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문예 소설부문] 헝겊데기 1
[학술문예 소설부문] 헝겊데기 1
  • 강효정(독어독문 4)
  • 승인 2007.11.20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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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은 생각 보다 훨씬 추웠다.

간호사가 이불을 여러 겹 덮어주었는데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나는 얼굴에 아무런 표정이 드러나지 않기를 바라며 입술을 세게 깨물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온통 차가운 것 뿐이었다. 십자가 모양의 수술침대는 소독약 냄새가 진동하는 빳빳한 초록색 천으로 덮여 있고, 수 십개의 수술 도구들은 재빨리 잡아 올릴 수 있도록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바퀴달린 스텐레스 선반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천장과 벽면은 구석구석 페인트칠이 벗겨져서 여기가 동굴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대학병원치고는 부실한 환경이었다. 서 너명의 레지던트들은 내 배에 쑤셔 넣을 도구를 고르며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키가 훤칠하고, 마스크를 벗으면 꽤 미남일 것 같은 의사가 “잘 될 꺼에요. 마음을 편안하게 갖으세요.” 하고 친절한 웃음을 건네며 다가왔다. 순간 내가 발가벗고 있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온몸에 닭살이 돋는다. 그는 이불속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있던 내 팔을 끄집어내어 양쪽으로 쭉 펴게 하고는 가죽 끈 으로 고정시켰다.

 

나는 멀뚱히 눈만 깜빡거리며 의사의 행동을 쫓았다. 눈빛이 참 선한 사람이다. 아마 저 넷 중에 가장 친절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환자를 안심시키는 역할을 도맡아 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입원하기 전 날 겨드랑이 털을 깨끗이 밀고 온 게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름 윤정희. 나이 스물 둘’ 이라고 적힌 환자 이름표가 바로 발밑에 걸려 있는데 뽀얗고 탱탱한 피부가 한창인 스물 두 살 여자의 겨드랑이 아래로 무성한 털이 자랑스럽게 솟아있다면 저 친절한 의사의 착한 눈빛도 흔들리고 말 것이다. 수술하는 내내 신경이 쓰여 혹 작은 실수라도 한다면 큰일이니 작게 보나 크게 보나 여간 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생각이 원하지 않는 곳으로 흐르지 않도록 안간힘을 썼다. 입술을 조금 더 세게 깨물었을 때 수술실 문이 열리며 두건 사이로 흰 머리가 내비치는 의사가 걸어 들어왔다. 주름 섞인 이마와 깊은 갈색 눈동자가 심연을 나타내는 얼굴이다. “윤정희” 의사가 내 이름을 나지막이 읆조렸다.

“딱 이십 년만이구나. 어렸을 때 고생 많이 했지.”

 

연륜미가 느껴지는 점잖은 목소리가 지금까지 얼어있던 몸을 부드럽게 녹인다. 순간 참아왔던 눈물과 서러움이 모조리 꿈틀대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잘 견뎌왔는데 여기서 눈물을 보일 순 없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혀가 말을 듣지 않는다. 미소라도 지어보이고 싶은데 소용없는 일이다. 이빨 아래 꽉 물려있던 피가 제자리를 찾아가며 짜릿한 진통을 몰고 왔다.

“아마, 마취과장 되셔서 아직도 계실 거야. 이십년 전에 잘생긴 의사로 병원서 아주 유명했지”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정희야”나를 부르는 우재의 목소리가 휘청거린다. “미연이를 꼭 닮은 아기가 엄마와 장난치며 ‘꺄르륵’ 웃는다. 수술실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그 사람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보다 더 세게 입술을 깨물고 있는지 가끔씩 턱이 흔들릴 뿐이었다. “갔다 올게” 나답지 않은 친절한 목소리를 남기고 멀어져갈 때도 그는 몇 번 고개만 끄덕거리고 미동 없이 서있었다.

수많은 목소리 중에서 그 사람의 목소리만 찾을 수가 없다.

 


언제나 그렇듯 우리는 우재의 집과 우리 집의 중간지점인 골목어귀에서 발길을 멈췄다.

“오늘 즐거웠어. 조심히 들어갚

저녁 바람이 제법 쌀쌀해 졌다고 생각하며 우재의 눈을 바라봤다.

