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칼럼] 나의 방황은 심연 위의 춤이었다
[교수칼럼] 나의 방황은 심연 위의 춤이었다
  • 이종득(스페인어)교수
  • 승인 2007.11.03 2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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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라치게 놀랐다. 아직도 나의 몸이 움찔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화기 줄을 뽑아놓고 두문불출한 지 2주, 죽음의 문턱에서도 나의 몸은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지난 10여 년은 긴 번민과 자학의 기간이었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기계적인 일상과 사회의 집단 광기에 분노를 터트린 것은 대학 2학년 때였다. 분명히 한국 사회는 어딘가를 향해 미친 듯이 질주하고 있었다. 나는, 질주하는 거대한 정자의 무리 떼에서 벗어나 역행하고 있는 한 마리의 정자였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를 향해 질주하고 있는가?


대학은 허구의 관념만이 지루하게 나열되는 케케묵은 박물관 같았다. 캠퍼스를 자욱하게 덮은 최루탄 연기와 더불어 나의 대학생활은 그저 그렇게 끝났다. 나는 아무 의미 없이 이 대지에 버려진, 한 마리의 털 없는 원숭이였을 뿐이었다. 이 당시 나는 실존주의와 시(詩)에 미쳐있었다. 철학과 수업을 기웃거렸고, 국문과 수업에 들어가 이방 민족이 겪는 따가운 시선을 즐기기도 했다.


사후의 이상세계가 나의 불안을 없애기에는 너무 조잡했고, 하늘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고고한 진리는 나를 유혹하지도 못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비장함을 실행하기에는 나의 의지가 약했고, 욕망을 버리기에는 나의 피가 너무 뜨거웠다. 철학은 보르헤스(Borges)의 말처럼 환상소설이었다. 미로 속의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해주었을 뿐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를 향해 질주하고 있는 한 마리의 정자인가?


한국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정말이지 한국 사회의 집단광기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부전공으로 했던 무역은 구석에 쳐박아 두고 새로운 세계를 선택했다. 시학(詩學)이었다. 앞서간 시인들의 궤적에서 어떤 탈출구의 흔적을 어렴풋이 보았기 때문이다. 나보다 더 처절하게 살다간 수많은 사람의 절규와 환희의 외침이 들렸다. 정자의 화려한 질주가 무지개로 피어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역주하는 정자의 푸념과 결연함만이 메아리처럼 소라고둥에 갇혀 있었다. 가끔은 난자와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하는 엄숙한 음성도 있었다. 그 목소리는 웅대했고, 천상에서 내려오는 나팔소리 같았다. 하지만, 반쪽과 또 다른 반쪽의 만남이 또 다른 ‘나’인 것을 아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불면의 밤과 번민, 이어지는 죽음의 나락에서 또 다른 ‘나’를 찾았던  것이다. 오랫동안 나를 지탱해온, 그러나 잊어왔던 나의 몸을! 그리고 그 생명력에 나는 전율했다. 생의 외경! 아프리카의 쉬바이쩌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광야를 헤매는 예수의 뒷모습을 발견했고, 왕궁을 떠난 부다의 희열을 느꼈다. 멕시코 북부의 사막지대를 질주하는 나를 발견했을 때는 아침 해가 찬연히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또다시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길을 걸으며 몇 마디 읊조리는 또 다른 나를 본다. “나는 현상이지만 실체인 거야. 나는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존재이지.” 이런 얼어 죽을! 아직도 선인들이 앞서 지나간 길을 걷고 있구나. 미로 속에서 내게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그럼, 삶은 무엇이지? 삶, 그건 “심연 위의 불안한 춤”이야. 이런 된장! 이 말조차도 벌써 누군가 오래전에 지껄여 버렸네.


그래도 나는 오늘 춤을 춘다, 나의 ‘막춤’을. 슬로우 슬-로우 퀵퀵. 어떤 춤을 추었는지는 묻지 마? 중생대 쥐라기에도 어떤 티라노사우루스가 그렇게 춤을 추었는지 모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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