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평등하다고 느낄 때, 오히려 이티비티티티
충분히 평등하다고 느낄 때, 오히려 이티비티티티
  • 김미정 기자
  • 승인 2007.04.14 2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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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평등하다고 느낄 때, 오히려 이티비티티티

유정미, 시립대 강사

최근 열린 제9회 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된 작품 중 <이티비티티티 위원회> (제이미 배빗, 2007)가 있었다. 영화는 초입에 익명의 남성들의 투덜거림을 삽입하고 있다. “그러니까 요즘 여성들이 요구하는 것이 뭐야? 지금은 30년 전과는 다르지 않아? 과거와 달리 여성들이 선택을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잖아”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 작품은 미국의 젊은 페미니스트들의 게릴라 운동을 보여주는데, 이들은 ‘그래 세상이 변하긴 했지, 하지만 여전히 여성들은 가슴확대수술을 받기 위해 성형외과를 방문하고, 다이어트로 죽어가고 있잖아. 세상과 타협하기에 아직은 이르다구’라고 항변한다.
최근 한국에서도 ‘여자들은 이제 얻을 것을 다 얻은 것 아니야?’라는 어떤 빈정거림이 존재하는 것 같다. 이제 질문을 우리 사회로 향해보자.

전통적 여성의 삶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목소리
요즘 한국사회의 문제적 현상을 대표하는 것의 하나는 ‘저출산’ 현상이다. 한국은 2005년 합계출산율 1.08로 거의 세계 최저수준을 기록했다. 정부는 지난 몇 년 동안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을 펼쳤지만 출산율은 오히려 점점 하락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리고 여성들은 일과 결혼 또는 일과 육아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일을 선택하겠다는 경우가 다수이다. 출산율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단순하게 몇 가지로 꼽을 수 없지만, 저출산 현상에 반영된 목소리 중 하나는 전통적 여성의 삶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여성들의 의지이다. 이 외에도 고시에서 여성들의 합격률이 점점 상승하는 경향을 비롯한 수많은 여성성공스토리들은 여성들의 의지가 향하는 방향을 보여준다.

전통적 남성 권위의 상실을 우려하는 남성들의 목소리
저출산 현상에 여성들의 저항의 목소리가 포함되어 있다면, ‘군대 문제’는 남성들의 항변을 담는 그릇이다. 99년 군가산점제 위헌 판결이 나면서 ‘남성됨의 억울함’ 문제가 본격적으로 등장하였는데, 이러한 정서는 여성 관련 이슈마다 여성단체나 여성부에 대한 분노로 표출된다. 노동부가 KTX 문제에서 노동자들 편에 서있지 않았다고 해서 노동부를 없애자고 하지 않으며, 국방부에 무기 구입 비리가 있다고 해서 국방부를 없애자고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여성 이슈의 경우는 매번 ‘여성단체폭파’나 ‘여성부를 없애자는 식’의 존재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진다. 최근 군대와 관련해서 나오는 발언의 주요 방식은 ‘여성도 군대에 가거나 사회봉사라도 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남성들이 보이는 반-페미니즘 정서가 공적영역에서 여성들과 경쟁해야 하는 현실을 배경으로 함을 말한다.
이런 발언에 전통적 남성의 삶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목소리로 연결된다면 좋겠다. 남성에게 과잉 부과된 책임에 대한 거부가 있다면 거부의 전략은 페미니스트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페미니스트들과의 연대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군대의 불공정성을 제기하는 남성들은 프로(pro)-페미니스트 보다는 안티(anti)-페미니스트의 위치를 등장한다. 군대문제에 대한 남성들의 반응은 가부장제 사회에 대한 저항보다는 권위를 상실하는 두려움을 반영하고 있으며, 공적영역에서의 몫을 여성들과 경쟁해야 하는 스트레스를 표현한다.

빠르게 변하는 여성, 느리게 변하는 남성
미국의 사회학자 알리 러셀 혹실드는 미국의 맞벌이 부부에 대한 연구를 통해 ‘변화의 성별차이’를 “빠르게 변하는 여성, 느리게 변화하는 남성”이라고 표현하였다. 나는 수업 시간에 여성도 군복무나 사회봉사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여학생들을 많이 만난다. 여성들은 경쟁의 장에서 남성들에게 공정하지 못한 요소가 있다면, 조절되어야 함을 수용한다. 반면, 군대 문제에 대한 남성들의 반응은 군대 문제에만 초점이 있고,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차별이나 폭력, 불평등의 문제를 공감하는 것으로 옮겨가지 않는다. 문제의 지점은 남성들이 군대의 불공정성을 의식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남성들이 왜 그 불공성에만 주로 관심을 갖느냐는 것이다.
여성들은 공적영역에서 공정하게 경쟁하기를 지향하며, 사적영역의 책임 역시 평등하게 분담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평등의 문제에 발언하는 남성들의 주장은 주로 공적영역의 경쟁에 남성들이 불리해지는 우려에만 한정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저출산 문제를 이야기했었는데, 저출산 현상은 사적영역이 평등하지 않을 때 여성들이 나타낼 수 있는 소극적 저항을 반영한다. 사적세계가 공적세계에 비해 느리게 변화할 때 여성들은 사적세계에 덜 개입하는 전략을 추구하게 된다.

평등과 이티비티티티들
무엇이 누구에게 어떻게 평등인가는 여성과 남성으로 일반화하기 어려울 수 있다. 지난 수년간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는 많이 향상된 것으로 이야기된다. 하지만 공적인 영역에서 차별의 약화가 평등의 일상적 확산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불평등한 세계가 평등해지기 위해서는 문화적 갈등과 진통을 필요로 할 것이다. 군대문제에 대한 남성의 반응과 출산에 대한 여성들의 선택은 지금 우리가 성취했다고 말하는 평등이 얼마나 동상이몽에 있는가를 보여준다. 평등은 일상적 삶의 영역을 재조정하는 것이다. 일상적 영역에서 평등이 성취되지 않는다면 여성들의 성취는 점점 사회적 불안으로 읽힐 것이다. 여성들의 삶이 진보했다는 담론이 지배적일 때 이티비티티티위원회가 절실하게 요청되는 때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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