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미러 - 후기가 성행하는 나라
백미러 - 후기가 성행하는 나라
  • 배은정 기자
  • 승인 2006.05.20 18: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트로이 유적을 발견했던 고고학자 슐리만은 9개 국어에 능통한 언어천재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언어학습법의 요체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끊임없이 음독할 것, 흥미로운 주제에 대해 작문을 해보고 그것을 교사의 지도를 받아 수정하고 외울 것, 하루 1시간씩은 꾸준히 공부할 것'

 그러나 이와 같은 대가의 언어 학습법은 한국의 대학생들에게는 다음과 같이 응용된다. '끊임없이 후기 자료를 읽을 것, 고수들의 후기를 받아 외울 것, 시험치기 일주일 전부터는 후기 위주로 공부할 것' 만약 토익 혹은 토플 시험을 치려고 마음먹었던  사람들은 누구라도 인터넷 게시판에서 이런 글을 한 번쯤 읽어보았을 것이다. '저 후기탔어요'라는 즐거운 비명을 말이다. 이 후기 위주의 공부법은 대한민국을 강타하는 것을 넘어서 이제 영어의 본 고장인 미국까지 진출하고 있다. 한 예로 미국 대학에 편입했던 후배는 대학원 진학을 위해 GRE 공부를 하러 다시 한국으로 들어왔다. 이 무시무시한 후기 공부법은 미국의 ETS 까지 벌벌 떨게 만들었다. 오죽하면 어마어마한 거액을 들여 새로운 문제유형을 만들었겠는가?

 곧 바뀌는 토익의 마지막 차에 승차하기 위해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온갖 토익 후기로 후끈 달아올라있다. 매달 토익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실시간으로 토익시험에 대한 이야기들이 쏟아져나오니, 이건 뭐 영어 실력을 높이자는 건지 문제 푸는 기술을 높이자는 건지 그 의도가 아리송하다. 한술 더 떠 토익 대리 시험으로 점수를 올려 대기업에 취직까지 했다는 후기까지 인터넷에 떠돌아다녀, 급기야 경찰이 토익 부정행위자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기까지 했다.

 

 토익시험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는 비단 어제, 오늘의 문제만은 아니다. 입시지옥은 대학에 들어오면서 토익 지옥으로 탈바꿈한지 오래다. 대학가는 순수학문에 관한 연구보다는 취업윌 위한 영어공부에 올인했다. 후기가 성행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영어를 '배운다'가 아니라 영어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한 문제 풀기 요렁을 '익힌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그것의 목적이 공부든 취직이든 간에 사람들의 영어 수준이 글러벌 시대의 강자와 약자를 가르는 기준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오죽하면 잉글리시 디바이드라는 말이 나왔을까. 영어를 잘한다고 그 사람까지 잘난 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영어를 못한다고 사람이 못난 것은 아니다. 지구촌을 이어주는 언어가 다른 한편으로 계급의 분화를 낳고, 똑똑한 인재를 구별하는 기준으로 적용되는 모습이 씁쓸하기만 하다.

 이러한 토익 시험의 공정성 문제에 논란이 빚어지면서 일부 대기업에서는 입사시 토익의 비중을 낮추겠다는 토익무용론을 내시우고 있다. 한국내의 토익무용론 움직임에 토익시험을 주관하는 미국 교육평가위원회가 토익시험의 대대적인 개편을 주도하고 나섰다.  이것이 실용 영어 구사능력 향상에는 도움을 줄지 모르겠지만, 그로 인해 영어교육의 빈부차를 더 크게 만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벌써부터 5월부터 바뀌는 새로운 토익 시험의 후기 코넉 커뮤니티에 등장하고 공략방법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영어 공부에 대한 인식을 바꾸지 않는 한, 대한민국에서 영어는 배우는 것이 아닌 험난하게 헤처나가야 할 평생의 짐이 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도봉구 삼양로144길 33 덕성여자대학교 도서관 402호 덕성여대신문사
  • 대표전화 : 02-901-8551, 8558
  • 청소년보호책임자 : 고유미
  • 법인명 : 덕성여자대학교
  • 제호 : 덕성여대신문
  • 발행인 : 김건희
  • 주간 : 조연성
  • 편집인 : 고유미
  • 메일 : press@duksung.ac.kr
  • 덕성여대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덕성여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duksung.ac.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