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취재기] 외침은 드높았다. 그러나 사람도 들도 울고 있다.
[평택 취재기] 외침은 드높았다. 그러나 사람도 들도 울고 있다.
  • 배현아 기자
  • 승인 2006.05.22 1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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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4 평택 본정리 집회 현장

2003년 용산 미군기지의 평택 이전 결정 후 지금까지 대추리 주민들과 이전 반대자들의 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농수로를 끊기 위해 정부의 중장비 동원과 무력행사가 행해졌고, 이달 4일 정부는 대추분교를 강제철거하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격렬한 충돌로 수많은 이전 반대자들이 부상당했고 5백여 명이 연행되었다. 현재 경기지방경찰청은 평택 미군기지 이전 예정지 일대에 CCTV를 설치한 상황이다. 반면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 측은 내달 4일에 대규모 집회를 열어 정부 방침에 강경 대응할 것이고, 민주노동당의 조사에 따르면 국민 절반 가량은 정부의 군 투입이 잘못되었으며 70% 가량은 주한미군이 단계적으로 철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게다가 다른 평택 땅은 평당 50만, 1백만원인데 비해 정부는 대추리 주민들에게 평당 15만, 18만원이라는 터무니없는 보상금을 제시하고 있다. <편집자 주>

5월 14일 오전 11시 17분경 평택역에 도착했다. 앞뒤로 ‘미군기지 확장 이전 반대’가 쓰인 옷을 입은 사람들, 커다란 사진기를 든 사람들 모두 집회에 참가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기자는 주위 사람들에게 집회는 어디서 하는지, 그곳에 어떻게 가는지 물었다. 그리고 택시 승차장에서 만난 어느 노동자와 택시를 타고 출발했다. 목적지는 평택시 팽성읍 본정리다.

대추리는 이미 원천봉쇄되었고, 본정리로 가는 길마저 전투경찰들이 대치해 평택 일대를 빙 돌아 본정리 근처에 당도했다. 살벌하고 삼엄했다. 논두렁을 비롯해 본정리와 이어지는 길목마다 전경들이 이중 삼중으로 막아섰다.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이동했다. 다들 본정리에 어떻게 들어갈지 고민했다. 그리고 20분여 흘렀을까. 기자와 다른 사람들은 찻길과 논 사이의 난간을 넘었다. 바로 옆에는 전경 수백여 명이 대치한 상황이었고, 우리는 빨랐다. 이런 경험을 처음 하는 기자로서는 사실, 두려웠다. 이곳이 대추리는 아니지만, 대추리에 지나다니기만 해도 구속감이라는 웃지 못 할 말이 연신 뇌리를 스치는 순간이었다. 난간을 넘고, 혹시나 전경들이 기자를 불러 세우지는 않을까 하는 초조한 심정으로 빠르게 논두렁을 걸었다. 그렇게 30분쯤.

본정리 사거리에는 1만여 명의 대학생들과 노동자들이 있었다. 물론 그 대열의 앞뒤에는 전경들이 대치해 집회자들의 움직임을 통제했다. 햇빛을 피해 전경 차량 아래에 누워서 자는 노동자들, 앉아서 꾸벅꾸벅 조는 대학생들. 이른 아침부터 이동한 그들은 밥도, 물조차도 마시지 못했다. 모두 지쳐보였다.

노동자 대열에서는 삼삼오오 조용히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 대열 앞쪽에서 집회자들과 전의경부모의모임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대학생 대열쪽으로 가보았다. 대학별로 연합단체별로 노래를 부르고 율동을 하며 미군기지 반대를 외치고 있었다. 뜨거운 태양을 감지하며 펄럭이는 깃발 아래, 까맣게 늘어선 전경들 안에서 마치 감옥에 갇힌 듯한 느낌을 받았다.

노동자들이 대열에서 살짝 벗어나 대추리에 진입하기 위해 이동을 시도하는 동안, 대학생들과 전경들 사이에 마찰이 빚어졌다. 전경들을 밀어내고 이동하려는 대학생들과 이를 막으려는 전경들. 다소 격하게 서로 몸을 밀어냈고, 뒤쪽의 대학생들은 외쳤다. “평화집회 보장하라! 평화시위 왜곡 말라! 주한미군 몰아내자!” 취재진들은 사진을 찍어댔고, 대학생들은 민중가요를 불러댔다. 현장은 격렬하고 긴박했으며 금방이라도 폭탄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충돌은 곧 끝이 났고, 다시 모인 집회자들은 평택을 위한 소리를 외쳤다.

3시가 조금 넘었을까. 하늘에서 굉음이 들렸다. 경찰 헬기였다. 헬기에서 경고방송이 나왔지만 집회자들의 외침 속에 묻혔다. 이어 헬기에서 전단지가 뿌려졌다. 군사시설보호구역에 절대 접근을 금지하고, 철조망을 훼손하거나 침범 시 엄단할 것이며 협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7,80년대 삐라가 뿌려졌던 모습을 재현하는 듯했다.

그리고 4시 30분경. 별 탈 없이 모두 끝이 났다. 집회자들은 자리를 털고 일어섰고, 전경들은 집회자들이 나갈만한 샛길을 냈다. 평화시위를 마치고 돌아가겠다는 집회자들에게, 곳곳에 놓인 전경 차량과 나갈 틈을 제외한 조금의 여유도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서있는 전경들은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1만여 명이 좁은 길로 이동하려면 본정리 주민의 논과 밭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틈을 벗어나 걸었다. 살이 타있었다. 대추리 주민들을 위해 한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속도 탔다. 그러나 대추리 주민들의 속은 이미 새까맣게 타들어가 재조차 남아있지 않을 것이리. 뜨거운 2006년의 늦봄, 사람도 들도 통곡하고 있다.

배현아 기자
pearcci6@duks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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