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올해도 이렇게 저물어간다. 추운날씨에도 나무는 단풍의 붉은 옷을 입은 채 물결치고 있다. 수많은 장소에서 붉은 물결이 일렁이는데 그 중 종로의 붉은 물결은 유달리 더 넓게 더 높게 타오르는 것만 같다. 2백만 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하여 1천회가 넘는 집회가 열렸고 5만명 가량의 수많은 사상자를 냈던 민족운동인 3·1 운동, 그 날의 기억을 결코 잊을 수 없다는 듯이.
나는 등굣길에 가끔 버스를 이용한다. 지하철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만 많이 걷지 않아 편하고, 창밖을 보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몸이 피곤하거나 고민거리가 있을 땐 버스를 찾게된다. 그 중에서도 특히 161번 버스는 꽤나 매력적인 노선을
가지고 있다. ‘연세대 - 이화여대후문 - 서대문 - 종로 - 대학로 - 한성대입구 - 성신여대입구 - 미아삼거리 - 수유’를 지나는 이 버스의
노선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거리는 ‘서대문과 종로’일대다. 이 거리를 지나갈 때면 창밖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이 거리를 지날 때면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독립문을 비롯하여 입구부터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는 서울 역사박물관, 종로거리
한가운데 멋지게 자리한 보신각을 넋 놓고 바라보기 일쑤다. 언제 한번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와 함께 161번 버스를 탄 적이 있었는데 친구는
“와~멋진 곳을 다 들르네. 마치 문화 관광버스를 탄 거 같아”라고 말했다. 나 역시 이런 ‘문화버스’를 탈 때마다 언제 한번 종로에서 내려서
독립문과 보신각 등을 가까이서 봐야겠다고 다짐했었지만 그건 언제나 생각뿐이었다. 등굣길엔 수업이 늦을까 급한 마음에 지나쳤고 하굣길엔 피곤한
마음에 지나쳐 버렸다.
그러다 며칠 전 드디어 용기를 내었다. ‘서대문-종로’ 정류장에 내려 눈앞에 당당하게 서있는 보신각을 바라본 후 잠시 고개를 숙여
묵념했다. 3월 1일, 시민들의 비장한 결의 섞인 만세 운동, 그 시작의 중심에 이 보신각이 있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지하철 1호선 종각역 4번 출구로 나오면 보이는 보신각 경내에는 ‘3·1운동 기념터’ 임을 알리는 표석이 그날의 만세 행렬을 증언하고 있었다.
주위를 잘 둘러보면 보신각 주변에는 또 다른 표석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바로 ‘한성정부 선포터’라고 새겨진 표석인데, 만세 운동이 있은 뒤
보신각 앞에서 한성임시정부의 탄생을 선포하였던 자리라는 의미다. 시퍼렇게 날이 선 검 위에 있는 듯 삼엄했던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 민족의
대단한 기개를 보여준 역사의 장소가 바로 이 보신각이었던 것이다.
나는 고개를 들어 다시 한 번 보신각을 바라보았다. 붉은 단풍 물결에 둘러싸인 보신각은 따뜻하고 편안했다. 그러나 그 깊은 속내는
여전히 뜨겁고 역동적이었다.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꼭 다시 이곳을 찾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