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그녀의 삶을 읽다
신경숙, 그녀의 삶을 읽다
  • 김윤지 기자
  • 승인 2007.11.19 15: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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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회 작가와의 대화 초록 작가 신경숙

독자들의 시린 마음을 비춰주는 그녀의 문학이야기

내가 느끼는 문학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항상 의문점이 생겨요. 이렇게 말해도 저렇게 말해도 나중에 생각하면 ‘이게 아닌데…’라는 미련이 남더라고요. 문학, 그 시작은 독서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내가 책을 처음으로 읽게 되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바로 위의 오빠가 책을 빌려왔는데 그 안에는 마을에 없는 얘기들이 잔뜩 써져 있었어요.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이 많이 담겨져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더 읽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는데 그것이 내 독서의 시작인 것 같아요.


가장 인상깊게 읽은 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니 초등학교 4학년 때 읽은 ‘인어공주’가 떠올랐어요. 저는 시골에서 자라 바다를 한 번도 본적이 없었거든요. 정말로 인어공주의 세계는 환상이었죠. ‘저 곳은 어떤 곳이길래 인어공주는 자꾸 슬퍼할까?’ ‘왜 바다로 결국 돌아가지 않고 왕자를 칼로 찌르지도 않았을까?’하는 의문이 어린 마음 속에 있었어요. 슬프다는 감정 외에도 아름다운 것에 대한 환상, 내가 보지 못한 또 다른 세계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이 생겼어요. 그 간단한 동화책 한권이 나의 작았던 사고의 문을 더 나아갈 수 있도록 깨 준 것이라 생각해요.

고등학교 때 학교에 잘 나가지 않아 선생님께 장문의 반성문을 제출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반성문을 보시고 “소설가가 되어보는 것이 어때?”라며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공’과 계간지 한 권을 주셨어요. 고 2때 이해가 잘 가지 않았던 ‘난쏘공’을 대학생이 되어 다시 읽었을 때, 그 때의 사회와 대비되면서 제가 느낀 파장은 컸어요. 어떤 인간이라도 권리가 있고 그 인간의 어떤 마음이나 그런 것은 존엄의 대상이라는 것을 깨우쳤죠.


책이란 그런 것 같아요. 읽으면 읽을수록 나를 훨씬 충만하게 만들어 줘요. 그리고 작가가 하고자 했던 말보다 많은 말을 몸소 느끼는 것이라 생각해요. 유년시절 ‘인어공주’를 보고 가슴 아팠던 나를 떠올리며 ‘내 글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는 되지 말아야 겠다’고 다짐했어요. 조금만 관심을 거두면 아무것도 없이 흩어질 그들의 내면을 내 언어로 채워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참 행복한 ‘문학과 함께하는 삶’이겠죠.

△ 가장 애착을 가지는 작품이 무엇인가요? 아니면 특별히 사랑스런 등장인물이 있으신지요?
내가 가장 애착을 가지는 작품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앞으로 애착이 갈 작품을 써야겠다는 거겠죠(웃음). 작가한테 그 질문은 사실 우문이에요. 작가는 방금 자기가 쓴 작품, 끝 낸지 얼마 안 된 작품을 가장 좋아합니다. 아직 그 작품과 헤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머리 속에 온통 그 작품 생각뿐이죠. 나도 지금 겨울호 계간지에 작품 하나를 연재할 예정이어서 마무리 작업 중이에요. 그래서 지금은 제목도 정해지지 않은 그 작품이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죠. 얼마 전까지는 ‘리진’이였어요. 그 작품이 가장 최근에 나온 신작이였으니 헤어진 지 얼마 안됐죠.

 

△ 작품 속 대부분의 시간 배경이 작가님의 유년 시절이에요. 그 이후의 삶은 별로 읽어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나는 그 말에 동의하고 싶지 않아요. 내 유년시절이 등장하는 작품은 첫 번째, 두 번째 작품정도에요. 그러나 그 이후의 작품들도 그렇게 느꼈다면 내가 잘 못 쓴게 아닐까요(웃음). 소설 화자의 유년이 곧 나의 유년은 아니에요. 과거 시점의 얘기가 많다고 느끼는 것은 미래를 앞서 가려하기보다는 오늘에 비추어 과거를 작품화 하려는 제 소설쓰기 때문일 거에요. 제가 생각하는 소설은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동시대인들의 뒤를 잇는 것이지 앞에서 끌고 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게 보면 세상에 남아있는 가장 아날로그적인 것이 소설이 아닌가 싶어요.

