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칼럼] 나의 방황은 지름길이 전부가 아님을 알려주었다
[교수칼럼] 나의 방황은 지름길이 전부가 아님을 알려주었다
  • 정춘식(약학)교수
  • 승인 2007.10.27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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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길, 이제 거의 다 왔다는 마음에 긴장을 풀고 식구들과 차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인터체인지를 지나쳤다. 한참을 가서야 겨우 유턴을 할 수 있어 원래 예정보다 한 시간 이상이 늦어졌다. 길을 다시 돌아가는 내내, 식구들은 나에게 내비게이션을 장만할 것을 권했다. 내비게이션이 있으면 길을 잘못 들어 당황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내비게이션이 있다면 늘 지름길로만 갈 수 있을까?


돌이켜 보면 나의 길은 지름길이 아니었다. 재수 없이 입학하여 학부를 졸업하고, 결혼을 함과 동시에 석사 2년을 마칠 때까지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처럼 빨랐다. 그러나 아이 둘을 낳고 키우면서 엄마 노릇, 며느리 노릇, 아내 노릇에 공부까지 한다는 것은 욕심일 뿐이었다. 그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해 늘 언젠가는 다시 공부를 시작하리라는 마음으로 생활을 하였지만, 결국 못다 한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까지는 10년이 걸렸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박사과정을 밟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꿈을 이루어 간다는 기쁨으로 버틸 수 있었다.


가장 빠른 길은 아니었지만 돌아온 그 시간을 나는 ‘길에서 허비해 버린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길을 돌아갔을 뿐이다. 7시간의 부산가는 길은 오히려 식구들과 마음속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지름길로 가는 것이 빠르기는 하지만, 길을 돌아야만 볼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여행을 하면서 고속도로로 가면 차만 보고 달리지만, 다른 길을 이용하면 주변 경치를 비교적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재수 없이 입학하여 4년 만에 학부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에 성공하는 ‘남들이 얘기하는 지름길’을 가는 학생들도 있겠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길을 돌아가는 학생들이 더 많을 것이다. 그리고 학교 밖을 나가 세상을 살다보면 길을 돌아가는 일이 더 많아질 것이다. 남들보다 조금 늦는다고 하여 초조해 하거나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길을 돌아가야만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조금 늦더라도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아무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면 내가 나를 기다려 주면 된다. 돌아가는 길엔, 지름길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것들을 얻을 것이고 그것들은 살아가는 데 있어서 밑거름이 되어 줄 것이다.


순간의 실수로 길을 놓쳤다고 하여도 돌아 다시 길을 가면 그만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비게이션을 따라 길을 가는데 나만 혼자 다른 길을 간다면 그것이 나의 길인 것이다. 목적지를 향하는 것만 잊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도착하게 되는 것일 뿐 문제될 것은 없다. 빠르게 움직이는 세상은 지름길을 강요한다. 그러나 교수이기 이전에 우리 학생들보다 먼저 길을 가고 있는 학교 선배, 인생 선배로서 ‘원하든, 원치 않든 길을 돌아가는 경우라고 하여도 목적지를 향하여 자신의 길을 가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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