“그런

목소리가 꽤나 퉁명스러운 걸 보니 아직 화가 덜 풀린 모양이었다. 이럴 땐 다시 팔짱을 끼고, 애교 섞인 말투로 기분을 풀어준 다음 헤어지는 것이 일년 동안 우리가 만들어 온 연애의 정석이지만 오늘은 도무지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표정이 잘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우재의 뒤로 보이는 별 만큼이나 내가 멀리 있다고 느껴졌다. 나는 더 이상 저렇게 반짝이지도 않아서 어쩌면 우재는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이미 오래전에 잊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로맨틱 멜로 영화는 연인들의 호르몬을 기분 좋게 촉진시킨다. 브래드 피트와 줄리아 로버츠의 감각적인 포옹과 키스는 섬세하지 못한 영화의 구성을 완벽하게 커버 해줄 만큼 멋졌다. 영화관에서 나와 우리는 색이 바랜 낙엽을 밞으며 보라매공원을 걸었다. 저녁 운동을 나온 가족들과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로 공원은 시월의 오후치고는 따뜻한 모습이다.

 

 

브래드 피트의 열렬 팬인 나는 배우가 했던 표정과 대사를 따라하며 호들갑이다. 우재는 몇 발자국 앞서서 고개를 올리고 뒤로 걷는 내가 귀엽다는 표정이다.

“야~그러다 넘어져. 조심해.”

“난 운동신경이 좋아서 안 넘어져. 근데 좀 숨차네. 여기 앉았다가.”

“운동신경 좋은 애가 그것 쫌 걸었다고 힘드냐~하여간 윤정희. 알아줘야 되”

우재의 목소리가 상쾌하게 귓가를 스친다. 인공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벤치에 앉아 우재의 어깨에 가만히 머리를 기댔다. 우재의 커다란 손이 어깨를 감싸자 한 쌍의 오리가 떠다니는 호수가 더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평화롭다’고 생각하며 온몸에 힘을 푸는 찰나 어김없이 가슴 한구석이 조여 오는 고통을 느낀다. 언제쯤 이런 평화로움에 익숙해지게 될까. 나에게 완전한 자유를 선사한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오늘 같은 오후가 나는 더욱 고통스럽다. 오롯이 눈에 보이는 평화로움에 내 전부를 빠트리고 싶다고 생각한다. 허락하지 않은 눈물이 호수를 출렁이게 할 때, 우재의 입술이 포개졌다. 날씨 탓에 거칠어진 입술의 감촉이 나쁘지 않았다. 어느 때 보다 대담한 키스였다. 우재가 브래드 피트의 키스를 따라하고 있다고 생각되자 나는 웃음을 겨우 참으며 기꺼이 줄리아 로버츠가 되어주었다. 이 순간만큼은 우리의 키스가 불안정한 삶을 완벽하게 커버해 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우재와 떨어지고 싶지 않다.

 

 

하지만 우리 인생은 ‘컷! 다시! 레디~액션!’을 외쳐 가장 좋은 장면들로만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다. 우재가 깊숙이 들어올수록 내 슬픔의 무게는 더해진다. 우재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어깨를 감싼 오른팔에 힘이 가해지는 걸 느낀다.

이쯤이면 그만두어야 한다. 내가 순진해서가 아니라 아직 우재와 아니 누구에게도 그 이상의 나를 보여줄 자신이 없다. 실크 블라우스 아래로 우재의 손이 들어왔을 때 내가 그의 어깨를 매몰차게 밀어낸다. 우재가 밉다. 배를 타고 가슴으로 올라 올 우재의 손이 아니라 잠깐의 쓰라림을 참지 못해 염증을 방치하고 있는 나의 미련함을 꾸짖는 우재의 욕망이 두렵다. 이별을 고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정희야”

침묵을 깨는 우재의 목소리가 속을 쓸어내렸다.

“응?”

“오늘은 집 앞까지 바래다줄게. 가자.”

나는 발을 떼지 않았다. ‘집 앞까지 가면 더 헤어지기 아쉽단 말이야. 다시 여기까지 널 바래다주고 들어가야 맘이 편해.’ 하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더 이상 늘어놓을 수가 없다.