 

△ ‘딸기밭’이라는 작품에서 ‘유’라는 인물에 대한 다양한 의미가 편중되어 있다고 생각하는데 ‘유’라는 인물을 만들 때 작가님은 어떤 생각이셨는지 궁금합니다.
‘딸기밭’이라는 작품을 얘기할 때는 망설여져요. 사실 그 작품을 쓸 때는 주변인들로부터 아무리 주인공들이 깊은 연애를 해도 왜 남녀간의 접촉이 없냐는 질문을 너무 많이 받았어요. 실제로 제 작품에는 손을 잡는다든지 머리를 쓰다듬는다든지의 접촉이 많은데, 단지 섹스어필의 접촉이 없어서 그런 반응들을 보였나봐요.

이런 주변 반응덕에 나온 작품이 ‘딸기밭’이에요. ‘유’는 굉장히 신비한 인물이죠. ‘유’는 내 다른 작품에서 나오는 여성들의 자매애가 아닌 동성애에 초점이 맞춰진 인물이에요. 80년대라는 암울했던 그 상황의 주인공들에게 동등한 역할 배분을 해놓은 것도 ‘딸기밭’만의 특징이죠. 하지만 제가 말한 것은 잊어버리세요. 작가의 의도를 다 파악해버리거나 평론가적 잣대를 기준으로 삼으려고 하면 자신의 머릿속에 소설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을 거예요. 자신만의 색깔로 작품에 접근하도록 하세요.

 

△ 물론 현재 소설가로서 만족을 하실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시 태어나도 소설가이고 싶으십니까?
다시 태어나면 소설가는 되지 않을 거에요. 지금 현재 내 생에서 쓰고 싶은 글을 다 쓰고 가려고요. 20대는 가장 중요한 시기입니다. 나의 20대는 너무 건전하여 지루했어요. 혼자서 낭비한 20대를 후회하고 있어요. 전 다시 태어나면 책상 앞에 앉는 것이 아닌 몸을 움직이는 일을 하고 싶어요. 조각가나 목수처럼 내 몸을 움직여 작품을 탄생시킨다면 그 또한 더할 나위 없이 뿌듯할 것 같지 않나요?

 

△ 글을 쓰다가 생각이 나지 않으면 어떻게 해소하세요?
혼자서 끙끙 앓는 편이 아니에요. 써지지 않는 것을 붙잡고 있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러 나가요. 내 생각에 갇혀 있다가 나를 벗어나 다른 사물이나 사람을 대하면 다시 글을 이어주는 다리가 생겨요. 특히 어머니와의 통화는 갑갑함에 빠져 있는 나를 다시 수면위로 올라오게 해주는 최고의 해결사에요. 어머니와 세상사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 금세 막혔던 머릿속이 원활하게 제 기능을 해 다시 원고지 앞으로 날 끌고 가죠.


 
△ 젊은 나이에 데뷔를 하셨잖아요. 작가를 꿈꾸는 대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조언을 부탁드릴게요. 
작가는 타인에 대해 남들보다 관심을 많이 가져야 해요. 소설을 쓴다는 것은 어떤 얘기를 쓰더라도 결국 사람들의 얘기를 쓰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관찰은 필수에요. 두 번째로 작품을 많이 읽는 것만이 왕도(王道)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니까 절대 시간을 버리는 것이 아니에요.

 영화는 두 시간 만에 끝이 나겠지만 책은 그렇지 않죠. 첫 문장이 이해가 안 되면 두 번째 문장이 이해가지 않는 법이죠. 마지막으로는 작품을 쓰기 시작했으면 항상 끝을 봐야한다는 마음을 가지세요. 쓰다 그만두는 것을 반복하면 정말 더 이상은 안 됩니다. 문학적 분위기를 가질 수 있도록 독서량도 늘리고. 이 자체를 즐기면 우리의 문학사회가 밝을 것 같아요. 여러분들이 문학에 대해 관심을 계속 가져줄 때 저도 좋은 작품으로 계속 보답하겠습니다.

사진 = 김민지 기자 minji1012@duks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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