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터뷰-안중근은 행동파이기 이전에 사상가.
人터뷰-안중근은 행동파이기 이전에 사상가.
  • 김민지 기자
  • 승인 2007.09.08 2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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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권(사학)교수


 

△ 국내에 안중근의사 연구자는 약 5명이라고 들었다. 어떻게 안중근의사 연구를 하게 되었는가?

안중근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것이 1909년이니 2007년 지금에 이르기까지 근 10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이런 시점에 안중근의사에 대한 연구를 돌아봤으나 연구자와 자료가 많지 않았다. 역사학자로서 책임감을 느껴 안중근의사 연구에 참여하게 되었다.


 

 

△ '안중근의 재발견'이라는 견해가 있는데 어떤 의미에서 재발견인가?

많은 사람들이 이토 히로부미 저격사건만을 들추며 안중근 의사가 ‘행동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이 무언가 의미 있는 행동을 할 때는 그에 합당한 생각이 있지 않겠는가. 바로 그 점에 주목했다. 생각이 없는 행동은 계속 이어질 수 없다는 전재 하에 사상가로서의 안중근을 부각시키고 싶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안중근의사가 독립운동가지만 일본에서는 테러리스트란다. 단지 우리나라뿐 아니라 모두가 정당하다고 생각할 만한 그의 행동이 지닌 사상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싶었다.


△ 구체적으로 어떤 연구를 하는가?

물론 사상가로서의 안중근의사에 대한 연구가 여태껏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기존 연구는 대부분 그의 ‘동양평화론’이 중심이었다. 이번 연구에서 최초로 안중근의사가 공판을 받으면서 법정에서 했던 ‘공판투쟁’부분을 본격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했다. 이 ‘공판투쟁’을 연구함으로서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하였고 또 그 행동의 근거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안중근의사는 32세이던 1910년 2월 7부터~12일까지 관동도독부 뤼순 법원에서 열린 여섯 차례의 공판에서 이토 히로부미의 죄악과 자신에 거사의 정당성을 당당하게 진술했다.)


△ 안중근의사의 연구는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 예정인가?

안중근의사로 인터넷 검색을 하면 정부의 안중근의사 유해발굴에 관련된 기사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가본 유해발굴 장소에는 벌써 아파트가 들어서 유해발굴을 할 여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정작 필요한 부분에 들어가야 할 인력을 쓸모없는 곳에 사용하는 ‘헛수고’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는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 좀 더 본질적이고 장기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 안중근의사의 자료가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자료를 모아 ‘안중근 자료집(전집)’을 출판 하려 한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제대로 된 자료집 하나 없다는 점은 부끄러운 일이다. 또한 학생들이 보는 위인전 속 안중근의사에 대한 서술이 미흡하다면 보충하고 잘못된 점이 있다면 제대로 고쳐 안중근의사의 가치를 알리는 일 또한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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