우재의 눈을 외면 한 채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잘갚

우재는 내가 어둠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아마도 내 등을 바라보고 서 있을 것이다. 언젠가 우재가 속에 뭘 그렇게 꽁꽁 안고 살아 가냐며 나를 다그쳤을 때 일주일동안 그의 연락을 받지 않은 적이 있었다. 화가 낫다 기 보다는 말을 할 수가 없어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차라리 난 침묵에게 사실을 마음껏 외면하는 자유를 부여했던 것이다.

다시 우재 에게 달려갈까도 했지만 그건 단 하루도 위로하지 못할 평화에 아까운 눈물만 바치는 뻔한 어리석음 이었다. 나는 아직 떳떳해질 용기가 없다.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부끄럽지 않은 나를 설명하는 동안 타인에게 받을 동정의 눈초리가 귀찮을 뿐이다. 그러니 정확히 말하면 연민의 정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넉살이 내겐 아직 없는 것이다.

고개를 드니 드넓은 하늘이 모두 검게 타버린 채 조각 나있다. 좁다란 골목을 메운 지붕의 날에 베여 죄다 네모 낳게 쪼개져 있다. 마치 이리저리 치이며 금이 간 사람들의 마음에 들러붙은 상처 딱지를 보는 것만 같다.

 


대충 옷을 벗어던지고 화장실로 향했다. 이런 기분으로 집에 들어 온 날은 빨리 샤워를 하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상책이다. 그리고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빛바랜 노래를 몇 곡 들으며 온갖 상념도 잿빛추억으로 미화시켜 보는 것이다. 화장실 타일에서 전해지는 차가운 냉기가 발바닥을 타고 올라 왔다. 약간의 현기증을 느끼며 눈을 감고 가만히 배를 쓰다듬어본다. 다리가 스무 개 쯤 달린 지네 한 마리가 어김없이 배꼽을 밀어내고 잠들어 있다. 이 십년 넘게 한번도 깨지 않고 남의 배 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걸 보면 엄청나게 염치없는 놈이 분명했다. 오늘 따라 이 놈의 몸통이 더욱 울퉁불퉁하게 느껴졌다.

내가 자라면서 이 놈은 검지 손가락 두개를 이어놓은 정도의 크기만큼 작아졌지만 어릴 적 유치원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내가 옷을 벗었을 때 눈이 큰 어떤 아이는 아빠 발바닥만한 지네를 보고 울음을 터뜨린 적도 있었다. 물을 틀고 샤워기를 배에 가져다 댔다.

 

 

지네의 발이 꾸물꾸물 움직이기 시작한다. 정신이 번쩍 들도록 수도꼭지를 찬물로 획 돌렸다. 지네가 슬금슬금 밑으로 늘어지다가 ‘툭’하고 차가운 타일바닥위로 떨어졌다. 뒤집어진 몸통을 바로하기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양을 보고 있으니 지네가 처음으로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것은 몇 초 동안 몸을 이리저리 틀다가 정신이 들었는지 재빠르게 하수구 밑으로 사라졌다. 물이 너무 차갑다. 눈을 뜨니 배위에서 곱게 잠들어있는 지네를 쓰다듬고 있는 내가 거울 속에 있다. 엄마는 일이 피곤했는지 이미 잠들어 있었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며 볼 만한 프로그램을 찾고 있는 데 철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들렸다. 동네가 떠나 갈 것 같은 우렁찬 소리인걸 봐서 술을 꽤나 마신 것이 분명했다. 나는 텔레비전과 방 불을 끄고 하수구로 사라진 지네만큼 이나 재빠르게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아빠는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담배를 찾아 꺼내 화장실로 휘청거리는 다리를 옮겼다.

