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교육 열풍, 이대로 좋은가
경제교육 열풍, 이대로 좋은가
  • 강수돌(고려대 교수, 조치원 신안1리 이장)
  • 승인 2007.10.2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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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교육열’로 악명이 높은 한국 사회가 경제 교육 열풍에 휩싸이고 있다. 2000년, IMF 사태 직후 한국 사회가 일종의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져 있을 때에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이 나와 “나도 얼마든지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말로 맥이 빠져있던 어른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더니 이듬해엔 <12살에 부자가 된 키라>가 나와 청소년이나 아이들 사이에서 ‘부자 되기’ 열풍을 거세게 일으켰다.

그 책이 나오자마자 12살에 1천만 원을 모았다는 한국판 똑순이 이야기가 세상에 널리 퍼지더니, 심지어 필요에 의해 용돈을 받아도 학용품이나 책을 사는 대신 밥도 굶어가며 저금하려 드는 아이들이 생겨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 2002년 초 어느 신용카드 회사의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 카피는 좌절감과 공허감에 빠져 있던 사람들에게 이상야릇한 흥분을 불러 일으켰다. 심지어는 유명 탤런트가 텔레비전에 나와 “부자 되세요!”라고 인사말을 하더니 곧 설 명절이나 추석 명절에도 쓰이는 범국민적 인사말이 되었다. 심지어 자장면집 나무젓가락 종이 포장지에 “맛있게 드시고 부자 되세요”란 글귀가 적혀 나오니, 가히 광기라 할 만하다.

특히 주식이나 부동산 투기를 통한 한탕주의식 ‘떼돈 벌기’에 성공한 일부 ‘영악한’ 사람들의 성공담은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들의 ‘성실한 사람이 잘 사는 사회’라는 소망적 가치관을 산산조각내고 말았다. 이런 식의 엉터리 부자, 졸부를 향한 ‘집단 광기’를 이제는 멈추어야 한다는 <미친 돈 바람을 멈춰라> 같은 책이 2004년에 나왔으나 사람들은 결코 ‘돈 되는’ 이야기가 아니기에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 다음해에는 <마시멜로 이야기>와 같은 ‘내일 성공을 하려면 오늘 좀 참아라’라는, ‘익히 듣던’ 이야기를 매우 그럴 듯한 필치로 구사한 좀 더 은밀한 형태의 성공학, 부자학이 인기를 끌었다. 다행히 돈의 경제가 아니라 삶의 경제를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지구를 구하는 경제책>이 생각 있는 어른들과 아이들 사이에서 꾸준히 토론되는 편이다. 그러나 여전히 삶이 아닌 돈에 대한 집단 광기는 세다.

최근에는 주식, 외환, 포트폴리오 투자 등 재테크나 그 외 여러 돈 불리는 방법을 가르치는 ‘어린이 경제 교육 캠프’ 같은 것이 다양하게 조직되면서 돈벌이 교육이 더욱 ‘체계화’하고 있다. 심지어 올해 9월에는 대학 교수, 증권사 간부직원, 민간경제 연구소 책임자 등이 중심이 되는 ‘부자학 연구학회’가 생겼다. 대학생들도 부자 되기 위한 비법을 연구하기 위해 30개 대학이 뭉쳐 ‘부자학 연합동아리’를 결성했다. 또 각 대학의 ‘부자학’ 특강에는 수강생들이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니, ‘진리, 정의, 자유, 봉사, 사랑’이라는 대학의 교훈이 무색해진다.

한국 사회를 온통 돈과 부자 열풍의 ‘집단 광기’로 몰고 가는 이런 식의 경제교육, 이것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더욱 황폐화하는 일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20대 80 사회’라고 하는 사회 양극화의 모순에 시달리고 있다. 국민의 20%만이 안정된 일자리와 생활을 영위하고 나머지 80%는 비정규직이나 실업자 등의 형태로 비인간화되어 가는 현상을 비꼬는 말이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판단해야 한다. 그 소수의 20%에 들기 위해 부자 되기, 돈벌이 경쟁을 더욱 가속화해 ‘20대 80 사회’를 넘어 ‘10대 90 사회’로 가는 것이 바람직한지, 아니면 모든 사회 구성원이 ‘더불어 소박하고 건강하게’ 사는 사회로 가는 것이 바람직한지 차분히 성찰해야 한다. 만약 후자가 옳다고 본다면, 그에 걸맞는 실천을 하나씩 해야 한다.

우선, 나라 정책이 앞서 이야기한 ‘집단 광기’를 묵인하거나 조장하지 않도록 변해야 한다. 예컨대 농촌을 희생시켜 수출만 많이 하면 된다며 각종 FTA를 강행하거나 석유나 건설 사업으로 돈벌이를 하고자 이라크 파병을 연장함으로써 미 제국주의에 협조한다거나 하는 정책을 중지해야 한다. 또, 가정에서는 돈벌이가 아니라 살림살이 패러다임을 아이들과 함께 실천해야 한다. ‘아나바다 운동(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기 운동)’이 작은 첫걸음될 것이다. 학교에서도 건강한 돈벌이와 건강한 소비에 대해 토론하고 실천해야 한다.

특히 어른들이 과시적 소비나 과중된 노동에 빠져 무한정 돈벌이에 매달리는 일을 지양하고 갈수록 돈이 많이 드는 주거․교육․의료 문제 등을 사회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진보적 사회 운동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우리와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많은 돈’이 아니라 ‘좋은 삶’이기 때문이다.


강수돌(고려대 교수, 조치원 신안1리 이장)

* 참고: 한국은행 어린이 경제 교육 10계명

1. 적당한 액수의 용돈을 정기적으로 줘라

2. 집안일을 도운 대가로 용돈을 주지 말라

3. 성적과 용돈을 연관시키지 말라

4. 가계부를 기록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용돈 기입장을 쓰게 하라

5. 생일잔치 예산을 알려 주고 자녀와 함께 계획을 세워라

6. 저축은 자신의 용돈으로 하게 하라

7. 저축은 돼지저금통에 하기보다 금융회사를 이용하게 하라

8. 충동과 과시, 모방 소비를 조기에 막아라

9. 자녀에게 미안한 마음을 물질적으로 보상하려 하지 말라

10. 물건의 소중함과 물자 절약의 중요성을 강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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