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개의 땀방울로 한줄기 빛을 만들어내리
만개의 땀방울로 한줄기 빛을 만들어내리
  • 양가을 기자
  • 승인 2007.05.26 2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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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게릭병. 극위축성측삭경화증(ALS)라 불리는 이 병에 걸리면 운동신경세포가 점차 소실되어 젓가락질조차 힘이 부치고 나중엔 몸을 휠체어나 침대에 의지해야하고 인공호흡기 없이는 숨쉬기도 힘들다. 그러나 점점 야위어가는 몸과 달리 신경과 의식은 그대로이다. 살아있는 감각과 의식을 굳은 몸 속에 가둔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무서운 병. 박승일(37세)씨는 루게릭병을 “가족을 피 말려 죽음까지 불러들이는 물귀신”이라고 표현했다. 

세상과의 끈, 그리고 그의 목소리

박승일씨는 2002년 6월 루게릭병을 진단받았다. 왼쪽어깨와 왼팔, 왼쪽다리의 근육마비가 심해지면서 자동차 운전을 중단해야 했다. 병을 진단 받은 후 같은 병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을 직접 방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방문하면서 ‘이렇게 소리 없이 투병하다 죽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병과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을 맞이할 수 없다고 생각한 박승일씨는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몸을 가눌 수 있을 때까지 언론을 통해 직접 뛰어가며 루게릭병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해 11월에 ‘박승일과 함께하는 ALS’카페(이하 ALS카페)를 개설하였다. 루게릭병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외국에 비해 터무니없이 열악한 의료조건을 개선시키기 위해서였다.

현재 박승일씨는 퀵클랜스(안구 마우스)를 이용해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퀵클랜스를 컴퓨터에 장착하여 눈동자의 움직임으로 마우스 커서를 움직이는 것이다. 눈동자의 움직임으로 박승일씨는 루게릭병 환자들의 대변인으로서 그들의 존재와 고통을 말하고 있었다.

끝없는 어둠의 터널 속에서 

박승일씨 어머니는 그새 눈물을 훔치고 계셨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들을 앞에 두고 어머니는 아들에게 원망의 목소리를 퍼붓기도 했단다. 산소마스크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이뤄져 쇼크로 이어진 적도 있었다. 다행히 전기충격으로 의식을 찾았지만 박승일씨와 가족에겐 모두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렇듯 언제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지 모르는 루게릭병 환자는 항시 간병인이 옆에 있어줘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들 중 어느 누구도 경제활동을 할 수 없다. 한 달에 500만원씩 하는 간병비를 감당하기가 점차 벅차지고, 환자는 환자대로 가족은 가족대로 힘겨운 싸움이 시작된다. 올해 초에는 그나마 지급되었던 간병비 20만원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 지급 대상을 영세민으로 한정지었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의 지원은 거의 없다시피 한 실정이다. 박승일씨 어머니는 “중산층 가족을 영세민으로 만들어 놓고 영세민을 지원하겠다니…”라며 정부의 탁상공론 정책에 울분을 토했다.

희망을 만들어낼 작은 손길을 모아 

ALS카페는 약 7천명의 누리꾼들과 함께 하고 있다. 현재 ALS카페에서는 루게릭병 환자들의 큰 소망인 루게릭병 요양소를 마련하기 위해 서명운동과 기부금 모금에 힘쓰고 있다. 서울뿐만 아니라 부산에서도 오프라인 서명운동을 하기도 했다. 또한 기부금을 모으기 위한 일환으로 사이버 장터를 개설해 사랑의 바자회를 진행 중이다. 서로의 작은 관심과 실천으로 루게릭병 환자들에 더 나은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모인 회원들은 모두 자신의 자발적인 참여로 활동 중이다.

ALS카페에서 ‘수원초보아짐’이란 닉네임으로 활동중인 김애진(31세, 수원)씨는 “대부분의 회원은 매스컴을 통해 승일씨의 사연을 접하고 스스로 찾아 온 경우가 많아요. 저도 그렇고요”라고 말했다. 처음 매스컴에서 박승일씨를 접했을 때 한 두번 보고 지나쳤지만 저 사람은 무엇 때문에 저렇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 한 번 뒤돌아보게 되었단다. 그리고 이 작은 관심의 출발이 5년 동안 박승일씨와 함께 루게릭병을 홍보하는 데 일조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ALS카페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김애진씨는 “우리는 승일씨와 함께 루게릭병을 홍보하는 일을 해요. 한두푼 모은 기금을 루게릭협회로 보내죠. 하지만 정확하게 쓰이는 용도를 저희도 잘 몰라요”라며 많은 사람이 기부에 동참을 하고 있지만 기금사용의 투명성과 세금혜택 등을 보장할 수 없어 아쉬운 점이 많다고 전했다.

앞으로의 ALS카페의 계획은 사단법인으로 인정을 받고 루게릭병 환자들을 위한 요양소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현재 5만명을 목표로 서명운동이 진행 중이며 기존 모금액 1억3천만원을 기반으로 모금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사단법인이 된다면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고 개인기부를 하는 사람들에게 세금혜택을 줄 수 있어 더 많은 참여와 관심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히 희망을 말한다. 그리고 말해야 한다. 박승일씨와 그의 가족이 살아가는 이유는 희망 과 희망이 만들어낼 기적이 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수많은 기금과 서명의 손길이 희망을 꿈꾸고 기적을 실현해낼 것이다. 지금 이 순간, 그 꿈을 만드는 데 우리가 동참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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