“바위섬~너는 내가 미워도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해~”

소주잔에 빠뜨렸다 건져 올린 목소리가 가락을 탄다. 살며시 돌아누워 잠든 엄마의 얼굴을 봤다. 일이 많이 고되었는지 코고는 소리마저 축 쳐져 있다. 얼마 후, 형광등 불빛에 선잠이 깼다. 비틀거리며 침대 밑에 이불을 펴는 몸뚱이가 보였다. 한두 번도 아닌데 나는 한숨을 담배연기만큼이나 깊게 빨아드리며 가슴의 통증을 느꼈다. 언젠가부터 한숨을 내뱉는 것이 아니라 깊숙이 들이 마시기 시작했다. 어쩌면 니코틴과 타르 때문이 아니라 눈앞에 보이는 그의 좁아지는 어깨나 딱지가 들러붙은 두 다리, 눈 감으면 들리는 코 고는 소리가 밀어내는 한숨 때문에 내 폐는 썩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빠는 내 손을 잡고 꼬부라진 혀를 굴린다.

“정희야, 불쌍한 것... 아빠가 꼭 니 상처는 없애 줄꺼다. 미안하다.”

분노와 경멸감이 쳐들어온다.

‘진짜 날 위한다면 제발 그 촌스런 자기연민과 감상에서 그만 나와 이 구역질나는 곳에서 날 벗어나게 해 달란 말이야!’

목구멍까지 치솟는 뜨거움을 베게 위로 흘려보내며 그가 잠들기를 기다렸다. 이 십 여년 동안 나를 가두고 있는 끔직한 흉터. 엄마 손을 잡고 목욕탕에 갈 때면 아줌마들은 혀를 차며 나와 엄마를 번갈아 바라봤다.

‘아휴~어린애가 이게 머래. 기집애가 어쩌면 좋아.’

사람들의 시선을 죄다 받으며 나는 매우 불쾌했지만 “엄마 내 배는 왜 이런 하고 묻지 않았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물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한번도 내 상처에 대해 먼저 말을 꺼낸 적이 없다. “아기 때 많이 아팠어요.” 하는 한숨 섞인 목소리나 입을 꼭 다문 채 내 몸에 비누칠을 해주는 엄마의 결연한 표정을 보고 여섯 살 여자아이는 말없이 수건으로 배를 가렸다. 정확히 몇 살 때 내가 흉터의 사연을 이해하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한번도 세상을 원망해본 적은 없었다. 장 중첩이 일어난 갓난아기를 치료하는 간단한 과정에서 담당 레지던트가 실수를 했다는 것. 아기의 장이 터지는 장면을 모니터로 지켜보던 젊은 엄마는 바로 기절해버렸다는 것. 아기는 생사를 넘다들며 이 년 동안 병원침대에 팔 다리가 묶여 있었다는 것. 흉터는 수술자국이 아니라 배를 열고 지낸 6개월 동안 살이 저절로 붙으며 만들어 졌다는 것. 의료사고를 일으킨 장래 유망한 젊은 의사는 사고가 일어난 지 삼일 째 되던 날 병원을 떠났다는 것. 아기에게 삼일에 한번씩 투여되는 약은 당시 외국에서만 들어오던 아주 희귀한 것이라 엄마아빠는 신혼자금은 다 날리고 어마어마한 빚을 져가며 약을 직접 구해 와야 했다는 것. 더 이상 아기의 옆구리로 똥오줌을 받아내지 않아도 되었을 때 아기는 병원 사람들의 눈물 박수를 받으며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

 

 

나를 보러 온 모든 사람들이 곧 죽겠다고 포기하라고 말했지만 엄마와 아빠는 단 한순간도 나를 포기한 적이 없다고 했다. 아빠는 병원원장에게 찾아가 단 한 푼도 받지 않고, 어떤 말도 나오지 않도록 할 테니 아기만 살려놓으라고 으름장을 놓았다고 했다. 그 긴 생의 사투를 견디고 나는 엄마 아빠의 기적이 되었다. 간호사들 사이에 정희는 대학까지 공짜로 다니겠다는 유언비어가 나돌았지만, 단 한 푼도 받지 않은 우리는 지금 옥탑 방에서 모두 제각각의 모습으로 살고 있다. 기필코 딸만 살리겠다는 부모의 정성이 지금 나를 살렸다는 아빠의 대단한 자부심이 내 나이 몇 살 때까지 사랑과 감동으로 전해져왔는지 모르겠다. 빚으로부터 시작한 불행한 신혼부부의 가정이 끝내 옥탑 방으로 까지 거처를 옮기는 동안 이 흉터는 지옥의 표적처럼, 생의 끈적끈적한 분비물처럼 내 배위에 딱 달라붙어있다. 나에게 목숨은 평생을 다해도 다 갚지 못할 부모의 은혜가 아니라 이 고통의 삶 속으로 끌고 온 조금도 고맙지 않은 일이었다. ‘살려만 줬으면 머해! 이 따위로 사는 거 더 이상 못하겠어.’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는 나는 배은망덕한 년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아빠 앞에서 언성을 높인 적 이 없다. 누구의 탓도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이십년 동안 구토와 눈물이 벼락처럼 밀려오는 오늘 같은 밤을 꾸역꾸역 참아내며 깨달았다. 내 탓이 아닌 고통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남의 탓도 아니라고 믿는 것뿐이라고. 하루 종일 양 팔이 묶인 채 부모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오후 세시를 기다리던 갓난아기처럼 몸뚱이가 수 백개로 쪼개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목적 없는 어떤 날을 기다리는 것이다.

