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칼럼] 내 방황은 행운을 가져왔다
[교수칼럼] 내 방황은 행운을 가져왔다
  • 허집(통계) 교수
  • 승인 2007.09.29 1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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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이란 단어를 써 놓고 내게 어떤 방황이 있었는지 지난 시간을 돌아보았다. 자취를 하면서 힘들어 했던 고등학생 때의 방황, 확고히 결정하지 못한 나의 진로에 대해 불안해 했던 대학생 때의 방황 등이 머리 속을 스쳐갔다. 하지만 대학원 시절에 내가 전공한 통계학에서 세부 전공 선택을 두고 겪었던 것만큼 심각하고 중요했던 방황(정확히 표현하자면 갈등이 더 어울릴 것 같다)은 없었던 것 같다.


 

학부 과정을 마치고 대학원 석사과정에 진학한 목적은 뚜렷했다. 석사과정을 마친 후 남들은 이미 끝내 놓은 군복무를 해결하고 동시에 내 삶의 터전이 될 수 있는 멋진 직장을 가지는 것이 그것이었다. 학문에 뜻이 있었다기보다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고 풀어나가는 수단으로 대학원을 선택했던 셈이다. 대학원에 진학한 목적이 뚜렷했기 때문에 석사과정 입학 후 1년 뒤 결정하는 세부 전공의 선택은 나에게 갈등과 고민을 안겨 주지 않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일반적으로 통계학의 세부 전공은 크게 이론과 응용으로 나누어지는데, 나의 진학의 목적에 부합하는 응용 분야를 선택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입학 후 1년 동안 여러 강의를 들으면서 조금씩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론 분야에서 우러나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고 그 강의를 담당하시는 교수님의 준비된 강의뿐만 아니라, 현재 배우고 있는 작은 부분으로 통계학 전체를 연관시켜 설명하시는 것을 들을 때마다 나의 확고한 진학 목적은 흔들리면서 이론 분야의 매력에 이끌려 심도 있는 이론 분야를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 버린 것이다.

어느 학문이나 그렇지만, 통계학에서도 이론은 응용에 비해 현실과의 괴리가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고 이런 이유로 해서 이론 분야를 선택한 사람들의 최고 목표는 박사과정에 진학하여 학자로서 대학의 강단에 서는 것이 될 수밖에 없었다.


여러 선배들이나 교수님들과 의논해 보아도 미래에 대한 불투명한 전망은 나의 방황을 쉽게 끝내게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이런 갈등과 고민이 커져간다는 것은 이미 내 마음 속에 결론이 내려져 있었던 것 같다. 후에 나의 지도교수님이 되셨던 그 분이 평소에 자주하시는, “자기가 연구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아름답다고 느낄 때 그 희열은 어떤 것하고도 바꿀 수가 없지”라는 그 말씀을 머리 속에서 지울 수 없었고, 결국 과감히 이론 분야를 선택하여 박사과정 진학을 결정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그 당시 지도교수께서 연구하셨고 그래서 내가 선택해서 공부하던 분야가 국내·외적으로 새로운 관심을 받으면서 개척되고 있던 분야였던 덕분에 적당한 시기에 강단에 서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고, 그 대학이 지금의 우리 대학이다. 내가 진심으로 마음 깊이 바라는 일을 확인해 가는 과정에서의 방황이 결국은 나에게 행운을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


우리 학생들이 나에게 진로를 상담하러 올 때 나는 자신 있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겠지만, 이미 너는 네가 무엇을 할 건지 결정했을 것이다. 내가 그것을 확인시켜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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