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가야금 타는 소리가 궁금해졌다. 톡톡 튀는 그녀의 목소리는 가야금을 향한, 음악을 향한 그녀의 삶에 귀 기울이게 만들었다. 퓨전국악그룹 'The林'에서 가야금을 맡고 있는 정혜심(32) 씨에게 가야금은 운명이었다. 마음이 마음을 만나 나누는 그 길목에서 말이다.
가야금을 사랑하는 여자
어릴 적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정혜심씨는 어르신들 앞에서 종종 노래를 부르곤 했다. 쌍둥이 자매였던 정혜심씨는 유독 귀여움을 받았고 주위 사람들의 권유로 병창을 배우기도 했다. "모임자리에 나가 노래 부르면 할머니들이 많이 좋아하세요. 잘한다는 칭찬 들으니 저도 좋았죠. 그때 제대로 한 번 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죠."
국립국악고등학교에 입학하여 가야금을 전공으로 선택한 이후로 정혜심씨는 가야금 산조에 '푹' 빠져 살았다. "가야금으로 노는 걸 좋아했어요. 가야금 줄을 조율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었죠. 그래서 오히려 사춘기가 없었는지도 몰라요"라는 정혜심씨에게 가야금은 곧 길이었다.
정혜심씨는 원치 않은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지만 그곳에서 잊지 못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김병호류 산조를 고집했던 정혜심씨에게 교수님이 외부레슨 선생님을 소개시켜 주신 것이다. 레슨을 받기 위해 매번 부산에 내려갔지만 10분 만에 수업이 끝나버린 적이 허다했다. 이러한 수업방식에 불만을 갖기도 했고 힘들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배운지 1년이 지난 후 선생님이 가르쳐주고자 했던 것이 소리에 진심을 담는 법임을 깨닫게 되었다.
"선생님은 자기 인생에서 가장 슬펐던 기억을 저희와 나눴고 서로 울면서 배우기도 했어요. 어떻게 아무 감정 없이 슬픈 곡조의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느냐면서요." 이어 정혜심씨는 "선생님은 워낙 꼬장꼬장하신 분이셨고, 소리를 아끼셨던 분이셨어요. 제자들에게 아버지 같은 분이셨고요. 선생님 아래서 함께 배웠던 사람들도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어요"라며 그날들이 큰 배움의 시간이었다고 했다.
더 큰 음악을 향하여 한걸음 더
▲ 무대위에서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정혜심씨 | ||
“TV에서 워킹코리아라는 3명의 젊은이들이 거리에서 국악을 선보이며 세계여행을 하는 걸 본 적 있어요. 국악을 들은 외국인에게 ‘어떤 음악인 것 같냐’ 물으니 신랑각시의 사랑이야기 같다는 거에요. 그런데 그게 맞았거든요.” 정혜심씨는 모든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음악을 하게 된 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정혜심씨에게 'The林'은 새로운 세상이었다. 또한 자신을 발전하게 하는 자극제였다. 다양한 시도를 통해 만들어진 무대는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다. 고리타분하고 조용하다고 생각되는 국악은 사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극을 도입해 컨셉을 갖고 연주했던 콘서트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충분했다.
정혜심씨는 "이번 콘서트는 다 같이 서서 뛰고, 그야말로 함께 하는 콘서트였어요. 저희 무대는 역동감 그 자체에요"라며 관객과 하나가 되는 공연을 위해 손수 마이크 고정대를 제작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언제나 꿈을 꾸는 소녀
정혜심씨는 자신의 끼를 살려 봉사공연을 다니기도 한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독거노인을 위한 봉사활동에 뛰어들었다. "많은 친구들은 할머니들과 이야기하는 걸 꺼려하고 어려워 하던데 전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시간이 많아서인지 할머니들과 이야기하고 옛날 이야기 듣는 게 좋더라고요"라는 정혜심씨는 봉사활동도 역시 배움의 연장선이었다고 했다.
"진도 욕쟁이 할머니가 한 분 계셨어요. 할머니가 진도아리랑을 잘 부른다는 걸 듣고선 할머니께 노래를 불러 달라 조른 적이 있었죠. 할머니가 아리랑을 부르시는데 정말 처음 들어보는 진도 아리랑이던거에요. 그날 당장 할머니의 진도아리랑을 배웠죠."
대학시절 정혜심씨의 꿈은 '대학가요제'에 출전하는 것이었다. 노래를 좋아했고 부르기도 잘했단다. "예전엔 내가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종종 했었는데 지금은 지금 나이에, 상황에 맞게 하고 싶은 일을 해보고 싶단 생각이 많이 들어요"라는 말하는 정혜심씨. 현재 사이버 대학 실용음악과에 입학해 작곡 공부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란한 기교보다 진실된 감정을 담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정혜심씨. “연주자의 성격에 따라 가야금 소리도 달라요. 사람들이 제 성격을 보고 타악 전공인 줄 알았다며 우스갯 소리도 해요"라며 웃는다. 왠지 그녀의 가야금 소리는 슬픔도 청아하게 담을 것 같다.
열정은 건너는 것이 아니라, 몸을 맡겨 흐르는 것이라는 어느 책의 한 구절처럼 그녀의 꿈과 열정도 자연스레 가야금을 타고 뜨겁게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