 

 

“사랑이 무엇인지~아픔이 무엇인지~아직 알 수 없지만~”

이른 아침부터 엄마는 홈페이지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흥얼거린다. 기분이 좋은지 창틀에 있는 허브 화분에 물을 주며 엉덩이까지 씰룩거린다. 자식이 하나 뿐 이라 화분을 기른다는 엄마에게서 볼 수 있는 익숙한 풍경이다. 창문이 아주 큰 집에 살 때에도 엄마는 아침마다 마당에 물을 주고 있었다. 그러다 한창 유행하던 이 노래가 라디오에서 흐르면 엄마는 기분이 아주 좋아져서 “정희야, 떡볶이 해줄까?” 하고는 활짝 웃으며 헝클어진 내 머리를 다시 곱게 빗겨주고는 했다. 유난히 햇살이 눈부셔서 꿈을 꾸는 착각을 일 게 했던 그 날처럼 마법을 부리는 주문 같던 엄마의 목소리는 지금도 여전하다. 산악회 사람한테 전화가 온 모양이다.

 

“호호호~우리 삼층으로 이사 왔어요. 더우면 나가서 텐트치고 자려구~앞이 뻥 뚫려서 이제야 살 것 같아. 하늘을 코앞에 두고 보니까 속병이 다 낫는 거 같아~호호~”

나는 범인을 취조하는 형사처럼 거짓의 증거를 찾기 위해 엄마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하지만 엄마는 부끄럼 하나 없는 표정으로 내 안의 독소를 빨아들인다. 어차피 채 이십사 시간이 못가는 약발이지만 그것이 영구적인 효과를 가져 올 때까지 엄마는 내 앞에서 천연덕스런 푼수 댁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 낼 것이다.

 

어제 밤의 악몽은 오늘을 사는 데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 매일 한편의 단막극을 찍는 기분이지만 엄마의 피를 고스란히 이어받아 원하는 데로 생각하고, 생각하는 데로 보고, 보이는 것에 가장 어울리게 연기하는 법을 나는 일지 감치부터 알고 있다. 어느 책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 위선과 작위는 다른 이름이라고. 나는 나를 속이는 것이 아니다. 나는 우재를 기만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희노애락에 알맞은 옷을 민첩하게 갈아입히며 순간을 충실하게 살고 있을 따름이다. 내일이 오늘을 보장해주지 못하고, 오늘이 어제를 책임지지 못한다. 이토록 연약한 삶 속에서 속 편하게 숨 쉬려면 ‘내가 여우주연상 감이오’ 하고 사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없다. 이것이 합리화가 아니라 융통성이라고, 또 유연함은 불확실한 삶을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요소라고 굳게 믿는 나는 매일 아침 기억의 회로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알약을 집어삼킨다.

