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이 사람들] 지하철의 외로운 벤처사업가…
[여기 이 사람들] 지하철의 외로운 벤처사업가…
  • 배현아 기자
  • 승인 2006.09.16 2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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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도 시민도 서로를 경계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지하철 상인

 

출처=국민일보


오전 11시 인천행 지하철 안. 목적지는 1호선 회기역이다. “이번 역은 회기, 회기역입니다.” 그런데 전날 잠을 못 자서인지 눈꺼풀이 자꾸 감긴다. 그때, 내릴 준비를 하는 사람들 사이로 어렴풋 옆 칸에서 누런 상자가 보인다. 스테인리스 수레 위에 꽁꽁 붙어있는 상자 말이다. ‘지하철 상인이다!’ 전날 지하철 안에서도 플랫폼에서도 한 시간 넘게 볼 수 없던 지하철의 외로운 벤처사업가…. 내린다. 그리곤 무작정 그의 뒤를 쫓는다.

언제 말을 걸까. 사람들 이목 집중이 덜한 곳이 낫겠지. 그리고 전날 종일 연습하던 첫인사말을 연신 되뇌어본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저, 아저씨. 혹시 지하철에서 사업하시는 분 맞나요?” 말을 건넨다. 뜻밖이라는 표정이다. 지하철 상인과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잠깐 시간을 내줄 수 있느냐는 부탁에 조금 망설이는 듯한 그. 그러나 시간이 없어 안 된다는 대답과 동시에 아내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온다. 대답은 더욱 확실해진다. 그들은 아래 플랫폼으로 내려가면 상인들이 많을 거라는 말만 남긴 채 발길을 재촉한다.

다시 내려가 타는 곳 가장 끝 쪽으로 향한다. 상인들은 첫 칸이나 끝 칸에서 장사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상인이 있는지 주변을 살피며 걷는다. 저기 뭔가 보인다. 타는 곳에 물건으로 가득 찬 상자 여러 개가 쌓여있고, 그 앞 의자에는 상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앉아있다. 서성거린다. 아까처럼 거절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게다가 이번에는 여러 명이라 더욱 긴장되는 순간이다. 용기 내어 물건 앞에 선 상인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올해로 73세인 윤동수 할아버지. 이것저것 해보다가 뭘 좀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 일에 뛰어들었다. 선풍기 덮개 등 갖가지 생활용품을 파는 윤씨는 3~4년 동안 지하철 상인으로 일하고 있다. 윤씨는 주로 아침 9시부터 낮 3시까지 매일 서울역과 구로, 인천을 넘나들며 일한다. 상인들 사이의 규칙에 지하철 안에서 한명만 장사해야 한다는 것이 있다. 그리고 활동 구역도 나누어져 있다. 윤씨는 “1호선은 의정부에서 청량리까지, 청량리에서 구로까지, 구로에서 인천까지 구역이 나누어져 있다”고 말한다. 상인들은 다른 상인과 활동 시간 및 구역이 겹치는 것을 막기 위해 플랫폼에서 30분 이상 기다리고, 활동 구역도 나누었다.

지하철 내 상행위는 엄연한 불법. 때문에 단속의 위험을 피할 수 없다. 한번 단속에 걸리면 3만원의 벌금을 내는데, 이는 상인들의 보통 하루벌이 3~5만원 중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윤씨는 “단속되면 금전적인 부담도 크지만, 활동 시간을 뺏겨 활동 시 영향을 받는다”며 “단속반도 지하철 상인을 직업으로 인정하지만 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단속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많은 시민들 앞에서 말하고 장사하는 것이 낯설고 힘들었다.” 하지만 윤씨에게 지하철 상인이라는 것은 직업이자 생존경쟁의 일환이기 때문에 지금은 익숙해졌고 장사 기술도 늘었다. 윤씨는 “시민 앞에 서는 것이 익숙해졌기 때문에 큰 애로사항은 없다. 그러나 어떤 일이든 힘든 점이 있듯 그런 것들을 감수하고 일하는 것뿐이다”라고 말한다. 이들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반으로 갈라진다. 어렵게 산다고 격려해주는 사람, 시끄럽다고 조용히 하라는 사람으로. 간혹 취객들이 시비를 거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 윤씨는 그저 참을 뿐이라고.

능력껏 벌어서 생활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도 있어 이 일에 만족한다는 윤씨. 이들은 자체적으로 친목회를 만들어 노인들을 돕기도 하고 서로 의지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리고 윤씨는 말한다. “수레를 밀어주며 도와주는 대학생도 있지만, 멸시하고 무시하는 눈초리로 바라보는 대학생도 있다. 후자의 경우 아주 기분이 나쁘다. 대학생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시선이 달라지고, 단속반도 단속을 조금 느슨하게 해주길 원한다.” 이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단속반이 나와 상인들에게 벌금을 걷고 있다. 엄격한 분위기에서 실랑이로 이루어질 줄 알았던 단속은 꽤 가볍게 진행된다. 단속반과 상인들 모두 오래 알고 지냈던 듯 웃어넘기며 벌금을 내고 또 걷는다. 아무렇지 않은 일상처럼 말이다.

인터뷰가 끝났다. 그러나 인터뷰 진행 내내 기자는 다른 상인들의 경계심을 느꼈다. 자신의 사연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단 자신의 직업이 알려졌다는 것에 심하게 적대감을 드러냈다. 감히 사진기를 꺼낼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그 중 한 상인도 기자의 질문에 “좋다. 다 좋다”로만 일관하며 어떤 말도 하길 꺼려했다. 그동안 받았던 그 어떤 시선 때문일까. 최지혜(문헌정보 2) 학우는 지하철 상인에 대해 “사실 평소에 지하철 상인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그들의 직업이 인정받길 바란다”고 말한다. 그렇다. 상인들은 대대적인 법적 개선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들의 직업을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서늘한 낯빛이 아니라 무미건조한 낯빛으로 대해도 좋으니 지하철 상인 그 자체를 가슴으로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오늘도 그들은 지하철 문 앞에 서서 한숨으로 마음을 굳게 다진다.

배현아 기자
pearcci6@duks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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