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림이 이 세상의 창문이 된다면, 난 행복하다
내 그림이 이 세상의 창문이 된다면, 난 행복하다
  • 김윤지 기자
  • 승인 2007.11.03 2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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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작품 두 점이 걸려 있다. 하나는 끊어질 듯 이어지면서 우리네 소박한 마을의 모습을 붓 끝에 담은 수묵화. 다른 하나는 역동적인 캐릭터를 거침없이 스프레이로 뿌려 낸 그래피티. 붓 끝과 스프레이. 아무리 생각해도 두 작품은 극 과 극이다. 그런데 작품에 대한 매력을 각각 묻자 ‘밑그림을 거치지 않고 담아내는 즉흥적인 느낌’이라고 같은 대답을 한다. 스프레이와 붓 끝, 같은 감성을 전하고 있는 것일까?

 

 

아침, 그의 화실을 찾았다. “왔어요!”라며 반기는 그의 뒤로 수많은 화첩과 현재 작업 중인 여러 느낌의 불상그림이 눈에 띤다. 30여곳의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풍경은 물론 마을에서 만난 정겨운 주민들의 얼굴과 삶의 이야기를 담은 『그리운 이웃은 마을에 산다』의 저자 이호신 화가를 만났다. 오랫동안 우리의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화폭에 담아온 그와 담백한 한국화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우리를 넘어 세계를 담은 화첩

『그리운 이웃은 마을에 산다』의 30번째 마을인 경북 영해 칠보산 인량·괴시마을은 이호신 화가의 고향이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서울에 올라오기 전까지 유년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다. 무엇보다도 그림을 좋아했던 그는 혼자서 그림을 그리기를 참 좋아했다. 이렇게 그는 유년시절부터 마음속에 품어보던 화가의 꿈을 이루었다. “사람마다 체질이 있다고 하잖아. 자연과 함께하는 것, 내적인 만족추구를 하는 것. 그게 나랑 잘 맞아”라며 한국화가를 업으로 삼은 이유를 말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미술에 대한 심오한 생각이 없어도 서양화와 우리의 한국화가 주는 차이는 본능적으로 느낄 것이다. 캔버스를 꽉 메우는 진한 화려함 보다는 물 흐르듯 붓을 따라 꾸밈없이 그려진 산과 강 그리고 자연스런 여백의 소박함. 그것이 한국화의 매력이 아닐까?


화가의 화첩을 살펴보았다. 수십종의 야생화가 피어 있었고 잠자리의 그물모양 날개까지 섬세하게 그려 금방이라도 화첩에서 날아오를 것 같았다. “길거리에 앉아서 그냥 그리는 거야. 무언가를 잔뜩 차려놓지 않아도 붓이랑 화첩만 있으면 충분하지”라고 말하며 그가 보여준 화첩 속 그림들에서는 생동감이 느껴졌다. 한국화는 정확도를 추구하지 않는다. 화가의 말처럼 ‘느낌 그대로’를 살리고 대상과의 교감을 통해 작품으로 옮기는 인간미가 한국화의 자랑이다.

   
▲ 이호신 화가의 작품

한국화에 담을 수 있는 것은 비단 우리네 모습 뿐 만이 아니다. 화가는 탄자니아 주재 한국대사관 초청으로 아프리카를 방문했던 50여일의 여정을 화첩에 담았다. 수묵화로 은은하게 그려진 탄자니아의 이국적인 풍경과 마사이족의 모습은 묘한 느낌을 전해준다. 한국화도 서양의 그림에 결코 뒤지지 않음을 느끼게 되었다. 화가는 한국화와 함께한 20년의 답사 여정을 회고하며 “답사를 하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우리 전통과 문화가 초라하지 않다는 거야. 우리문화를 다시 보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되었지”라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전통문화의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새로운 줄기를 올려서 꽃을 피우겠다는 굳은 마음을 표현했다.


그림은 정직하다. 붓 끝도 그것을 안다.

화가는 대학에서 3년 정도 학생들을 가르쳤다. 젊은 학도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냐는 물음에 “요즘 학생들은 서양의 화가나 작품은 잘 알지만 동양의 그것들은 잘 알지 못하더라고.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이 컸지”라고 말했다. 그래서 화가는 학생들에게 동양화가에 관련된 책을 추천해주고 같이 토론을 하며 수업을 진행했다. 또한 학생들에게 항상 화첩을 가지고 다닐 것을 조언했다. 그림을 생활 속으로 불러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닌 인간을 위한 예술을 해야 해. 자신이 그 대상을 사랑하고 관심을 갖는 만큼 그릴 수 있어. 그림은 참 정직하니까.” 진정으로 애정이 담긴 그림을 그릴 때 비로소 붓 끝의 움직임이 자연스럽다는 것이 화가의 생각이었다.  


화가의 앞으로의 계획은 다양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현재 그는 수묵화가 아닌 채색화로 여러 종류의 불상을 그리는 시도를 하고 있다. 한국화가라는 위치에서 계속 맴돌기 보다는 새로운 것을 계속 시도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특히 앞으로의 작품에서는 환경문제를 다루고 싶다고 한다. 도시화로 인해 훼손되는 우리 환경을 작품화해서 사람들에게 욕심을 버리고 소박해지길 바라는 화가의 마음을 전할 생각이다.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가 그려진 그림이 메마른 정서를 적셔주고 잃어버린 아름다움을 찾게 해주는 그때를 우리는 곧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난 내 그림이 창문 같은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 답답할 때 창문을 열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잖아. 그렇게 된다면 난 행복할 것 같아. 내 그림을 통해 사람들이 감상이 아닌 감동을 받았으면 하는 것, 그것이 내 바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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