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이 사람들] 강제 철거도 모자라 시장 공원화까지? 답답하다
[여기 이 사람들] 강제 철거도 모자라 시장 공원화까지? 답답하다
  • 배현아 기자
  • 승인 2006.06.07 1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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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물벼룩시장 상인 최중식 씨

- 풍물벼룩시장 상인 최중식(53) 씨

동대문운동장에 위치한 풍물벼룩시장(이하 풍물시장). 귀에 익은 올드 팝송이 어딘가에서 흘러나온다. 코를 채우는 비릿한 생선구이 냄새가 장 안을 휘돈다. 음식과 신발은 기본이고 액세서리부터 책, 염색약, 휴대폰, 골프채, 헬스기구, LP판까지 그야말로 없는 것이 없다. 이곳에서, 청계천 복원사업을 이유로 서울시로부터 자신들의 생계수단인 노점을 강제 철거당한 상인들의 하루하루가 이어진다. 그동안 아무 대책 없던 서울시, 이곳을 공원화한다는 후임시장의 공약에 청계천 악몽이 또다시 되풀이될까 한숨 쉬는 그들. 벌써부터 불어오는 후텁지근한 바람을 피해 만물상을 하고 있는 최중식 씨와 이야기해보았다.

풍물시장에 흥겨움은 없다

최중식 씨는 아침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동대문운동장의 풍물벼룩시장에서 만물상을 운영한다. 평일에는 물건을 사러 사람들이 오지만, 북적대는 주말에는 2/3가 구경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나마 외국인들이 일요일에 와서 물건을 사긴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거의 구경만 한다. “아이들을 데려와서 물건을 헤쳐놓고, 가끔 물건이 없어지기도 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몇몇 상인들은 주말에 장사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청계천변에서 노점상을 할 때보다 소득이 적어 풍물시장 한 달 운영비 4만원도 못 내는 상인들이 많다고.

대책 없는 서울시

노점 강제 철거 당시 상인과 전경, 용역 사이에 몸싸움이 일어났고, 이 때문에 병원에 간 상인들도 많다. 그들은 대부분 노인이라 맞을 수밖에 없었다. 최 씨는 “굉장했다. 말로 다할 수 없다. 정말 많이 다쳤다”며 당시를 회상한다. 이후 그들은 서울시가 약속한대로 이곳, 풍물시장으로 왔다. 2003년 11월의 일이다. 그러나 지금 청계천변에는 풍물시장 노점만큼 많은 노점들이 생겼다. 청계천 복원사업을 위해 기존에 있던 노점을 강제 철거했지만, 원상태로 돌아간 것이다. 이에 풍물시장 상인들이 반발하자 두 달 전쯤 잠깐 단속이 행해지더니 그대로라고. “장사 못하게 해서 여기로 온 건데, 이게 뭔가. 가둬놓은 것밖에 더 되는가?”

상인들 70만원 모아 전기, 수도, 천막까지

“처음에 유명한 시장으로 만들어준다고 해서 확실한 대책이 있는 줄 알았다”는 최 씨는 서울시에 대해 불만을 표시한다. 풍물시장을 운영하려면 전기 및 수도시설과 천막을 설치해야 했다. 돈이 필요했다. 상인 2백여 명이 일수를 얻어서 돈을 마련했다. 결국 한 사람당 70만원씩 내서 지금의 풍물시장을 만든 것이다. 이외에 따로 들어간 돈도 있다. 더군다나 풍물시장에서 장사하기 위해 허락을 받기까지도 몇 개월이 걸렸다고. 최 씨는 “시에 항의하면 담당이 바뀌었다면서 대화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한다. 말뿐이었다. 약속을 지키겠다던 서울시는 발등의 불끄기에 바빠서 말, 오직 말뿐이었다.

위태로운 이야기

청계천 시절에는 노점이 일렬로 늘어서 있어 많은 사람들이 구경했고, 그래서 주말에만 나가도 장사가 어느 정도 됐다. 그러나 풍물시장은 노점들이 분산돼 있어 사람들이 물건을 고루 구경하지 못한다. 이러니 최 씨가 월, 화요일에는 물건을 사러 다니고, 5일 동안 장사를 해도 청계천에서 이틀 하는 것보다 소득이 적다. 대중이 없는 장사이기에 소득은 일정하지 않지만, 그 시절과 비교했을 때 확실히 적다. “청계천 시절 벌어놓았던 돈을 생활비와 애들 학비로 쓰다 보니 남는 돈이 없다. 다들 그렇다. 빚 얻어서 생활하는 사람도 많다.” 게다가 풍물시장 밖에 여러 노점들이 생겨 고객 확보가 어렵다. 이뿐만 아니다.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자는 선거기간에 동대문운동장을 2천4백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공원으로 조성하고, 지하에는 4만평 규모의 복합문화센터를 조성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한 바 있다. 그들의 마지막 생계터전인 풍물시장마저 위태로운 실정이다. 최 씨는 “서울시민으로서 봤을 때 청계천 복원은 잘한 일 같다. 그러나 상인들의 생계대책 없이 사업을 시행한 건 잘못됐다. 서민을 정말 생각한다면, 방안 마련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한다.

무허가 노점상은 불법이다. 이런 노점상들은 전국에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다. 그러나 그들을 모두 단속하고 범법자로 처리한다면, 그들의 생계는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그들은 누구에게 보상받아야 하는가? 노점상을 계속할 것이냐는 질문에 최 씨는 이렇게 답한다. “그렇다. 이것 말고 해먹을 것이 없다. 돈이 없어 뚜렷하게 뭘 할 처지도 안 되고. 사실 답답하다.” 기름진 얼굴로 터질 듯한 배를 어루만지며 상속과 횡령을 일삼는 가진 자들이 떵떵거리고 유세부리는 대한민국. 이 사회가, 기가 막히게 역겨운 이 나라의 생리가 이들을 새 길로 나아갈 수 없게끔 무한궤도 속에 집어넣는 것은 아닌지 묻고 또 묻는다.

배현아 기자
pearcci6@duks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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