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리사 칼럼] 조국을 위해 피를 흘리자
[차미리사 칼럼] 조국을 위해 피를 흘리자
  • 정진웅(문화인류) 교수
  • 승인 2008.03.29 19: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차미리사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체류하며 떠돌이 한인노동자들을 위해 사회봉사활동에 전념하고 있을 즈음에 조국의 운명은 한층 더 기울어갔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주미 한인공사관이 철폐되자 해외 한국인은 망국인으로 전락되었고, 한국 정부는 해외 한인들에게 일본 영사의 보호를 받으라고 선언하였다. 1907년에는 고종황제의 강제 퇴위, 정미 7조약 체결, 신문지법, 보안법, 군대 해산령 등 조국의 식민화 소식이 연이어 들려왔다. 이런 소식들은 미주 한인사회를 격동시켰다. 급박하게 변하는 국내외 정세에 대응하기 위해, 1907년 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동양의 평화와 민족의 대동단결을 목표로 하는 대동보국회(大同保國會)가 결성되었으며, 차미리사도 이에 적극 참여하였다.


대동보국회는 1907년 10월 강경한 항일언론을 펴는 《대동공보》(大同公報)를 발행하였다. 그 해 11월 14일 차미리사는 ‘상제를 믿고 나라를 위할 일’이라는 논설을 《대동공보》에 기고하였는데, 이 글은 “나라의 독립과 자유는 국민 모두가 창칼에 맞서 피 흘려 싸울 때에만 얻을 수 있다”는 취지의 의혈투쟁론이었다. 그는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를 자신은 비록 이 세상에 성명없는 일개 여자이지만 나라를 위하여 동포를 사랑하는 데는 남녀가 없으며, 또한 나라가 망하는 지경에 체면을 차리고 수수방관만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한  국민들이 조선의 독립을 위해 영웅적으로 투쟁하기를 기대하였기에 글을 쓰게 되었다고 적었다.


차미리사의 독립전쟁론은 기독교 신앙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차미리사는 현재 눈앞에 보이는 나라와 동포의 고통을 외면하고 천당에 가길 원하는 내세지향적인 영혼구원 신앙, 정의롭지 못한 현실 사회에 대해 무관심한 초월주의적 신앙, 정교 분리를 내세우며 민족의 아픔을 외면하는 경건주의적 신앙 모두를 비판했다. 나라가 망하고 민족이 고통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는 피로써 나라를 지키는 “이혈보국(以血保國)”이야말로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정의로운 일이며, 자신도 앞장서서 독립전쟁에 참여하여 기꺼이 희생을 하겠다고 다짐하였다.


이와 같은 차미리사의 의혈투쟁론은 독립을 최우선 가치로 두는 즉각독립론, 절대독립론이다. 이는 약육강식, 우승열패, 적자생존의 사회진화론에 입각하여 국가 민족 간의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선 힘을 길러야 하며 실력양성을 통해 독립을 이룩해야 한다는 ‘선실력 후독립’의 문명개화론과 대비되는 반침략투쟁의 사상인 것이다.


1908년 1월에 열린 대동보국회 중앙회 대의회에서 차미리사는 여자로서는 유일하게 상의원에 선임되었다. 명실상부한 미주 독립운동의 여성 지도자가 된 것이다. 이후 차미리사는 대동보국회 회원 문양목 등과 함께 이승만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 독립운동 지원을 요청하였으며, 국내에서 제국신문이 자금난으로 정간되자, 이를 복간하고 영원히 보존하는 영보제국신문(永保帝國新聞) 운동의 발기인이 되었다.


1909년 재미 독립운동 세력이 국민회로 통합됨에 따라 대동보국회는 자연 세력이 미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1910년 경제공황과 더불어 전반적으로 침체된 미국의 사회 분위기 하에서 대동보국회와 국민회가 통합하여 대한인국민회가 결성되었다. 이때 쯤 차미리사도 미조리주에 있는 스캐리트 신학교로 유학을 떠나 삶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그동안 그의 사회 활동을 적극 지원해 주었던 미스 레익이 은퇴하였으며, 경제 공황과 행정조치법으로 인해 미국 본토로 이주해 오는 한인 노동자도 거의 없고, 자신이 몸담고 있었던 대동보국회가 대한인국민회에 사실상 흡수 통합되어 활동 기반마저 축소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가 사회 활동가로서 활발하게 봉사 활동한 것이 미국 선교사들 간에 소문이 나서 그들의 도움으로 감리교 계통의 스캐리트 신학교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 이 글은 사학과 한상권 교수의 저서 『차미리사 평전 - 살되 네 생명을 살아라』(2008년 6월 간행 예정) 중에서 발췌, 요약한 것임을 밝힙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도봉구 삼양로144길 33 덕성여자대학교 도서관 402호 덕성여대신문사
  • 대표전화 : 02-901-8551, 8558
  • 청소년보호책임자 : 고유미
  • 법인명 : 덕성여자대학교
  • 제호 : 덕성여대신문
  • 발행인 : 김건희
  • 주간 : 조연성
  • 편집인 : 고유미
  • 메일 : press@duksung.ac.kr
  • 덕성여대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덕성여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duksung.ac.kr
ND소프트