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남자다, 그런데 전업주부다
난 남자다, 그런데 전업주부다
  • 박시령 기자
  • 승인 2007.10.27 1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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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에서 나를 만나다]전업주부 오성근(42)씨

오전 6시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오늘도 아침 식사 준비로 하루가 시작된다. 사랑하는 가족을 생각하며 맛있는 식사를 차린다. 출근준비와 등교준비를 마친 배우자와 딸을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와 청소를 하거나 차를 마시며 책을 읽는다. 학교에서 돌아온 딸의 손을 잡고 장을 보러 다녀온다. 온 가족이 집에 모이면 맛있게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며 하루의 생활을 나누다 보면 어느새 잠 잘 시간이다.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주부의 하루 일과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이 주부는 어딘지 모르게 좀 남다르다. 어라? 남자잖아?

9년차 고참주부, 주특기는 친환경 음식
그렇다. 오성근 씨(42)는 남자다. 그런데 주부다. 그것도 <매일 아침 밥상 차리는 남자> <Hello! 아빠 육아>라는 책까지 펴낸 9년차 고참 주부다. 지난 99년 출산 후에도 계속 직장에 다니고 싶다는 아내 이정희 씨의 말에 자연스럽게 살림과 육아를 맡게 되었단다.

“주위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바라 볼 때도 있습니다. 그냥 그런 시선은 무시하면 그만이죠. 하지만 부모님의 시선은 그럴 수가 없어요. 제 부모님은 못난 아들이 잘난 며느리의 밥을 얻어먹는다고 속상해 하셨고, 장인장모님은 귀한 딸 데려다가 일시키고, 저는 놀고먹는다고 했었죠. 그래서 더 노력했죠”라고 말하는 그는 몸이 파김치가 되어도 신문을 읽어 내려갔고, 환경련, 민예총, 동화읽는어른모임 등 각종 활동도 열심히 하며 깨어있는 주부가 되려고 노력했다. 

9년차 주부인 그는 음식을 주특기로 꼽았다. “나만의 노하우라···. 친환경 음식이에요. 요즘이야 혼합잡곡이 흔하지만 저는 예전부터 현미에 일일이 구입한 7곡식을 섞어 밥을 지었습니다. 주부로서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 연구하고 노력해왔죠.”

이 남자 주부의 가족사랑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쑥, 매실, 아카시아꽃, 미나리 등 제철 재료를 효소로 만들어 가족을 위한 건강음료를 만들기도 한단다. 이 쯤 되면 만점짜리 주부다.

주부 생활 힘들 때도 있다
오씨네 집 수입은 대부분 아내 ‘정희 씨’(오성근 씨 부부는 서로에게 경어를 사용한다)가 담당하고 있다. 오씨는 인세와 강의료, 원고료 등으로 딸 다향이의 과자값이나 보태는 정도란다. 물론 넉넉한 생활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가족은 늘 즐겁고 행복하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올해처럼 전업주부가 된 것에 대해 자괴감을 느꼈던 적은 없다고 털어놓는다. 오씨 가족은 지난해 비교적 덜 오염된 산과 바다가 있고, 신과 전설이 살아있으며 풍광이 좋은 제주도로 이사 왔다. 그러나 오씨는 이 지역의 특수한 괸당문화(혈연, 지연, 학연)에 질려버렸다고 말했다.

“자연환경은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제주도의 지방색과 외부세력에 대한 텃세는 참 심한 것 같아요. 휴일도 반납한 채 매일 늦게까지 일하고 동네 행사에 매번 동원되는 정희 씨가 가장 많이 힘들어합니다. 정희 씨는 일을 그만둘까 하고 말했다가도 가족의 생계를 제게 올인 할 수 없었는지 그런 생각을 접었더군요”라고 말하는 오성근 씨. 그런 정희 씨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내가 살림을 한 게 잘 한 일일까 라는 생각에 자괴감을 많이 느끼고 있는 요즘이란다. 

남자주부들 함께 수다 떨지 않을래요? 
그래도 그는 내심 남성 전업주부가 되길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9년 전만 해도 남성 주부라는 개념은 없었죠. 남자가 살림하고 아이 돌보면 이단아였죠. 하지만 최근 통계청 조사를 보니까 육아나 가사활동을 하는 남성 전업주부가 15만 명을 돌파했다고 하더라고요. 주부까지는 아니어도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려고 노력하는 남성들도 많아졌어요. 이런 성고정역할과 남성우월주의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바람직한 현상이 나타나는데 제가 나름 적지 않은 역할을 해 왔다고 생각해요.”

이내 오씨는 “그런데 15만 명이나 되는 남자 주부들 중 ‘나 살림 한다’며 내놓고 하는 사람은 많지가 않아요. 나름의 소신이나 철학이 없기도 하거니와 이웃들의 시선, 특히 부모나 친구, 동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기 때문인 것 같네요. 이들과 살림 정보도 공유하고 수다도 떨며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홈페이지를 만드는 게 제 소망입니다”라며 덧붙였다.

이만하면 보통 평범한 주부는 아닌 듯싶다. 우리사회에 새로운 남성상을 제시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싶어 넌지시 말을 건네 보았다. 돌아오는 그의 반응은 의외로 수수하다.

 “세상에 남자 일, 여자 일이 따로 있겠습니까. 그냥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즐기면서 하면 되는 것 같아요. 남자 여자 나누기 전에 똑같은 인간인걸요.”

그래 남자 여자 따지지 않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면 된 거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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