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미러]동방예의지국이 별건가
[백미러]동방예의지국이 별건가
  • 박선미 기자
  • 승인 2007.05.26 20: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며칠 전, 마을버스 안에서의 일이다. 나이가 지긋하신 한 할아버지가 “이 모양 이 꼴이니 나라가 잘 굴러가겠어? 다 썩었어. 썩었어”라며 한탄을 하고 있었고, 서 있는 할아버지 앞에는 얼굴이 홍당무마냥 빨개진 채 안절부절하는 여학생이 앉아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학생이 할아버지에게 자리 양보를 하지 않았던 것. 역으로 가는 10여분 동안 ‘요즘 것들은 예의도 모른다는’ 둥, ‘그러니 나라가 썩는다’는 둥, 할아버지의 한탄은 계속되었고 학생은 여전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로 애꿎은 핸드폰만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할아버지의 행동은 오히려 ‘예의 없는 젊은이들에 대한 일침’이라기보다는 ‘자리에 그렇게나 앉고 싶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나쳤다. 오죽했으면, 그 자리에 앉는 바람에 온갖 잔소리를 들어야 했던 그 학생이 애처로워 보였을까.

만약, 그 당시 할아버지가 학생에게 잔소리를 퍼붓는 대신 학생에게 양해를 구했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당사자는 물론이거니와 그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기분도 그렇게 씁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할아버지의 행동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우리는 한번쯤 버스에서 혹은 지하철에서 짐이 가득한 노인을 앞에 두고 꿋꿋이 자리에 앉아있는 젊은이들을 본적이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장유유서’를 들먹이며 나이 많은 사람들에 대한 공경은 당연한 듯 강요하면서 정작 자신보다 나이어린 사람들에 대한 예의는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문제가 있지 않을까. 어쨌든 ‘예의’라는 것은 노인과 아이 간에 지켜야 하는 것에 앞서 ‘사람’과 ‘사람’간에 지켜야 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누구나 한번쯤 발을 밟았는데도 사과 한 마디 하지 않고 ‘총총총’ 사라지는 가해자의 뒷모습을 볼 때 어김없이 치밀어 오르는 화, 혹은 실수로 물을 엎질러 상대방에게 사과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짜증 섞인 반응이 돌아왔을 때의 당황스러움을 경험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때 얼얼한 발과 당황스러운 마음에 가장 큰 위안이 되는 것은 ‘미안해요’와 ‘괜찮아요’라는 상대방의 대답이다. 말은 ‘진짜’ 천 냥 빚을 갚는다. 만약 우리 모두가 ‘미안해요’와 ‘괜찮아요’라는 말 한마디로 웃으며 지나칠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그거야말로 ‘예의지국’이 아닐까.

 동방예의지국이든 뭐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타이틀을 만드는 것은 대한민국 구성원, 우리니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도봉구 삼양로144길 33 덕성여자대학교 도서관 402호 덕성여대신문사
  • 대표전화 : 02-901-8551, 8558
  • 청소년보호책임자 : 고유미
  • 법인명 : 덕성여자대학교
  • 제호 : 덕성여대신문
  • 발행인 : 김건희
  • 주간 : 조연성
  • 편집인 : 고유미
  • 메일 : press@duksung.ac.kr
  • 덕성여대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덕성여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duksung.ac.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