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칼럼] 나의 방황은 미래의 파랑새를 보여주었다
[교수칼럼] 나의 방황은 미래의 파랑새를 보여주었다
  • 정무정(미술사)교수
  • 승인 2007.12.01 19: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번 학기는 유난히 빨리 지나가는 느낌이다. 겨우내 강의실과 캠퍼스를 점령할 적막함이 벌써부터 여기저기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삭막한 학교의 풍경을 그려내는 주인공은 낙엽 진 나무나 을씨년스러운 계절이라기보다는 취업전쟁에 내몰려 낭만과 여유를 상실한 학생들로 보인다. 소신에 따라 전공을 결정했으면서 인문학을 전공하는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경영학과 같은 실용적 학문을 기웃거리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거나 면담 때마다 제기되는 취업과 진로문제를 함께 고민하다 보면 으레 과거 학창시절의 내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대학시절 나는 요새 학생들이 선호하는 소위 경영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적성과 무관하게 결정된 선택이었기에 수업시간 끊임없이 들었던 의문은 내가 왜 이 자리에 앉아있어야 하는 가였다. 적어도 그 시절의 내 판단으론 경영학은 이윤을 착취하기 위한 논리가 학문으로 포장된 것에 불과했다. 견딜 수 없는 무미건조함으로 기웃거린 곳이 사학과 철학 분야였다. 그 곳에선 인간의 다양한 삶의 모습과 사유에서 냉혹한 자본의 논리에 대한 해학과 비판을 꿈꿀 수 있었고 안개 속을 헤매던 내 삶의 좌표를 그려볼 수 있었다.


내가 미술사라는 학문을 접한 것은 다른 분야로의 이탈을 꿈꾸는 과정에서 수강하게 된 ‘서양미술사’라는 과목을 통해서였다. 그것은 그 동안 관심을 가졌던 역사와 철학은 물론이고 어린시절의 아련한 미술에 대한 꿈까지 포괄한 학문이었다. 지체 없이 미술학원에 등록하고 실기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아직도 그런 인식이 남아있긴 하지만 당시엔 미술사라는 학문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는 상태여서 미술사를 공부하기 위해선 당연히 실기를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다달이 늘던 드로잉과 그림 실력이 한계에 다다른 어느 날, 강사와 얘기를 나누던 중 미술사라는 학문이 인문학이라 실기가 필요 없다는 말을 들었던 순간은 아직도 선명히 머리 속에 그려질 정도이다.


그러나 군복무를 마치기 전 다시한번 고민에 사로잡혔다. 가정형편이나 진로를 고려하여 학부의 전공을 살린 취업을 해야 한다는 단기적 의무감과 자아실현이라는 평생의 꿈 사이에서 망설인 것이었다. 군복무가 끝나기 2주전 휴가를 받아 10일간의 도보여행을 떠났다. 80년대 중반의 겨울에 정치적 상흔이 채 아물지 않은 광주라는 도시를 그리며 걷고 또 걸었다. 포플러 가로수가 울창한 국도변과 눈 덮인 산 속을 헤매면서 무수한 상념이 스쳐지나갔다. 그 후 아무리 좋은 곳을 다녀도 그 때의 여행만큼 가슴에 묻어둘만한 경험을 얻지는 못하고 있다.


마지막 결정이 숙고의 산물이었는지 아니면 ‘재향군인회’ 간판만이 생경하게 걸려있던 을씨년스런 광주의 모습에 대한 반발이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분명한 것은 그러한 고민과 방황이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는 것이다. 미래의 파랑새를 잡기 위한 노력이 중요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주인은 스스로 파랑새로 변신한다. 미래의 꿈은 찾아지는 대상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도봉구 삼양로144길 33 덕성여자대학교 도서관 402호 덕성여대신문사
  • 대표전화 : 02-901-8551, 8558
  • 청소년보호책임자 : 고유미
  • 법인명 : 덕성여자대학교
  • 제호 : 덕성여대신문
  • 발행인 : 김건희
  • 주간 : 조연성
  • 편집인 : 고유미
  • 메일 : press@duksung.ac.kr
  • 덕성여대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덕성여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duksung.ac.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