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머물다] 그 곳은 내게 일상의 비타민이었다
[걷다머물다] 그 곳은 내게 일상의 비타민이었다
  • 강나영(약학 4)학우
  • 승인 2008.03.29 1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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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곳을 알게 된 건 향수병을 앓고 있던 대학 2학년 때였다. 조그만 도시에서 막 올라온 나에게 서울은 매우 낯선 곳이었다. 내가 살던 곳은 시골은 아니었지만, 비교적 교외에 위치해 집 뒤에는 조그마한 개천이 흐르고 근처에 논밭이 있어 벼나 보리가 익어가는 모습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유년 시절, 나는 가끔씩 공부에 지친 머리를 식히러 자전거를 꺼내들고 강을 따라 달리곤 했다.


서울로 올라와보니, 대도시에서의 생활은 내가 꿈꿔왔던 것과 달리 모든 것이 장밋빛은 아니었다. 힘들 때마다 떠오르는 건, 집 생각과 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강가였다. 그렇게 서울 생활에 지쳐가던 나에게 ‘과천’이라는 제 2의 안식처를 제공한 것은 다름 아닌 ‘미술’이었다. 고3시절에 작성해 놓았던 ‘대학가면 꼭 해 볼 것들’중 하나였던 ‘미술전 관람’은 학교공부에 지쳐 가던 그 당시의 나에겐 청량제였다. 비록 미술에 대해 잘 몰랐지만, 시간 나는 대로 틈틈이 미술전을 관람하러 다니곤 했다. 미술전을 관람하러 미술관에 가는 날은 교문을 나서는 그 순간부터 소풍을 온 어린애 마냥 들뜨곤 했다. 그 많은 미술관과 갤러리 중에서도 자연과 가까이에 위치해서인지, 그 곳에 가면 늘 경직되어있던 나의 온 신경들이 느슨하게 풀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곤 했다.


4호선 ‘대공원’역에서 내려 20분 간격으로 오는 미술관 버스를 타거나, 표지판을 따라 15분정도 산책 겸 등산을 해야 닿을 수 있는 꽤 숨어있는 공간이지만 숨어있는 보물찾기처럼 매력적이다. 미술관 행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한층 맑은 공기와 따스한 햇살, 그리고 넓게 펼쳐진 조각공원은 당장 돗자리를 펴고 싶을 정도랄까. 미술관으로 올라가는 길은 철제 바람개비가 놓여있는 반인공적인 연못, 조그만 계곡, 산길로 이어지는 다리, 미술관 입구 사이에 숨은 조각들까지 매우 사랑스럽다. 게다가 산 중턱에 위치해서 내려다보이는 전망 또한 빼놓을 수가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매력적인 건 전시를 보고 내려오는 길에 볼 수 있는 해지는 무렵 그 근처의 저수지에서 비치는 노을빛이다. 내겐 자전거를 타고 강을 따라 갔다가 노을빛을 맞으며 되돌아오던 그 길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보고 온 현대미술 작품들에서 얻은 넘쳐흐르는 젊음의 에너지와 방대한 상상력은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내겐 무기력함을 떨쳐버리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달려 나갈 수 있게 해 주는 일상의 비타민이 되었다. 


그렇기에 나는 지치고 힘들 때마다 그 곳을 찾게 된다. 올해도 어김없이 내 마음은 과천을 향해 있다. 봄에는 진달래와 개나리 등이 피어 알록달록한 자태를 뽐냈고, 여름엔 푸른 나무들이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하게 하고, 가을엔 단풍놀이와 낙엽을 밟는 낭만, 겨울엔 눈이 와서 하얗게 쌓인 모습까지 사계절이 모두 살아있는 그 공간, 국립현대미술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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