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아이들의 학교 수료생 박명화(21)씨
꿈꾸는 아이들의 학교 수료생 박명화(21)씨
  • 양가을 기자
  • 승인 2007.03.17 1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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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과 조금 다른 길을 걸어왔을 뿐
‘넌 잘하고 있는거야’
잃지 않았던 시간, 용기 그리고 꿈

짧다면 짧은 길을 돌고 돌아 왔다. 조금은 숨 가쁘고 서러웠을 시간 속에서 박명화씨는 남들과 조금 다르게 시간을 보냈을 뿐 현재에 만족하며 열심히 살고 있는 제 모습이 중요한 것 같다며 커피잔을 살며시 내려 놓았다.
생소한 대안학교와의 어색한 만남
박명화씨는 중학교를 졸업한 후 누구나 그러하듯이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외도와 폭력 그리고 협박으로 인해 가정은 박명화씨에게 따뜻한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했다. 어머니와 함께 집을 나온 박명화씨는 다니던 학교에 다닐 수 없게 되어 이모의 소개로 ‘꿈꾸는 아이들의 학교’라는 대안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박명화씨는 “처음에는 ‘이런 곳에 왜 다녀야 하나. 정 주는 것도 싫고 빨리 검정고시나 봐서 나가야지’하고 생각을 했어요”라고 말했다. 선생님이 한명 한명의 학생들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에 반항심을 갖기도 했었다. 박명화씨는 학교를 그만 둔 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뚱해있거나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조차 어렵게 느끼는 소극적인 학생이었다. 하지만 대안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자기를 둘러싼 환경이 아닌 자신만을 오롯이 인정해주는 분위기 속에서 선생님들의 자신감을 북돋아 주는 말 한마디와 관심으로 인해 밝고 적극적인 학생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멘토링 선생님과 일대일 시간이 있는데 그 시간에는 꿈잡이 선생님(일명 담임 선생님)에게 말 못할 이야기를 하거나 내가 부족한 공부를 함께 하기도 해요.” 꿈꾸는 아이들의 학교는 학생들 말 하나하나에 귀 기울이며 가정방문, 발표회 등으로 학생들과 가정, 그리고 학교와의 유대감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밖에 학교에서는 수학, 영어 등 검정고시 준비뿐만 아니라 독거노인을 위한 러브 하우스 프로젝트에 참가하거나 보도여행, 농촌활동 등 다양한 야외 활동을 하기도 했다.
편견과 시선, 남몰래 흘린 눈물  
박명화씨는 집안의 경제 사정 때문에 검정고시에 합격한 후 대안학교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모의 소개로 무역회사에 취직하게 되었지만 어린 나이에 회사생활은 고단하기만 했다. “주변 사람들의 편견이 가장 힘들죠. ‘정규 학교를 안 나왔으니 성격도 안 좋고 인내심이 있겠어?’ 라고 생각하기 쉽죠”라며 말하는 박명화씨는 학력 때문에 보수가 다른 사람에 비해 낮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몸소 느끼면서 더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더군다나 어른들과 함께 하루 종일 일해야 하는 부담감과 회사 직원들의 텃새 등을 지켜보면서 조직생활에 회의감을 느껴 회사에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그럴 때마다 박명화씨는 평범하게 부모님의 용돈을 받아가며 교복을 입고 학교를 다니는 또래 친구들이 부럽기만 했다. 박명화씨는 “‘친구들은 오늘 수련회 간다는데 난 이렇게 일하고 있구나. 나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학교생활 했었으면 재미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었어요”라며 친구들은 자기에게 오히려 돈 벌어서, 시간이 많아서 좋겠다고 했지만 정작 제 자신은 친구들이 부러웠다고 했다. 가정불화로 인해 원하지 않게 학교를 나와서 어린나이에 회사에 들어가 어머니와 함께 돈을 벌어야 했던 박명화씨는 그런 상황들 때문에 피해의식에 사로 잡혀있기도 했었다고 전했다.
꿈을 찾아 비상 준비 중
박명화씨는 “대안학교를 다니면서 많이 달라졌어요. 부모님이 느끼실 만큼 밝아졌죠. 하지만 가끔 단체로 가출하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선생님들이 동분서주 뛰어다니시면서 아이들을 찾곤 하셨죠”라며 선생님들의 세심한 배려와 조언에 고마움을 느낀다고 했다. 생활하는 게 힘들어 선생님께 전화를 할 때면 선생님은 이야기를 들어주고는 넌 잘하고 있는 거라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리고 다시 자신을 다독이고 일어서게 만들었다.
현재 박명화씨는 회사 일을 접고 새로운 시작 앞에 서 있다. 바로 한국방송통신대에서 일본어 공부를 시작하기로 한 것. “학교 다닐 때 진로 과목이 있었는데 전 그 과목이 싫었어요. 특별히 꿈이 없었거든요”라던 박명화씨는 선생님을 통해 조금씩 배우던 일본어에 더 큰 관심이 생겼고 이를 계기로 대학교에 진학하기로 한 것이다. 이어 “이젠 살기 편안해졌나봐요.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 보니까” 하며 웃어 보였다.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맞닥들인 상황 때문에 자기 또래와 다른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박명화씨를 보며 그것이 틀린 삶이 아닌 여러가지 삶의 모습 중 한 부분임을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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