 


한숨 더 자려고 눈을 부치는 데 다급한 벨 소리가 울렸다. “정희야, 나 어떡해...” 숨소리만 들어도 서로의 기분을 알 수 있는 십 년 지기 친구 미연이었다. 애교 섞인 목소리로 늘 나를 수면위로 떠오르게 하는 미연인데 오늘은 목소리가 심상치가 않다. 또 무슨 사고를 친 것이 분명했다. 같이 갈 곳이 있다며 다그 채는 통에 대충 세수만 하고 밖으로 나왔다. 왠일인지 철 계단을 딛는 발 소리가 우재가 쳐주는 피아노곡 만큼 경쾌하게 들렸다. 일요일과 참 잘 어울리는 날씨 탓이려니 했다. 불과 이틀 만에 보는 미연이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머리는 발로 묶었는지 묶인 머리보다 삐져나온 머리가 더 많고, 입고 소풍가면 보기 좋을 후드 티에 소개팅에나 어울릴 회색 빛 주름치마. 중학교 때 한창 유행했던 수제화까지 딱 워스트 드레서 감이었다. 나도 모르게 사방을 둘러보며 사람들의 시선을 살폈다. 곧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미연이는 나를 확인하고는 말 한마디 없이 택시를 잡아 올라탔다.

“야! 왜이래. 무슨일이야?”

재빨리 미연이를 따라 택시에 올랐다. 미연이는 내 말에는 아랑 곳 하지 않고 택시 기사한테 위치를 설명하고는 내 손만 부여잡았다. 백 밀러로 힐끔힐끔 우리를 쳐다보는 기사 앞에서 뭔지 모를 미연이의 사건을 드러내놓고 싶지 않아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가하게 거리의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이 보였다. ‘우재 한테 연락 해볼까’ 곧 눈물을 떨굴 것 같은 친구의 불안한 체온을 느끼며 남자친구와의 재회를 생각하다니... 어쩌면 타인과 완전한 결합을 이루겠다는 생각은 인간의 무서운 오만함일지도 모른다. 고개를 젓고 미연이의 손을 꼭 잡아주지만 어제 밤 우재의 쓸쓸함과 곧 제 모습을 드러낼 불안한 그림자가 뒤엉켜서 꼭 잡은 두 손 사이의 빈틈이 한없이 크게 느껴졌다.

미연이가 내린 곳은 ‘모태 산부인과’ 앞 이었다. 이십년 넘게 수도 없이 지나치던 병원 건물인데 오늘 따라 굉장히 낯설다. 설마 진짜 여기가 목적지 인가 싶어 침이 마른다.

애써 미연이의 굳은 표정을 외면하고

“자~가자! 어디야? 아냐.아냐. 우선 너 진정 좀 하자. 카페 가서 우선 얘기 좀 하자.”

혼자 호들갑을 떨며 미연이의 손을 끌고 발 길을 돌리려는데 미연이의 다리는 쇳덩이 마냥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나 임신 했어.”

시월의 햇살이 이렇게 뜨거웠던가. 심장까지 녹여버릴 것 같은 온도에 현기증이 돈다. 모텔 산부인과. 병원 간판이 흔들린다. 이런 엄청난 상황 앞에서 모텔과 산부인과가 짜고 치는 고스돕이란 어처 구니 없는 생각이 든다.

‘이 기집애, 니가 드디어 미쳤구나! 확실해? 확실한거야? 누구야! 그자식이야?! 야 임마~근데 왜 지금말해! 젠장’

묻고 싶은 말이 백 만가지에 쌍 시옷소리가 입안에서 폭죽을 터뜨리는데 한마디도 꺼내놓을 수가 없다. 침만 꿀떡꿀떡 삼키다가 입을 뗐다.

“애, 이름은 지었냐? 안 지었으면 이모가 지어줄게.”

그제야 미연이는 나를 보고 웃는다. 아니, 잠시 울음을 삼킨다. 한번 터지면 주어 담을 수 없는 고통을 앞두고 시간을 뚫고 지나가는 방법은 유머뿐이다. 우리는 이런 면에서 서로에게 아주 좋은 동반자이다. 접수대에서 하늘 색 간호복이 잘 어울리는 간호사 두 명이 상냥한 웃음으로 우리를 맞았다. 모텔 카운터에서 손님을 맞는 주인 표정도 별반 다를 것 같지 않다. 산모의 배를 흐믓 하게 바라보던 젊은 남편이 우리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훓어 본다.

