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사진과의 소박한 만남
초기 사진과의 소박한 만남
  • 조영희
  • 승인 2006.10.28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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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우리 사진의 역사를 열다>전은 사진이 한국에 유입되었을 당시 초창기 사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전시는 한국 사진사를 개략적이나마 훑어볼 수 있고, 한국의 근대화 과정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지금까지 연재된 글에서는 예술적 의미가 있는 사진들에 대해서 주로 다루었다. 뮤지엄에 전시되고 그에 대한 비평이 쏟아지는 사진들은 소위 ‘예술 사진’들이라 할 수 있다. 사진 작가라고 하면 우선 예술로서의 사진을 매체로 여기며 작업하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사진발명 이후부터 사진이 회화 등의 다른 미술장르와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사실적인’ 재현이다. 따라서 사진이 발명되었던 1839년 이래 서구에서 뿐만 아니라 19세기 후반 일본과 중국을 통해서 수입된 한국의 사진들은 대체로 초상사진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또한 사진의 사실적인 재현을 가장 잘 보여주는 기록 사진들이 많이 촬영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도 예술적인 의미를 갖는 사진이라기보다는,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한국 근대기의 모습을 기록한 사진들이 전시되고 있다.

 한국에 사진이 유입되었을 초기, 민중들은 너무나 사실적인 재현으로 인해 사진이 사람의 혼을 빼앗는다는 생각으로 배척하기도 했고, 심지어 갑신정변 당시 사진관을 파괴하기까지 했다. 미신 숭배와 함께 사진은 일본을 통해 수입되었기 때문에, 사진관 역시 반일감정의 표본이 되었던 것이다. 이에 반해 고종은 사진으로 어진을 많이 기록했으며, 사진을 장려하였다. 

 갑신정변 이후, 1907년 김규진이 개설한 천영당사진관을 통해 비로소 조선인에 의한 초상 재현이 가능해졌다. 이때부터 사진은 보다 대중적으로 되었고, 여러 가지 기념사진들을 촬영했다. 학교 졸업사진, 제대 기념사진 등의 일상사를 담은 기록사진들은 당시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20세기 초 단체사진은 1세기가 지난 지금의 단체사진과 다를 것이 거의 없다. 또한 의친왕의 차남 이우 공의 결혼사진 앨범 역시 현재 우리들이 흔히 볼 수 있는 결혼앨범과 다르지 않다. 사진의 질은 백년전 보다도 많이 좋아졌을지 모르지만 사진의 찍혀진 형식이나 내용들은 별반 변하지 않는 듯 하다.

 이번 전시는 작은 크기의 오래된 사진들이지만 초창기 수용된 사진의 형태와 한국의 근대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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