이 보이지 않자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고마워.”

  담요 속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도로 가슴팍에 귀를 기대어 앉았다. 해열의 팔이 내 머리통을 감싸 안는다. 어제와 꼭 닮은 모양은 아니었지만 괜찮았다. 한참을 숨소리를 나누었다. 해열이 담요 바깥으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나는 그의 입술께를 쳐다보며 말문을 열었다.

  “아까는.”

  “응.”

  “왜 그런 거야?”

  해열은 대답까지의 거리가 꽤 먼 편이다.

  “글쎄.”

  “한참 생각한 답이 그거야?”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그냥.”

  “소리가 끔찍해.”

  꽉 맞물린 틈새를 꾸역꾸역 파고든다. 한 번도 버릇인 적 없던 짓을 습관인 체 하면서 안은 팔에 힘을 준다. 우스운 한 쌍이다. 해열은 목덜미와 머리카락 사이를 배회하며 자주 숨을 멈추곤 했다. 심장 소리가 거듭하며 선명해지는 착각 속에서 노란 풍경으로 뛰어드는 상상을 했다. 해열은 이따금 몸을 떨면서 조용하고 흔들림 없이 고백했다. 멀미의 기억을 오래 겪었다고. 욕실 안에 숨겨두었다던 거대한 바다와 집채만 한 파도는 마치 새벽의 전염과도 같았다. 꿈과 기억과 현재의 분간의 만만치 않은 곳에
서 해열은 가끔 울었고 자주 떨었다. 아침 해는 새벽의 한가운데를 가르고 들어와 꿈을 위로했다. 적확한 불행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불행의 덩어리짐은 충분히 알고 있으므로, 새벽을 보내는 울음 같은 하소연에 기꺼이 탑승했다. 그 무엇도 거스를 것 없는 아주 추운 겨울이 왔으면 했다. 모든 유난한 것들이 꽝꽝 얼어버리고 눈 내리는 소리가 세상을 뒤덮는 그런 겨울 말이다.

 

 

  <제46회 학술문예상 소설 가작 수상소감>

  글을 쓰는 일과 글을 발표하는 일은 각자 다른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부끄러운 글은 여러 번 써봤지만 그걸 누군가에게 보여준 적은 많지 않습니다. 늘 속엣말 같은 글만 써왔습니다. 내 눈엔 아주 멋진 이야기가 남의 눈에는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글로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오래도록 미뤄온 모양입니다. 대학생이라는 이름을 서서히 벗어가고 있는 올해 가을에서야 소설을 보냅니다.

  <썬데이, 원데이>는 제가 짝사랑했던 캐릭터들을 소개하는 글입니다.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 구상했던 인물들이니 꽤나 오랫동안 품고 있었네요. 어린 시절에 사랑했던 친구들이라서 그럴까요. 소설에 등장하는 두 인물은 모두 어린 애 같고 미숙해보입니다. 저는 그런 덜 자람이 사랑스럽습니다. 딱 그 시절의 제가 할 법한 상상 같거든요. 지금 새로 캐릭터를 만들어보라고 한다면 딱 지금의 저를 닮은 인물을 내놓겠지요. 아마 마스크를 쓴 얼굴을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맨 얼굴을 한 어린 소녀와 소년의 이야기를 하루 빨리 제 안에서 꺼내어 바깥으로 발표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더 미룬다면 이 아이들마저 마스크를 쓴 채 서로를 무심히 지나칠 것만 같았거든요. 다행히 덕성여대신문사의 학술문예상이 저의 드럼통을 건져주어서 두 주인공은 알맞은 때에 서로의 손을 잡게 되었습니다.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저는 사랑하는 글을 쓰는 일이 즐겁습니다. 앞으로도 사랑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소설 쓰겠다고 설치고 다니는 딸을 변함없이 응원해주시는 부모님과 <썬데이, 원데이>가 아직 이야기에 불과하던 시절에 글을 북돋워 주신 이은애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보내주신 사랑을 기억하며 계속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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