 

 

나는 죄 없는 배를 안으로 쑥 집어넣었다.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는 내내 미연이는 초조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생리 안한지 한참 됬어. 설마 했는데 아침에 테스트 해보니까 양성 이였어. 선이 아주 희미하긴 해. 그러니까 아닐 수도 있을 거야...근데 진짜 임신이면 나...”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미연이는 애처롭다. 미연이는 반 년전쯤 헤어진 남자친구와 가끔씩 만나고 있다. 남들이 보면 소위 말하는 섹스 파트너지만 그녀의 구구절절한 러브스토리를 들어 온 나는 그렇게 단정 지을 수 만은 없다. 남녀 사이의 명확한 관계가 우습게도 ‘사귄다’와 ‘헤어진다’는 말로 시작종과 마침 종을 울리는 것이라고 사랑 역시 그 박자에 맞춰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 둘의 관계는 분명 ‘아무사이’도 아니다. 채 끝나지 않은 사랑앓이를 하던 여자가 남자의 성적욕망의 노예가 되고 있을 뿐이라는 것, 마지막 순간은 지금보다 더 비참해진다는 것 따위는 누구보다 그녀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선택한 일이고 난 미연이의 오열 앞에서 더 이상 말릴 수가 없었다. 그때 생각했다. 이것도 그녀의 사랑이라고. 만약 최고의 순간을 선물하기 위한 남자의 부단한 노력, 조금 더 여자를 오래 안기 위해 시간을 유예하는 남자의 손 놀림. 그 가상한 마음을 침대 위가 아닌 다른 곳에서도 여자를 위해 바쳤다면 미연이의 비참함은 조금 덜 해졌을까? 끔찍한 일이라며 세상이 여자를 손가락질 하고 혀를 차도 나만은 미연이의 사랑을 두둔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를 더 강하게 붙들지 못한 내가 한 없이 미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미연이는 고등학교 때부터 커피를 즐겨 마셨다. 항상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어른들의 세계를 동경했으며 어디서 주어 들었는지 입이 쩍쩍 벌어지는 놀랄만한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했다. 동네 독서실에서 총무가 새벽 두시를 알리며 전등을 끌 때까지 우리가 황홀한 이십대를 꿈꾸던 날들은 여고시절을 곱씹게 하는 추억의 전부가 되어있다. 한 달 독서실비 7만원.

 

‘7만원의 자유 티켓’을 끊고 우리는 지금보다 더 자유롭게 십대와 이십대를 넘나들었다. 그 땐, 우리의 비행이 이렇게 추락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나는 이제 이 아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내 눈빛이 동정으로 비춰지지 않길 바라며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건넸다.

“자~마셔.”

종이컵으로 전해지는 커피의 뜨거운 기운이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안 마실래. 애기한테 안 좋아.”

이번엔 내가 웃는다. 적어도 죽어버리겠다고 한 바탕소동을 버리지는 않겠구나. 일단 마음이 놓였다.

“신미연씨”

간호사의 예쁜 목소리가 처음으로 시월의 찬 바람을 몰고 왔다. 식어버린 커피를 아무 맛 없이 마시고 있는데 아랫배가 욱씬 거렸다. 벌써 한달 동안 피가 멈추질 않는다. 워낙 불규칙 해서 한 달에 두 번씩 생리를 할 때가 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이번엔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몸이 많이 피곤한 탓이려니 넘어갈까 하다가 생긋 웃는 간호사와 눈이 마주쳤다.

“저...저도 접수 할께요. 생리를 너무 오래해서요.”

굳이 접수대에서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조심스럽게 꺼낸다.

“자리에서 기다리세요.”

차가운 커피를 단숨에 비워버렸다.

미연이가 나오고 뭐라 말할 틈도 없이 내가 진찰실로 들어갔다. 나보다 미연이가 더 의문에 찬 눈빛이다. 의사가 여자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의자에 앉았다.

“저...생리가 멈추질 않아요.”

“성 경험 있으세요?”

“네?”

“성 관계 맺은 적 있으시냐구요.”

“아니요.”

“한번도요?”

“없어요.”

한번 더 확인할 건 뭐람. 어깨가 움츠러드는 것은 B사감과 꼭 닮은 여의사의 은테안경이 너무 날카로워 보여서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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